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불차인(書不借人)'이란 말의 출전은 중국 명나라 때 작가 사조제가 쓴 수필집 '오잡조(五雜俎)'라고 한다. "책은 남에게 빌려 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쇄술이 발달되지 않아 책이 흔치 않던 그 옛날 애서가들에게 그를 소중하게 간직하라는 당부였을 것이다. ▶두보의 시에 나오는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書)'를 금과옥조로 여겨 행하려 한 선비가 있었다면 꽤 고생했을 것 같다. 서로 빌려 주지 않으려 했으니 저마다 다섯 수레의 책을 사야 할 처지가 아니었을까? 그래서였는지 고금에 책을 슬쩍 빌리는 일에는 관용이 베풀어졌던 것 같다.▶"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란 속담도 있다. 얼마나 책을 읽고 싶었으면 훔쳤겠느냐는 온정적 판단이다. 최근 그 같은 열렬한 초법적 독서열(?)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이 소개됐다. '2015 세계 책의 수도'에 참석차 인천에 온 이스라엘 텔아비브 시의 부시장 '메이탈 레하비'가 한 말이다. ▶"책을 누가 좀 훔쳐가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해변가에 무료 이동도서관을 설치해서 국민이 책을 조금이라도 더 읽게 한다면 그게 더 중요한 거 아닌가? 책을 아예 안 읽는 사람보다 훔쳐서라도 읽는 사람이 느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독서지상주의자의 발언으로 들렸다. ▶하지만, 근사록(近思錄)에서 정이천(程伊川)이 "책을 반드시 많이 읽을 필요는 없다. 그 핵심을 알아야 한다"고 한 뜻에 따른다면, 이런저런 책을 굳이 훔쳐서까지 읽는다는 것은 '레미제라블' 같은 생계형 절도와는 달리 위선적 도둑질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책을 읽자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어떤 책을 어떻게 구해 어찌 읽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좀더 심중하게 짚어 보아야 한다. 안 읽는 것보다는 읽는 것이 그나마 좋다며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어도 무방하다는 식의 방관형 독서론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지난주 '책의 수도 인천' 대회가 개막됐다. 이번 대회가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는 화두는 "내 삶에 있어서 책은 무엇이었고, 앞으로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일 터이다. '무엇을 읽고, 무엇을 볼 것인가?' 그것은 결국 자신의 운명을 가르는 또하나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