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해무-16
 (제80회)
 
 나는 몇 번인가 부두로 나가는 길에 그녀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말도 없이 목례만 하고 지나쳤다. 그리고 언젠가는 바닷가에서도 부딪친 적도 있었다. 그녀는 물속에서 무언가를 건져내는 중이었는데, 내가 다가가자 생끗 웃어 보였다. 마치 천진난만한 소녀처럼. 나는 그때까지도 그녀의 마음과 의중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가자구 가. 빌어먹을.”
 고정근이 이렇게 중얼거리며 걸어가자 그녀도 따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씁쓸한 마음으로 돌아섰다. 그리고는 천천히 지서 계단을 올라갔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지서 쪽을 향해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분명히 여자의 발소리였다. 아니, 미스정의 발소리가 분명했다. 내가 뒤를 향해 돌아서자 미스정이 숨을 몰아쉬며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나는 멍한 표정으로 미스정을 바라보았다.
 “기억나세요? 정소희라는 여고생.”
 “정소희?”
 나는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는 이내 한 여자애를 떠올렸다. 광주사태 당시에 목숨을 구해준 가녀린 여고생을. 아니, 진압군에 폭행당해 죽어가던 한 소녀애를. 그녀는 바로 정소희라는 여고생이었다. 그것도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나는 놀란 눈으로 미스정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여기에 들어와 있어서 무척 놀랬죠?” “응, 전혀 짐작도 못했어.”
 “나도 사실은… 얘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모른 척하고 있었던 거야?” “네, 그랬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 말에 미스정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오빠는 전혀 변하지 않았군요.” “그건 소희도 마찬가지야.” “아니에요. 나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됐어요. 보세요. 이렇게 막 살아가고 있잖아요.” “누구든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잖아.”
 “그렇지 않아요.” “아니야. 나도 이렇게 살고 있는데 뭘.” “그런데 어떻게… 경찰이 됐어요?”
 그녀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살다 보니까 그렇게 됐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어떻게 경찰을 할 수가 있어요?”
 “나는 그렇다 치고, 소희는 어떻게 된 거야.” “보다시피요.” 그녀는 말을 하고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무언가를 더 묻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를 향해 한 발짝 다가섰다. 그러자 그녀가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며 말했다. “저를 만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세요.” “그건 왜?”
 “그냥요.”
 “……?”
 “어차피 나는 오빠한테 부담이 되는 존재니까요.” 나는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아니, 너의 안부가 궁금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어디서 어떻게 살아왔으며, 다방에서 일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말을 하기 위해서 한 발짝 다가섰다. 그러나 그녀가 재빨리 내 입을 막고 나섰다.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그래도 모르는 게 좋아요.”
 “하지만…” “저… 내일 아침 배로 나가요.” “내일 나가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