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정체성 찾기] 이영태의 한시로 읽는 인천 옛모습 (48)
각국 사람 뒤섞인 세관 사무실 신기…일본인 눈에 비친 英 영사관 부정적
▲ 영국 인천영사관 설계도(1884년).

1883년 인천이 개항하였다. 인천 개항장에 각국 거류지가 조성되었다. 당시의 모습은 각국인들이 묘사한 기록을 통해 단편적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다.

그 중에서 특히, 『신찬인천사정(新撰仁川事情』(1898)과 『인천부사(仁川府史)』(1933)에는 전거를 밝히지 않은 한시(漢詩)가 있는데, 이는 1893년 발간된 『인천잡시(仁川雜詩)』를 인용한 것이다.

이 한시는 1892년 4월부터 1893년 3월까지 약 1년 정도 인천 전환국(典圜局)에 파견된 요코세 후미오(橫瀨文彦)가 인천과 관련된 소재 42개를 7언 한시 형태로 쓴 것이다. 금융, 병원, 학교, 영사관, 세관, 우편국, 담군[지게꾼], 세탁 등을 포함해 42개의 소재를 한시로 풀어쓴 자료이다.

요코세의 한시 1편에 대해 인천의 전환국 관사에서 함께 머물던 마쓰모도(松本正純)가 단평(短評)을 부기해 놓았다.
 
 稅關(세관)
 英日淸韓伊德班(영일청한이덕반) 영국, 일본, 청, 한국, 이태리, 독일
 異音同語簿書間(이음동어부서간) 이음동어(異音同語)의 공문서가 뒤섞여 있네
 流風未改舊時體(유풍미개구시체) 세상의 풍속은 아직 옛 모습을 수습하지 못했는데
 獨見新奇有稅關(독견신기유세관) 나 홀로 세관에서 신기함을 보았네

 
同曰 數邦之人 相集一衙 於他無匹 非新奇而何 또 말하길,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하나의 관아에 모여 있어도 그들을 서로 짝지을 수 없으니, 신기한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세관의 사무실에 영국, 일본, 청, 한국, 이태리, 독일 등 각 나라의 언어가 뒤섞여 있다. 필자는 이런 모습을 '이음동어(異音同語)의 공문서가 뒤섞여' 있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을 대상으로 자국의 이익을 확보하고자 하는 각국의 공문서를 지칭한다. 단평을 부기한 마쓰모도가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하나의 관아에 모여 있어도 그들을 서로 짝지을 수 없으니, 신기한 일'이라 진술한 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세관은 1883년 6월 16일 우리나라 최초로 인천에 창설돼 업무를 개시했을 때, 초대 세무사는 영국인 스트리플링(A. B. Stripling; 薛必林)이었다. 세관은 청의 세관을 본받아 창설한 것이기에 초기부터 청의 영향 하에 놓여 있었다. 특히 총세무사의 임명권을 청이 주관하고 있었기 때문에 갑오개혁(1894년)까지 청국세관에서 파견된 총세무사와 외국인 세무사들에 의해 관리·운영되었다.

그런데 세관과 관련하여 영국, 일본, 청, 한국, 이태리, 독일의 순서로 제시한 데에서 유독 영국에 대한 경계심을 읽을 수 있다. 영국영사관을 소재로 삼은 한시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英國領事館(영국영사관)
 岬角翩翻公署旅(갑각편번공서여) 산허리 모퉁이에 공관(公館)의 깃발 펄럭이고
 朱欄粉壁望巍巍(주난분벽망외외) 붉은 난간 흰 벽 높디높네
 世人不解後圖在(세인불해후도재) 사람들은 후일(後日)의 기도(企圖) 있음을 알지 못해
 只謂英民今住稀(지위영민금주희) 다만 거주하는 영국인이 드물다고 하네

 
同曰 英國居留商賈 寥乎無有 而置以領事廳盖有見於異日之趨勢也 또 말하길, 영국인들은 상가(商街)에서 기거하지만 없는 것처럼 조용하다. 그러나 영사관을 설치한 것을 보면 후일의 추세(趨勢)에 대해 알 수 있다.
 
『인천잡시』에서 '영사관'을 소재로 삼은 것은 일본영사관과 영국영사관뿐이다. 일본인의 눈에 비친 영국영사관은 부정적이다. '붉은 난간 흰 벽 높디높'은 곳에 있는 자들이 '후일(後日)의 기도(企圖)'를 도모하고 있지만 세상 사람들이 이를 알지 못한다고 한다. 그들의 움직임이 얼마나 은밀한지 왕래하는 사람이 드물게 보일 정도이다. 영국인들은 조용하지만 '후일의 추세(趨勢)'가 있을 것으로 예견하는 마쓰모도의 단평도 영국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