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채 소설가
살다보니 뜻과 생각이 맞는 좋은 사람을 만나고 오랫동안 유대관계를 갖는 일이 퍽 어렵게 생각되었다. 그 어려움만큼이나 삶에서 중요한 것이 사람을 맞나 관계 맺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최근 뜻밖의 기사를 접했다. 최근 한 대학교 학생커뮤니티에서 새학기가 되면 가장 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 중 33%에 달하는 학생이 '아싸'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전체 설문 중에서 가장 많은 득표를 차지하기도 했다고 한다. 동아리 활동과 CC(캠퍼스 커플)도 제친 수치라니 놀라웠다.
'아싸'는 대학 내 활동에 소극적인 '아웃사이더'를 줄여서 일컫는 신조어란다. 설문에서도 짐작했겠지만 이 '아싸'는 소위 자발적 아웃사이더들이다. 이들은 대학 생활 중에 누려야 할 모든 관계를 포기하거나 단절하고 공부와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에 집중한다고 한다. 점차 경쟁이 치열해지는 대학생활로 인간관계가 극단적으로 파편화돼 가며 나타난 현상이라는 분석이었다.
언젠가부터 '청년'이라는 그 싱싱한 언어가 빛을 잃은 듯하다. 청년의 패기와 열정이 이 사회의 어두운 곳을 없애기 위해, 약한 자와 함께 하기 위해 힘을 모우고 연대를 과시하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다. 철학책을 탐독하고, 이 사회와 세계를 바라보고 청년이 앞장서서 이 세계의 불합리와 싸우는 일은 오랜 과거가 된 듯하다.

작년 이맘때 학생들의 사회참여를 독려하는 대자보 '안녕들 하십니까'는 그래서 더욱 신선했다. 대자보 '안녕들 하십니까'는 고려대 경영학과 주현우씨가 교내에 붙인 것으로, 정치·사회문제에 침묵하는 대학생들에게 목소리 내기를 독려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아싸'의 통계를 보면서 이 사회가 청년들을 스펙 쌓기로 몰고 있는 외부적 요인 말고도 스스로를 유폐시키고 있는 내부적 요인에 더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어려서부터 각종 게임기, 컴퓨터, 휴대전화만 있으면 친구가 필요 없었다. 밥상에서도,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각자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린다. 그렇게 자라다보니 관계를 맺거나 공동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사람과 부딪치는 일이 번거롭게 생각된다. 이젠 더 이상 은둔형을 가리키는 히키코모리는 낯선 용어가 아니다.

서로 어울리며 양보하고,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해 이해해나가는 과정이 없다보니 이기주의가 만연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내 삶을 간섭하고, 내 기분을 건드리는 것을 참지 못한다. 다른 사람으로 인해 손해를 보거나 피해를 당하는 일을 참지 못한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생각할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별종 취급을 해버린다. 텔레비전에서는 노골적으로 '나만 아니면 돼.'를 외친다. 물론 오락프로이고 벌칙을 나만 당하지 않으면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과장된 표정을 지으며 '나만 아니면 돼'를 외칠 때 나는 소름이 끼친다. 지금 이 사회를 사는 우리 모습이 그렇다. 이런 모습은 점점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움직여야 할 청년들이 스스로를 아웃사이더 시킨다는 기사는 그래서 씁쓸하다. 씁쓸한 정도가 아니라 불안하기까지 하다.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는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가치가 분명히 있다. 삼인행필유아사 (三人行必有我師).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이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
스스로 하루를 마감할 때 나는 얼마나 주체적인 삶을 살았나 돌아보아야 한다. 시간에 얽매여서, 휴대전화에 묶여서 나의 삶은 어느새 피동적인 인간이 되어 끌려가는지도 모르고 끌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문을 열고 나와서 함께 어울려야 한다. 우리는 사회적 인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