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본의 변경에 관해


 

   
▲ 인천지방법원 판사 이경훈

성명(姓名)은 개인의 동일성을 식별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호이다. 그 중 성(姓)은 일정한 범위의 혈연집단에 대한 명칭을 뜻한다. 한편 본(本)은 본관(本貫) 또는 관향(貫鄕)이라고 하는데 이는 시조(始祖)의 발상지를 의미한다. 본은 성과 병칭돼 개인의 부계 친족의 범위를 나타내는데 사용된다.

모든 사람이 아버지의 성으로 자신의 성을 정해 사용하는 제도를 부성주의(父姓主義)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부성주의에 의해 자녀의 성을 결정해 왔는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개별적인 사정을 이유로 성·본을 변경하는 것은 허용되지 아니했다. 그런데 종전 성·본 제도에 대해 헌법재판소로부터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다.

또 입양이나 재혼과 같은 가족관계의 변동으로 인해 양부 또는 계부의 성으로의 변경이 개인의 인격적 이익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짐에도 친부의 성의 사용만을 강요, 성의 변경을 허용하지 않는 것도 인격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이로 인해 '자녀의 복리를 위해 자녀의 성과 본을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 이를 변경할 수 있다'는 규정이 민법에 신설돼 지난 2008년 1월 1일부터 시행됐다.

일반적으로 자녀와 계부 등 재혼가정 구성원들의 성이 달라 가족간의 정서적 통합이 저해되고 정서적으로 민감한 청소년기에 친구, 동료들에게 재혼 가정에 소속된 사실이 알려짐으로써 정서적 불안이 야기되거나 또는 사회적 편견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성·본을 변경할 필요성이 인정된다.

그러나 자녀가 성·본의 변경을 원하고 그 필요성이 인정되더라도 성·본 변경으로 인한 문제점을 검토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서는 안된다. 다만 이혼한 전남편에 대한 감정이나 보복적 심정으로 자녀의 성·본을 변경하는 것은 자녀의 복리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범죄를 기도 또는 은폐하거나 법령에 따른 각종 제한을 회피하려는 불순한 의도로 성·본 변경 제도를 남용해서도 안된다. 나아가 성·본 변경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것은 부성주의 원칙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결과가 아니라 재혼가정, 입양가정 등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에 기인하는 것이라는 비판(헌법재판소 결정의 소수의견)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는 성·본 변경 제도만으로는 재혼가정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이러한 문제는 사회적으로 만연돼 있는 재혼가정에 대한 부당한 편견을 해소함으로써 근원적으로 치유돼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현재의 제도 아래에서는 계부 또는 어머니의 성·본으로 변경을 희망하는 것을 넘어 평소 존경하는 사람이나 좋아하는 연예인의 성·본으로 변경을 신청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유주의에 터잡아 개인의 자기 결정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시대 변화의 흐름에 비추어 볼 때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주관적, 개인적 선호도에 따라 마음대로 자신의 성과 본을 정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전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