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지역 방송 사상 첫 전파를 하늘에 쏘아올린 곳은 HLKX였다. 광복 후 미 군정하에 있던 우리나라가 국제무선위원회로부터 호출부호 'HL'을 받은 것이 1947년 9월 3일이고, 일제강점기 때 썼던 경성방송국의 JODK를 HLKA로 바꾼 것이 같은 해 10월 1일이었다.

▶부산은 HLKB, 이리는 HLKF, 대구는 HLKG 이런 식으로 해서 광주, 대전, 춘천, 목포, 마산, 청주, 강릉 방송이 다 'HL'로 시작하는 호출부호로 바꾸었다. 그러나 인천에는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지상파 방송이 없어 그에서 제외되었다. 서울과 동일한 전파권(電波圈)이었기 때문이다.

▶남산 송신탑에서 발사하는 전파를 직접 수신할 수 있다는 것은 그 후 내내 인천의 방송 발전을 저해하는 숙명적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3백만 시민 대부분은 지금도 서울의 메이저 방송을 통해 '전국판' 뉴스를 청취하거나 시청하는 기현상에 노출되어 있다.

▶지역에서 공유해야 할 정보가 제대로 전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인천 뉴스가 지역적 시각에 의해 제작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이다. 설혹 인천 뉴스를 다룬다 해도 사건·사고에 치우쳐 부정적 이미지를 줄곧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꼴이어서 역기능이 심각한 상황이다.

▶어쨌거나 인천에서 방송을 시작한 것은 1956년이었다. 그해 12월 23일 HLKX 극동방송이 중파 1230kHz, 단파 11940kHz로 방송을 시작해 한 가닥의 희망을 갖게 했다. 하지만 막상 방송을 들어보니 대 공산권 외국어 선교방송이어서 짧은 한국어 방송 시간 말고는 청취마저 불가능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오늘날 합창계의 대부로 칭송받는 윤학원 선생이 클래식 신청곡을 받아 해설까지 들려줘 우리 60대 연배들에게 화제였는데, 그것이 지역 방송의 효시였던 것이다. 당시 스튜디오는 자유공원, 송신탑은 능허대 부근 갯벌에 높이 솟아 있었다.

▶송신소 건물과 사택은 옛 동양화학 부지 내에 아담한 여덟 채의 빨간 벽돌집으로 지금까지 온전하게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건물들이 1950년대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한다. 인천시가 이를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구상을 하고 있다니 기대가 크다.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