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내가 의사를 찾아와 자기 아내가 좀처럼 아기를 갖지 못한다고 호소했다. 의사가 그 부인의 맥을 짚어 보더니 말했다.
"아, 불행하게도 부인께서는 사십일 안에 세상을 떠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아기를 갖느냐, 못 갖느냐 따위를 얘기할 때가 아닙니다."
그러자 부인은 너무나 놀라고 두려운 나머지 그날부터 내내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사십일이 다 되었는데도 그녀는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사내가 다시 의사를 찾아 갔다. 의사가 말했다.
"그것 참 다행이군요. 이제 부인은 아기를 가질 수 있을 겁니다."
어리둥절한 사내가 어찌된 일인지 물었다. 의사가 말했다.
"사실 부인께서는 너무 뚱뚱했거든요. 그래서 아기를 가질 수 없었던 거죠. 부인이 살을 빼기 위해서는 오직 죽음의 공포를 빌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곧 아기를 갖게 될 겁니다."
의사의 입에서 이런 얘기가 나오기 전까지, 그 부인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참으로 참담하고 억울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의사의 극(剋) 처방이 아니었다면 그 부부은 사랑스러운 아기를 가질 기회 또한 없었을 것이다. 부인은 아기를 낳을 때 다시 한 번 죽음의 공포를 겪게 되겠지만, 그것은 아기를 낳자마자 생명의 환희로 바뀌게 될 소중한 행복과 교환되는 것이다.
죽음으로 가는 지옥과 생명으로 다시 탄생되는 천국과의 차이는 이렇듯 종이 한 장 차이다. 따라서 이러한 차이는 마음속에 있는 어떠한 생각을 갖고 사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게 된다.
인간이 힘들고 괴롭다고 느끼는 것은 넓게 세상을 살피지 않고 이기심으로 바로 눈앞에 것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러한 현상을 운명론을 공부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사람은 자기가 타고난 운명의 기운에 의해 어느 순간 갑자기 무력해지는가 하면, 또 어느 때는 생기가 왕성해져 하는 일마다 안 되는 것이 없고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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