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성 만월대에서 남북 공동발굴 조사단이 공동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국립문화재연구소

 

 

▲ 만월대 유적에서 출토된 금속활자본. /사진제공=남북역사학자협의회

 

▲ 개성 한옥 모습. /사진제공=국립문화재연구소

 


금강산 신계사 대웅전 터
문화유산 공동발굴 첫 발
북한 내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로 공조 본궤도 올라

南 흥왕사지 발굴 제안에
北 "만월대 조사" 역제안
고려 황제 400년 '집무실'
십여년간 8차례 공동조사
국보급 유물 '금속활자본'
출토로 사업 필요성 각인


"5000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다.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자."

지난해 9월19일 남북정상회담에서 밝힌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이다. 우리는 5000년 역사를 잊고 고작 70년의 동족 비극사로 인해 떠오르는 새해를 남북으로 갈린 땅 위에 마주 봐야만 했다. 그러나 2019 기해년에 태양은 결코 어둡지 않다. 그 어느 해보다 밝게 떠오른 태양, 다시 한 번 평화의 바람이 한반도 전역을 뒤덮으며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공동 자산, '남북 문화유산' 이제는 우리가 함께 지켜내야 한다. 후대의 우리 자손들에게 물려 줄 문화유산에 남과 북은 없다. 오로지 한반도만 있을 뿐이다.

문화유산에 휴전선은 없다
11월26일, 아프리카에서 낭보가 날아왔다. 우리 전통의 민속 경기 '씨름'이 사상 처음으로 유네스코 남북 공동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된 것이다.

당초 '씨름'의 유네스코 등재 신청은 남북이 각기 진행했다. 한국은 2016년 3월, '대한민국의 씨름(전통 레슬링·Ssireum, traditional wrestling in the Republic of Korea)'으로 등재 신청이 이뤄졌고 1년 뒤 북한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씨름(조선식 레슬링·Ssirum, Korean wrestling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이란 명칭으로 등재를 신청했다.

아프리카 모리셔스에서 열린 제13차 무형유산위원회에서 남북이 각기 신청한 씨름을 한데 묶기로 하고 24개 위원국의 만장일치를 얻어 공동 등재를 최종 결정했다.

이번 공동 등재로 지난 판문점 선언 후 남북 관계 해빙의 정점을 찍으며 남북의 공동 과제, 문화재 보존과 발굴, 복원 사업에 돛을 달았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재청 국정감사의 최대 화두는 남북 문화재 공동 발굴 사업에 있었다. 2019년 남북문화재공동발굴 예산이 17억1000만원으로 책정된 가운데 여야의 온도차가 극명하게 나타났지만 유실 위기에 놓인 북한의 문화재 발굴이 시급하다는 것에는 한목소리를 냈다.

남북문화유산 교류의 시작은 1990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북 최초 문화유산 논의가 진행됐던 것은 아시아사학회가 주도한 학술대회에서였다. 북한 대표 연구자로 참석한 손영종에게 헤어진 가족과 상봉하는 기회가 주어졌던 의미 있는 학회로 기록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북한 현지 조사가 가능해지면서 남북의 문화유산 교류는 활발해졌다.

그 시기에 첫 번째로 진행된 '금강산 신계사 대웅전지' 발굴조사는 남북 문화재 공동 보존 사업에 물꼬를 트는 계기를 마련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4년간 6차례 진행된 신계사 발굴조사에서는 건조물 복원, 단청 불사, 삼층석탑의 수리, 복원 등이 함께 추진됐다.

이어 2004년과 2008년에는 개성공업지구 문화유적 발굴조사가 진행됐는데 북한의 공단 개발에 앞서 지표 조사가 필수적인 상황임을 북한 학자들에게 알리는 계기로 작용했다.

2004년 북한과 중국에 소재하고 있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남북 문화유산 공동조사 연구에 본격적인 활로를 모색케 했다.

