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유키코-12
 “조금만 기다리세요. 회의가 끝나는 대로 아침식사를 준비할게요.” “우리야 뭐.” “신세진 걸 갚는 다는 의미에서라도 그렇게 해야죠.” 미스안은 마치 친 누이처럼 말했다. 나는 미스안의 그런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군복무 시절에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태도였으니까. 더구나 그녀의 얼굴에서는 편안하고 자애로운 미소까지 흘러넘치고 있었다. 나는 상상치 못할 정도로 변모한 미스안을 보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차가울 정도로 냉정하고 싸늘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온 부대가 풍비박살이 나도 눈 하나 깜짝 않고 떠났던 것이다. 그런 그녀가 따스하고 부드러운 누님의 이미지로 변모해 있었다. 미스안은 나를 안심시키고 다시 청년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들이 회의를 하는 동안 홀에서 졸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극도의 불안함과 초조함을 달래면서. 아무튼 나와 유키코는 어깨를 껴안은 채 졸다 깨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또 다시 총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선무방송과 이에 맞서는 확성기 소리도 들려왔다. 미스안이 우리 쪽으로 걸어오며 작은 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계엄군이 어젯밤에 철수했대요.” “계엄군이 철수를 하다니요?”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미스안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도청을 점령했던 공수부대가 시 외곽으로 철수했다는 거예요.” “그러면 도청은?” “시민군이 장악했죠.” “아, 네에…” “시민군이 무장을 하니까. 계엄군이 철수를 한 거예요. 시민군 세력이 커지니까, 일단 외곽으로 물러나겠다는 거죠. 하지만 다시 들어올 게 분명해요.” 미스안은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다방 내실에서는 의견 충돌이 있는 듯 다소 말소리가 높아졌다. 그러자 미스안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내실로 들어갔다.
나는 소파에 걸터 앉은 채로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리고 길게 내뿜었다. 그러나 초조하고 불안한 감정을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불안한 것은 유키코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연신 밖에서 들려오는 확성기 소리와 총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귀국 날짜는 언제죠?”
 “내일이에요.” “내일이라고요?” 나는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유키코가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을 말하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고. 아니, 한국에서 이런 상황에 빠지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고. 나는 낯선 곳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유키코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쩌면 그녀와 내가 운명의 끈에 의해 단단히 매여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그녀도 마찬가이인 것 같았다. 내가 바라보자 그녀가 얼굴을 붉히면서 미소를 지었으니까.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담배만 뻐끔거렸다. 그러자 유키코가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도 한 대 줄래요?” “담배를 피울 줄 압니까?” “피울 줄은 모르지만… 한번 피워보고 싶어서요.” “하긴 긴장감을 해소하는 데는 담배가 제일이죠.” 나는 담배 한 가치를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라이터를 켜 불을 붙여 주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담배를 물고 연기를 들이켰다. 내 예상대로 그녀는 한참동안 캑캑거리며 기침을 해댔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쿡쿡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