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진개문화마당 황금가지 대표

산업사회에서 도로는 질주를 자극한다. 산업 자체가 생산을 목적으로 삼음에 따라 늑장을 부리거나 장애가 되는 것에 대해, 도로는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마치 욕망의 바벨탑을 쌓아 올리듯, 도로를 확장시키고 바퀴를 가진 일체가 잘 굴러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진화해버린다.

급기야 질주가 허용된 자에게, 세금이란 수혈을 지속적으로 받아냄으로서 다시금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거대한 괴물을 수태한다. 그리하여 길은 새로운 욕망을 출산한다.

고속도로를 놓고 고가도로를 세우고, 지층을 파내 지하도를 만들어 도로를 늘리지만, 사람의 길은 산업화의 질주 자체를 붙잡아 둘 여력조차도 없다. 그러나 인정이 삭제된 아니, 비인간적인 도로 앞에서 우리는 건너야할 때를 수시로 놓치고 한없는 무력감에 빠져버리고 만다.

터진개문화마당 황금가지 대표
1970년 8월 인천 최초의 동인천 지하도 참사는 부실 증축이란 배경이 깔려 있다. 20여명의 사상자를 낸 최초의 공공건설 사고라는 오명은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답동성당 아래 원앙 예식장과 신포동 대건 문구사를 사이에 두고 육교가 생겼지만, 발판이 출렁거리고 힘들여 오르내려야 하는 불편함 으로 무단횡단은 자연스레 횡행하였다.

육교 아래에 새끼줄을 둘러 장발단속에 걸린 사람과 무단횡단한 사람, 미니스커트를 입은 처자들이 한데 섞여 오도 가도 못한 채 서 있던 진풍경은 기억의 동공에 빛바랜 은영처럼 남아 있다. 1980년대 들어서 동인천역에서 답동 사거리까지 지하도가 건설되면서 육교는 물론, 답동성당 길목에 놓였던 횡단보도도 사라져버렸다.

다리가 불편해 지하 통로를 오갈 수 없는 노약자들은 졸지에 섬 아닌 섬이 되었다. 가뜩이나 상권의 심장 노릇을 했던 시청이 구월동으로 이전해 도시 공동화 증후가 빠르게 진행되던 터에 발생한 현상들이었기에, 어느 때보다도 길의 존재는 간절했었다.

며칠 전, 답동성당과 신포시장을 가로지르는 도로에 횡단보도 설치공사를 우연히 목격한다. 사건현장의 단골 언어인 '목격'이란 단어를 비장하게 사용하는 데에는, 두 가지의 경험이 날 서린 듯 뇌리에 있었다. 지하상가 건설에 따라 부지불식간에 폐쇄된 횡단보도의 복구를 초창기 무보수 지자체 구의원들에게 부단히 요구했던 것이 그 하나였다.

다른 하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그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며칠간 드러누워 부모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상처의 아픔은 치유되었지만 그 흔적과 놀람은 여전한 상처였다. 그 길을 지나칠 때마다 감전된 것처럼 당시의 상황이 무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2015년 5월 어느 날, 신포동 횡단보도 설치에 대한 상념은 또 다른 상념을 불러일으켰다. 교통사고가 빈번히 일어나 동네 어른들이 쓰러져 나갈 때, 애초의 횡단보도를 왜 없앴는지 구설이 자자했었다. 동네 분들의 강권으로 경찰서와 구청을 오가며 민원을 넣고, 구의원들을 만나 해결책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20년이 지난 일이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고 나서야 횡단보도가 느닷없이 생겨났다. 뿐만 아니다. 동인천역에서 건너편 길까지 횡단보도가 설치되는 것도 목격했다. 역시 '목격'이었다. 분명 쌍수를 들고 반길 일임에 틀림없지만, 공공사업의 대외공지 무시와 밀실행정의 전형을 감추진 못했다. 암약해 결과를 보여준 관계기관의 노고에 깊은 경의를 표하지만, 투명성을 갖춘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최성연 선생의 <개항과 양관역정>은 향토사 연구자 1세대를 대표하는 빼어난 저서임에 틀림없다. 인천 근대역사자료의 일천함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때, 무관심의 오솔길에서 신작로로 안내해준 베드로의 열쇠 같은 거였다. 고일, 류희강, 신태범, 이훈익, 이경성 선생 등과 한 시대의 숨결을 고르지 않았다면, 인천 향토사 연구는 오리무중 험로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을 거라 여겨짐은 당여지사이다.

<개항과 양관역정>은 개항시기부터 일제 강점기 전반에 걸친 인천 상황을 편년과 기전체로 엮어 서술한 책이다. 이후 많은 연구서의 사표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50여 년이 지나, 책에서 거론됐던 '조미수호통상조약'의 체결 장소가 화도진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세관 연구자 김성수 씨에 의해 고증의 빛을 보았음은 물론, 교회사 연구자 박철호 목사가 가세했고, 코리아 리뷰(Korea Review)와 코리아 리포지토리(Korea Repository)가 이를 뒷받침해주었다. 문제는, 역사적 사실관계가 드러났음에도 오류는 계속된다는 거였다.

화도진 축제는 동구주민을 위한 동구주민의 축제로 거듭나고 있는 행사이다. 그런데 '조미수호통상조약' 조인식 재현 내용이 버젓이 들어있고, 거리를 온통 태극기와 성조기로 치장하는 우(愚)까지 범하고 있다. 가짜 역사를 진짜로 둔갑시켜버린 것이다. 부실한 집단기억의 오류와 그 증후가 만들어낸 무거운 바람들이 개항장 일대에 스산하게 불고 있다. /터진개문화마당 황금가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