고구려 고분벽화는 삼국시대 생활문화 전반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학술자료로 보존과 연구가 반드시 필요해 보였다. 벽화 고분들의 대다수가 북한과 중국에 있고 중국 내 고분벽화의 접근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과의 공조는 절실했다. 그간 고구려 유적조사에 미진했던 북한 학계 상황도 절박하기는 매한가지였다. 2000년대 들어 새롭게 조사 발굴된 '태성리 3호 무덤'을 비롯, 2016년 '천덕리 벽화무덤'에 이르기까지 고분벽화의 잇따른 발견은 연구 조사 가치는 더욱 높아지게 됐다.

2007년 시작으로 2015년까지 총 7차례 공동 연구조사를 해오다 북한의 핵실험 과정에서 중단됐던 개성 만월대가 2018년 남북 화해 정세에 따라 재개되면서 문화재공동보존작업이 다시 한 번 힘을 얻게 됐다.

400여년간 고려의 황제가 정무를 보던 곳으로 당시 고려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개성 만월대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역사적 가치가 높았던 만월대 발굴 작업에서는 40여동의 건물터와 금속활자, 청자, 도자기 등 약 1만6500여점의 유물을 발굴하고 옛 고려 궁성의 배치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성과를 거두게 됐다. 현재는 12월10일 기점으로 발굴조사가 중단됐고 오는 2월 제9차 조사를 앞두고 있다.

2019년 기해년, 남북 문화유산의 공동 발굴과 보존 사업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제9차 개성 만월대 남북 공동 발굴 및 보존 사업을 중심으로 평양 소재 고구려 고분(평양 대성구역 고산동 소재 고분)까지 확대 추진한다. 아울러 태봉국 철원성 등 비무장지대 내 문화유산을 기초자료로 활용하고 공동학술대회를 통한 중장기적 보존 방안들이 논의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불법 반출 일본 소재 북한 문화재 반환을 위한 기초자료 조사가 올해 추진될 계획이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지난 국감에서 비판적 견해를 보였던 여야 의원들도 지난 씨름의 유네스코 공동 등재와 DMZ 내 문화유산의 발굴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들을 보여주고 있다"며 "문화재청은 문화유산을 통한 민족 문화의 복원과 번영을 이루는데 보다 구체적인 실행 계획과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한민족 공동유산인 문화재 분야 교류협력을 통해 한반도 평화 정착과 통일 시대를 앞당기는데 일익을 담당하겠다"고 말했다.

만월대, 그 평화의 시작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 발굴조사 사업은 대표적인 남북사회문화 협력사업으로 지난 10여년간 꾸준히 추진돼 왔다.

2001년 3·1절을 기해 평양에서 열린 남북공동 학술토론회를 시작으로 매년 평양에서 남북공동 역사학 학술회의가 개최됐고 이후 문화유산 발굴 조사로 이어져 왔다. 꾸준한 북과의 접촉으로 문화유산 공동발굴을 타진해 온 남북역사학자협의회(이하 역협)는 2005년 개성역사지구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남북공동 학술토론회 및 유적 답사 행사를 열고 교류사업을 추진해 왔다.

당시 북측은 개성역사지구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남북 당국 간 협력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민간 차원의 지원이 절실했고 이를 지원하기 위해 남한에서는 역협을 파견해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 발굴 조사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당초 우리가 제안 한 발굴 대상지는 만월대가 아닌 '흥왕사지'였다. 흥왕사는 고려시대 최대의 사찰로 현재 남아있는 흥왕사 터가 개성공단에 인접해 있어 공단 확장 시 문화재의 훼손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북측 민족화해협회의 최종 답변만을 기다리던 중 괄목할 만한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일각에서는 대북 물자 지원에 대해 '퍼주기'라는 비판적 시각이 일었고 남북 간의 오해와 분란을 잠재우기 위한 특단의 대책으로 민족문화유산의 보존·관리에 필요한 자재와 기술의 지원이 제시됐다. 남측에서 지원하는 물자들이 문화유산에 국한된다는 것에 북측은 당황했지만 이를 통해 민족공동자산 보존에 뜻을 같이한다면 반대의 목소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리 측의 설득으로 화해와 통일이 저해되지 않길 바랐던 북측 역시 받아들이게 됐다. 이 사업이 보수 정권 하에서도 큰 반대 없이 9년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데 북측 문화보존지도국 리승혁 처장은 돌연 흥왕사지가 아닌 만월대의 발굴조사를 제안한다. 흥왕사지 답사 결과 유적지 발굴 성과가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 리 처장의 전언. 반면 남측에서는 강한 반대의견이 있었다. 600여년간 폐허로 방치되어온 곳을 발굴조사했을 때 성과가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북한의 흥왕사지 발굴이 적절치 않다는 답사 평가에 따라 만월대를 최종 발굴 대상지로 정하게 됐다.

