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진개문화마당 황금가지 대표
감동이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와 같다. 감동을 일으키는 장치가 고장난 사회와 그 구성원은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설령, 눈물을 흘린다손 치더라도 기쁨과 사랑과 즐거움보다는 슬픔과 분노 쪽에 치우쳐 있다. 긍정보다 부정에 더 가깝다. 반 쯤 채워진 유리잔 속 세상을 들여다보는 필자의 마음도 그렇다는 얘기다. 이러구러 차에 오만의 뒤통수를 여지없이 내려치는 기사를 접하게 된다. 광주 동구 대인시장에서 천 원짜리 백반 집 '해뜨는 식당'을 운영하는 김선자 할머니 부음기사(2015. 3.18)와 계절이 두 번 바뀌었지만, 용인시 제일초등학교 가을 운동회(2014. 11.7) 김기국 학생 관련 기사가 그것이다.

서민 경제가 곤두박질해 재생의 낌새조차 보이지 않는 이 시기에 한 끼 식사 육칠천 원은 적잖이 부담되는 액수이다. 친분이 있어 상대의 사정을 고려해 주는 관계일 때는 그나마 부담감을 내려놓을 수 있지만, 후배나 고령의 선배를 대할 때에는 어떡하든 간에 먼저 계산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어디까지나 인간관계가 적용되는 세상의 셈법에서 구차스럽지 않으려는 방법이라면 방법일 터. 어쨌든, 만나야 하고 먹어야 하는 관계의 소중함 그 배후에는 소심한 자본주의의 속물성이 거리낌 없이 존재한다. 이런 게 우리의 삶이고 실상이기 때문이다.

'해뜨는 식당'은 숫자에 민감한 우리 삶을 아낌없이 조롱하듯 한 끼의 행복을 단돈 천 원에 팔아왔다. "배고픈 사람이 찾아오는 한, 식당 문을 닫지 말라."는 김선자 할머니의 유언에 화답하듯 대인시장 상인회장은 약속을 지키겠노라 했고, 광주 직할시장은 추도사를 빌어 '광주 정신'이라 정의내리기도 하였다.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장면이었고 잠정적 결론은 해피엔딩이었다.

심윤섭 양세찬 오승찬 이재홍은 김기국이란 친구와 한 조가 되어 달리기 시합에 참여했다. 출발 신호가 떨어지자, 앞서 내달리던 네 친구는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느닷없이 멈춰 서버렸다. 돌연 순위에 개의치 않으려는 듯 몸을 되돌려 꼴찌로 달리던 김기국이란 친구의 손을 붙잡고 나란히 다시 뛰기 시작했다. 결과는 모두 같은 등수였다. 전부 일등이라 하기도 뭣하고 모두가 꼴등이라 하기에도 멋쩍은 광경이 펼쳐졌다. 경쟁을 통해 자신을 입증하고, 살아남기 위해 남을 짓누르거나 남보다 앞서 가야 하는 경쟁적 시각으로 봤을 때, 그건 분명 반칙이었고 반동적 행위였다. 그러나 그날 운동회는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고 행복했으며, 살맛나는 미래 세상을 보여주는 작은 암시였다. '연골무형성증'을 앓고 있는 친구를 위해 같은 선상에서 함께 뛴 다른 네 친구의 작은 반란은, 반년이란 시간차를 넘어 화석처럼 굳어버린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지난 해. 4월 16일 이후로 너무 많이 쓴 눈물을 흘렸던 고로,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 같았던 눈물은 여지없이 쏟아지고 말았다. 진작부터 인천 동구 화도고개 너머 '민들레 국수집'을 흠모했을 때에도 그렇지 않았고, 승부가 중요한 단서로 남지 않는 미국의 어느 초등학교 운동회(Play day)를 보고도 감동하지 않았었다. 돌이켜보니, 우리는 숫자놀음과 경쟁에서 비교우위를 점하려는 점령군의 모습으로 자신의 사회를 우악스런 공간으로 만들지 않았나 반성하게 만들었다. 만물의 소생이 물에서 비롯되듯이 삶을 회생케 하는 것이 눈물이라는 걸 믿는 바. 수혈 아니, 수루(輸淚)가 절실한 때가 아닌가 생각했다. 이쯤에서, 우리 사회를 아름답고 건강하게 잘 살도록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위정자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유권자를 향해 멋들어지게 포장된 공약은 진정성과 실현성이 떨어진 진부한 외투였고, 사소한 약속도 못 지키면서 헛된 짓들을 일삼는 이 비루한 현실을, 우리는 역사의 기록에 또 남겨야 하는 상황이 그저 안타까웠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두 달 여 상간으로 트리를 설치하고 이후 철거하겠다는 중구청과 축제 위원회 관계자들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성탄의 기쁨과 지역상권 활성화의 깃대를 세워 어둔 동네를 불 밝혀보겠다는 예견도 헛나가고 말았다. 되레 콘크리트로 무장시킨 우회도로를 존치, 철거를 주민들의 설문지 조사로 무마하려 하는 꼼수를 자행하기도 했다. 뭐, 이 정도면 약속이고 뭐고 막가도 되는 행정이고 주민의 의사는커녕 민주주의의 기본을 무시하는 의회도 아니겠는가. 감동의 정치를 구현하겠다는 위정자 치고 제대로 눈물을 흘려본 위정자가 없는 터에, 주민들 또한 사막처럼 메말라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일의 김선자 할머니와 김기국과 그 친구들이 더더욱 기다려진다.

제 삶의 터가 진정 원하는 호곡장(好哭場)이 될 수는 없는지 가슴이 치밀고 있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가운데 '호곡장' 부분을 읽다보면 울어야할 장소가 있다고 했다. 슬픔도 울음이 되지만 기쁨도 울음이 된다 했다. 감동과 희망이 넘치는 새로운 세상을 현재 이 자리에 만든다면 거기, 분명 통렬히 울어도 좋으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