1331

어린 시절의 장난감으로 아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로봇'이다. 6·25전쟁 직후 미군 병사들이 크리스마스 날 학교에 와서 나누어주던 선물 비닐봉지 속에 들어 있었다. 동그란 안테나를 머리에 단 양철 로봇은 태엽이 다 풀릴 때까지 혼자 기계음을 내며 걸었다.

▶로봇은 어린 가슴에 상상의 불을 피어오르게 했는데, 박기당 선생의 만화 '유성인 가우스'를 열심히 읽었던 후유증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훗날 그 로봇들의 출생지를 알아보니 일본이었다. '연표로 보는 물건의 역사 사전(아라이 히데오 지음, 유마니書房)'에 로봇 얘기들이 나온다.

▶1920년 체코슬로바키아의 극작가 차페크가 '로봇'이란 용어를 작명했는데, 체코 어 '로보타(robota·노동)'가 어원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로봇'은 '인간의 노동을 대신 해주는 기계'인데 1950년 아시모프가 그 행동 규칙을 발표한 후 상상에서 일상의 세계로 걸어들어 왔다.

▶1963년 그 같은 로봇 붐을 반영해 일본의 테즈카 오사무가 TV 만화 '철완(鐵腕) 아톰'을 발표했고, 1976년 김청기 감독의 '로보트 태권V'가 폭발적인 흥행 기록을 남겼다. 신세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은 물론이다. 그 후 로봇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했다.

▶1999년 일본의 로봇 강아지 '아이보'가 나왔다. 2000년엔 사상 최초로 계단을 오르내리는 '아시모'가, 그 4년 뒤엔 오준호 카이스트 교수 팀이 한국 최초의 인간형 로봇 '휴보'를 탄생시켰다. 1년 뒤 '알베르트 휴보'를, 2009년엔 시속 3.6 로 걷는 '휴보2'를 선보였다.

▶그렇게 당차게 기술혁신의 길을 달려온 '휴보'가 마침내 세계 정상에 올랐다. 탄생 10년 6개월 만의 쾌거다. 재난 대응 변형 로봇인 'DRC 휴보'가 미국에서 열린 '재난 로봇 올림픽'에서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을 모조리 물리치고 우승해 22억 원의 상금까지 거머쥔 것이다.

▶이쯤에서 '인천로봇랜드'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로봇 산업의 메카를 지향하며 출범한 이래 아직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이번 '휴보'의 우승이 큰 활력을 불어 넣어 주리라 기대한다.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