2007년 5월15일, 군사분계선을 넘은 남측 조사단은 제1차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발굴조사의 역사적인 순간을 알렸다.
 
북측과 경계선을 나눈 상태에서 진행된 발굴조사는 보름이 지날 무렵 발굴조사 지역 3만3000㎡ 전역에서 만월대 궁궐 유적이 지하에 고스란히 남아 있음을 확인했다. 또한 남북조사단은 서부건축군이 위치했던 건물지 40여동을 확인하고 축대 및 배수로를 확인하는 성과를 거뒀다.
 
2007년 9월7일부터 11월16일까지 진행된 제2차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 발굴조사에서는 조사방식에 변화가 생겼다. 1차에서 각기 구역을 나눠 발굴조사가 이뤄진 것과 달리 남북의 조사단원들이 함께 작업을 하게 된 것이다. 당시 조사단에 의하면 섣불리 남측의 방식을 강요하지 않고 북측 역시 남측의 조사경험이 풍부하다는 것을 인정하며 배려와 존중 속에 발굴조사가 이뤄졌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특히 2차 시굴 조사 당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실사단이 개성 만월대를 방문해 "정치군사적 대립을 넘어 역사 유적을 보존관리하기 위한 남북의 공동 노력과 의지에 경의를 표한다"며 말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여곡절을 겪은 개성역사지구는 마침내 2013년 6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대북정책 재검토'에 따른 남북협력사업들이 잇따라 중단됐지만 유일하게 만월대 발굴조사만은 지속됐다.
 
오랜 협의 끝에 11월4일부터 12월23일까지 진행된 3차 조사에서는 왕실의 제례 공간인 경령전을 발굴하게 되는 성과를 거뒀다. 개성관광 중단 등의 상황에서 어렵게 진행된 2008년 조사에서는 청자접시 완형, 청자반구병 완형, 청자기와 완형 청자바리 완형, 범자문 막새기와 등 3600여점의 유물이 발굴됐다.
 
2009년 들어서 남북관계는 더욱 악화일로를 걸었다. 2010년 시작과 동시에 우리 측은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불허 한 상황 속에서 보다 빠른 발굴 작업이 필요했다. 2010년 3월23일부터 5월18일까지 이뤄진 4차 조사에서는 만월대 축조 이전 지형에 대한 정보와 선대 유구의 흔적을 발견했고 이어 2011년 11월14일부터 12월20일까지 5차 보존조사를 통해 당시 수해로 인한 긴급 복구 작업이 진행됐다. 나중에 와서 알려진 얘기지만, 당시 정부가 5·24 조치를 내렸음에도 긴급 복구가 요구되는 점을 들어 사업 승인이 이뤄진것으로 전해졌다. 2011년 12월 말 발굴작업이 중단된 뒤, 2년 만에 재개한 제6차 공동발굴조사에서는 왕실의 집무구역인 중심 건축물로 이동하는 통로에서 대형계단을 발굴한 성과를 거뒀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후 거둔 의미있는 결과였다. 제7차 발굴을 앞두고 북한 수뇌부 제거, 평양 점령 등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태였다. 그러나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중심건축물 장화전 구간의 서쪽 축대, 우물 등 만월대를 구성하는 다양한 유구가 확인된 것뿐만 아니라 국보급 유물인 고려금속활자가 출토되면서 공동발굴의 필요성에 대한 강력한 계기가 마련됐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 강진갑 경기학회 회장.
▲ 강진갑 경기학회 회장.

