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향민 2세인 필자는 최근 제20회 인천지구 이북 도민 고향의 날 행사에 참석했다. 해마다 열리는 행사지만, 올해는 유독 마음이 더 무거우면서도 따뜻했다. 행사장에 들어선 순간, 작고하신 부모님이 평생 그리워하던 북녘의 공기가 어딘가 스며 있는 듯했고, 오래 묵혀 두었던 감정들이 서서히 되살아났다.
그 자리에서 황해도 옹진군 동남면 명예 면장 김재도 어르신(1936년생)을 만났을 때, 가슴이 뭉클해졌다. 오랜 세월 고향을 품고 살아온 어르신의 표정에는 그리움과 회한, 그리고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전쟁은 부모님의 삶을 하루아침에 바꾸어 놓았다. 고향과 이웃을 뒤로한 채 남겨둔 들판의 기억, 헤어질 줄 몰랐던 사람들과 갑작스러운 이별, 그리고 '이북 사람'이라는 편견과 마주해야 했던 불편한 시선, 이 모든 것은 부모님 세대의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1921년생이신 아버지는 백령·대청·소청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머구리 잠수부였다. 깊은 바닷속에서 생계를 책임지려고 온몸을 바친 아버지는 여러 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겼고, 동료를 잃은 날에는 긴 시간 슬픔을 안고 살아야 했다. 노년에 이르러 영흥도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딛고자 한겨울에도 조개와 굴을 채취하며 삶을 이어가셨다. 아버지의 삶은 실향민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고단함과 인내를 그대로 보여준다.
행사장에서 명예 면장님이 펼쳐 보인 1982년 제작된 동남면 도면은 소중한 기록물이었다. 낡고 바랜 도면 위에서 어르신은 “네 부모님 댁은 이 옆 마을이었어”라고 설명해주었다. 그 한마디가 마음 깊은 곳을 울렸다. 한때 16개 리로 구성돼 활기 넘치던 동남면은 지금은 열 명 모이기도 어려운 실정이라는 어르신의 말은 세월이 남긴 상흔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실향민의 이야기는 개인의 추억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전쟁의 비극과 더불어 새로운 땅에서 버텨온 삶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실향민 1세대가 빠르게 고령화되는 지금, 그들의 증언과 기억은 사라질 위험에 놓여 있다. 잊히는 것은 곧 우리의 현대사가 사라지는 일과 다르지 않다.
옹진군은 실향민의 비중이 높은 지역이다. 그렇기에 이들의 삶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은 행정의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수행해야 할 과제이다. 실향민 기념행사 확대, 생활상을 담은 자료집 발간, 실향민 1세대 구술채록, 고향의 날 상설관 조성 등은 지역이 반드시 추진해야 할 사업이다. 이러한 기록사업 등은 실향민에게는 위로가 되고, 후세에게는 배움이 되며, 지역에는 소중한 역사적 자산이 된다.
바람이 있다면, 평생 고향을 가슴 깊이 품고 살아온 이북도민분들이 오래도록 건강하게 우리 곁에 머물러 주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통일된 대한민국에서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고향을 직접 밟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우리는 실향민의 삶을 잊지 말고 기록해야 한다. 그것이 분단의 아픔을 넘어서는 우리의 책임이며, 후세에 반드시 남겨야 할 역사이기 때문이다.
/김진성 전 인천시 옹진군 부군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