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진개문화마당 황금가지 대표
'살짝 빨아들이면 향기 그윽하고(細吸涵芳烈), 슬그머니 내뿜으면 실처럼 간들간들' 하다. 다산 정약용은 자신이 피운 淡婆今(담바고)의 경험담을 '煙연'이란 시에 남기고 있다. 신동원 저 <조선의약 생활사>에 소개된 짤막한 내용이다. 요즘처럼 끽연에 대한 인식이 불경스럽다 못해 죄인 취급받는 상황에서 선인의 낭만적 섬세함과 희화화된 체험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신유사옥(1801)에 연루돼 포항 장기곶으로 유배된 상황으로 짐작컨대, 옥죄는 시간과 영어의 공간성을 달래주는 데에 끽연만한 것이 없음을 반증하고 있다. 그러나 다산을 예로 들었다한들, 애연가의 처지를 너그럽게 받아주는 정서는 도처 어디든 찾아 볼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오히려 담배와 관련된 협박성 광고와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기사들이 연이어 각종 지면을 장식해 마치 끽연가를 '현대인의 삶에서 단죄 받아야 할' 사람으로 만들어 놓기에 이르렀다.

새해 첫날.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저자의 고별연(告別煙)은 끽연을 즐겨하는 다수의 익명에게 현실적 한계상황을 여지없이 드러내주었다. 40여 년 넘게 피운 담배의 마지막 한 개비를 끄는 그믐밤의 암흑을 '손주와 노는 즐거움(弄孫樂)'으로 대체하려는 저자의 글꼬리에서 '실처럼 간들간들' 사라지는 절연의 허무감마저 느껴지기도 했다. 사회 저명인이 이러할진대, 일반 서민들의 심정은 휴지조각에도 쓸 수 없는 절박함 그 이상이 가슴에 박힐지도 모를 일이다. 가뜩이나 어려워진 가계살림에 압력이 가해지는 고가의 담배 값과 흡연자를 압박하는 금연 광고 문구들도 삶의 불안감은 더욱 가중시키게 되었다. 전년대비 금연 클리닉에 등록한 흡연자가 세 배 이상 늘어났다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나오고, 담배를 끊는 데에는 단박에 '돈오돈수'의 깨달음이 아니면 실행하기 어렵다는 경험자의 전언들도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이마저도 잠시일 뿐, 두 달여 만에 금연 클리닉에 등 돌린 사람들이 증가했고 흡연 의지에 도로 불을 댕기는 흡연자들이 다시 늘고 있다는 보도로 이어졌다. 담배 가격을 올리면 자연스레 끊어질 것이고 세수가 늘어 건강사회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정부의 예견과는 다른 상황이 전개되었던 것이다. 현 정부의 두터운 지지층인 노인 저소득층의 반발과 저가 담배의 출고 개진이 정책의 혼선을 일으켜 일관성 없는 무능함을 증명하기도 했던 것이다.
여하 간에, 필자는 정세의 시소 놀이에 참여하고 싶거나 흡연의 울타리를 벗어나고 싶지 않다. 인류문명이 낳은 변화무쌍하면서도 무형인 굴레 그 자체를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콜롬비아 출신으로 현대미술을 전공하는 안드레아(Andrea Posada Escbar)는 "코리아 아빠는 골초(Heavy smoker)가 아니라 마치 담배랑 연애(Fall in love)하는 것 같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의(義)딸로 삼은 인연도 있거니와 연기 자욱한 불편한 상황에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게 가상을 넘어 예의 바르다는 생각이 잠시 스쳤던 기억도 있다. 1990년 대 초반까지 국제선 비행기 맨 뒷좌석 풍경. 장시간 비행을 생각해 흡연석에 앉았지만 연실 담배를 꼬나문 '터번의 사나이'로 인해 담배 지옥을 경험했던 것처럼, 안드레아도 참기 어려워 그나마 내뱉은 한 마디였으리라 짐작된다. 명백한 타인에 대한 해 끼침이다. 그럼에도 필자는 담배와의 절연을 억지로 실행할 생각은 없다. '담배는 다 좋은데, 한 가지 나쁜 점은 백해무익'하다는 말에 동감하는 이상, 사회적 강요와 정신적 압박은 우리 사회의 떨칠 수 없는 모순 구조와 너무나 일치하므로 더 이상의 논란거리로 보기 어려운 것도 그 한 가지이다.

한 때, 우리나라 근대 담배사의 시발을 알렸고 한국전쟁 전후 인천 경제의 한 획을 긋기도 했던 담배였다. '영미연초주식회사'와 '동양연초주식회사'가 그렇고 해방정국 당시에는 인천시민들이 일제 담배 전매소 습격사건 등이 대중일보에 대서특필되기도 했던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빈 담배 값 10장을 모아 오면 활동사진을 보여준다는 세창양행 광고는 담배역사라는 그릇에 고명 같은 한국영화사의 단초를 파악케 하기도 한다. 아울러 해방정국 당시에는 비싸진 담배 값으로 인해 사재기 해놨던 일본인 소유 담배 전매소를 시민들이 습격 강탈하기도 했던 일도 벌어졌던 것이다. 이렇듯 담배는 조선 후기와 근대시기, 그리고 현대와 최근에 이르기까지 박래품으로서 외래 자본축적의 '필요불요'란 두 얼굴이었고 문화의 도화선이기도 했던 점을 도외시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선택해야 한다고 한다. 비상식적인 담배 값 인상과 국민건강 도모를 위해 금연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세수입과 정치적 입장 등등의 복선을 포함해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한다. 끊을 것인가 말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