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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혼다 연방하원 의원을 처음 만났던 것은 필자가 한국 인권재단 이사장으로 있던 2002년도였다. 워싱턴 의회 사무실에서 만난 혼다 의원은 초선의원 답지 않게 의연한 논조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일본계 미국인으로 일본의 잘못된 점을 조목조목 집어가면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정과 사죄 그리고 역사적 책임과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혼다 의원에 큰 감명을 받았다.

▶필자와는 동갑내기인 혼다 의원은 1941년 캘리포니아주의 월넛 그로브(Walnut Grove)에서 태어났다. 진주만 폭격으로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자 그의 가족들은 콜로라도주의 일본계 강제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그의 아버지는 산호세에서 딸기 농장의 소작인으로 일했다.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수용소 생활을 겪고 농장의 소작인 가정에서 자란 혼다 의원은 스스로 미국의 꿈을 개척해 나갔다.

▶오늘날 실리콘밸리의 중심도시가 된 산호세 고등학교와 국립대학을 거쳐 생물학 박사가 된 그는 20대에 미국 평화유지군 소속으로 중남미 엘살바도르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그 후 과학교사가 된 혼다 의원은 공립 고등학교 교장을 거쳐 지역 활동에 헌신하다가 주의회 의원을 거쳐 2000년에 캘리포니아 제15선거구에서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마이크·혼다의원은 하원에 진출한 직후 모국인 일본에 대해 제2차 대전 중의 전쟁 범죄에 사죄와 보상을 촉구하는 결의안 AJR 27로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계속해서 전미국유색인지위향상협회와 인권운동 같은 민권운동에 앞장서면서 이들을 지원해왔다. 일본의 국격을 높이고 존경받는 국가가 되기 위해서 위안부 문제 사죄를 역설하는 혼다 의원이야말로 차원 높은 일본의 애국자로 느껴졌다.

▶요동치고 있는 워싱턴 정가의 연말을 뒤로하고 우리나라에 온 혼다 의원과 박근혜 대통령이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면서 오랜만에 감동을 느꼈다. 혼다 의원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보금자리인 '나눔의 집'을 2007년부터 4번째로 찾아 할머니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정신과 용기에 존경을 표했다. 초지일관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확인하는 노 정치인의 모습이 정말 아름답게 보였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