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사진작가 그녀는 누구인가
우연히 발견한 15만장 필름 … 그 주인을 뒤쫓는 영화

2007년, 시카고 역사에 대한 책을 쓰려던 존 말루프는 우연히 동네 경매장에서 15만장의 네거티브필름이 담겨 있는 박스를 구입한다.

유명하지 않은 사진작가가 남긴 15만장에 달하는 필름. 그 속에는 20세기의 거리 풍경이 사진작가의 독특한 시선으로 담겨있었다. 사진에 매혹된 존 말루프는 '비비안 마이어'라는 무명의 사진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기 시작하고 그에 대한 단서를 채집해나간다.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는 그의 사진을 처음으로 발견한 존 말루프 감독이 <볼링 포 콜럼바인>(2003)의 프로듀서 찰리 시스켈과 함께 그녀의 흔적을 뒤쫓는 영화다. 역사작가이자 벼룩시장에서 예상치 못한 물건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자주 누려왔던 존 말루프 감독은, 수집가적인 기질을 살려 비비안 마이어에 대한 단서를 사려 깊게 채집해나간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비비안 마이어라는 인물의 미스터리한 면모다. 당대 여성들과 달리 남자들이 입을 만한 셔츠를 주로 입었고 넉넉한 코트에 펠트 모자를 쓰고 다녔던 그녀는, 뉴욕 출신이었으나 일부러 만든 억양을 사용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다르게 말했다.

누군가는 그녀가 모순적이라고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유별나다고 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바는 비비안 마이어가 비밀스러운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그가 찍은 사진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마이어가 외출할 때 만난 사람들이었다. 그는 틈만 나면 카메라를 목에 걸고 거리에 나가 셔터를 눌렀다. 어린 아이와 여성들을 주로 촬영하고 자신의 그림자도 자주 찍었다. 그림자 같은 존재로 지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까. 평생 동안 수십만 장에 이르는 사진을 찍었지만 죽는 순간까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마이어가 유명해지자 사진 한 장에 수천 달러까지 치솟았다. 심지어 '사진계의 전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로버트 프랭크, 헬렌 레빗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거장의 발견'이라는 극찬까지 쏟아지고 있다.

극도로 자신을 드러내기 원치 않던 한 사람의 인생이 어느 순간 세상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과정이 영화 속에 담겨있다. 존 말루프는 오직 그녀의 존재와 재능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고 항변하지만 15만장의 필름과 한 장에 수천달러까지 치솟은 것을 생각해본다면 그 과정이 썩 유쾌하진 않다.
영화공간 주안 시간표.jpg


/김상우 기자 theexodus@incheonilbo.com·사진제공=오드(AU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