 

"문화유산은 민족의 자산…발굴 지원해야"
강진갑 경기학회 회장

"예산 투입 '긴급조치'로 이해를"
"DMZ, 전쟁유산 보존가치 있어"
"'실학학술대회' 합의 아직 유효"

"경기는 통일로 가는 길목입니다."
 
판문점 선언 이후, 각 지방자치단체들의 움직임은 빨라졌다. 철저하게 중앙부처의 권한에 따라 움직였던 지난 과거 남북교류협력사업 모습들과 달리 지자체들은 각기 지역의 지리적, 사회적 특성을 고려한 남북교류 사업들에 초석을 다지기 시작했다. 특히 여타 분야보다 진입 장벽이 낮은 '문화' 교류에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앞 다투어 관련 사업들을 내놓고 있다. 그 가운데 접경지역을 대거 포괄하고 있는 경기도는 중추적 위치에 있다고 보여 진다. 강진갑 경기학회 회장을 만나 '경기'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진단해 보고 언론 최초 공개되는 '남북공동 실학학술대회'의 비화를 전한다.
 
최근 남북문화유산 공동발굴에 관련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강진갑 교수의 의견은 확고했다.
 
"물론 남한의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다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남북 문화유산은 민족공동자산입니다. 북한의 문화재 발굴·보존 수준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남한의 절대적인 지원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향후 통일을 염두 한 긴급조치 차원의 개념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강 교수는 남북화해무드에 따라 경기의 전략적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보고 우선순위 과제로 비무장지대(DMZ) 내 유산 발굴·보존에 대해 제시했다.
 
"분단 70년간 단 한 번도 조사되지 않은 곳입니다. DMZ는 곧 문화유산의 보고죠. 특히 제가 주목한 것은 고고학적 문화유산이 아닌 전쟁 유산입니다. 말 그대로 6·25 전쟁 당시 파묻혀 있던 지뢰, 유해, 포탄 등 폐기물로 여겨지는 이것들이 역사적 보존 가치가 있다고 보는 거죠."
 
그가 말한 의미는 지난 1995년 일제의 잔재로 여겨져 철거됐던 중앙청 폭파 사건을 전례로 뼈아픈 역사에 잔재일지라도 역사적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부끄럽고 창피한 역사라도 없애고 숨기기보다 독일이 베를린 한가운데 장벽의 일부를 둔 것처럼 우리도 그것을 보존해 미래 후손들이 경각심을 깨우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는 아직까지 한 번도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DMZ의 문화유산에 대해서 경기도의 선도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또한 2012년부터 지속적으로 경기도가 맡아왔던 개성한옥마을 보존사업은 만월대 복원과 함께 추진돼야 하는 중요 사업으로 꼽았다.
 
"현재 국내에 남아있는 한옥의 형성 시기는 대개 1930년대 이후에 것들이 많죠. 조선시대 기점으로 만들어진 한옥들은 전주 한옥마을이나 안동 하회 마을 정도가 유일하기 때문에 조선시대 이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개성한옥마을의 보존이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강 교수는 당시 경기문화재단 소속으로 개성한옥마을 복원사업을 추진해오며 역사적 보존가치에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그가 제시한 것은 개성한옥마을 보존사업 말고도 또 한 가지가 있었다. 2006년도에 들어 강 교수와 경기문화재단은 북측 민족화해협의회와 실학학술대회 합의를 체결하고 사업 추진을 계획했었다.
 
"경기문화재단이 실학학술대회를 추진하게 된 배경에는 실학자였던 연암 박지원 선생의 묘가 개성에 있다는 것에서 기인합니다. 파주와 맞닿아 있는 지리적 이점과 18세기 실학을 집대성한 인물, 박지원 선생에 주안점을 둔 학술대회 개최 관련 남북 합의서를 이끌었지만 아쉽게도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이행되지 않았기에 합의서는 충분히 유효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준비는 다 됐다. 한 발짝 한 발짝 작은 통일부터 시작한다면 머지않아 평화통일의 시대를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