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작은 즐거움으로 채우는 것

황사로 온 도시가 뿌옇게 떠다니는 미세먼지로 휘감겨 있던 날. 한국에 와서 처음 겪는 광경에 난 적잖이 놀랐다. 이미 마스크 끼고 다니는 것에 익숙해진 탓으로 황사먼지를 위한 특별한 조치는 필요하지 않았지만 새파란 하늘이 어떻게 저리 흉한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 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마침 5월 8일은 어버이날로 가족들의 나들이가 많았을텐데, 어린 아이들에게 호흡기 문제를 일으키면 어쩌나 염려가 되었다. 대신 난 하루종일 꼼짝 안하고 나만의 공간 오피스텔에서 오롯이 시간을 보냈다. 어버이날에 나 스스로에게 보내는 위로의 시간은 근사하지 않은가. 보기에 따라서 달리 평가가 있을 법도 하지만 말이다. 흠흠.

미국은 5월 둘째 일요일을 어머니날Mother’s Day로 정해 기념한다. 아버지날 Father’s Day는 6월 셋째 일요일인데, 어머니날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사람들에게 어필하고 있어 보이지는 않다. 왜냐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머니의 역할과 희생은 숭고함을 품은 보편적 절대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사실 엄마들은 생명을 잉태하고 열달 남짓 무거운 배를 안고 생활하면서 남자라면 절대 경험하지 못할 신비한 삶의 기쁨을 누린다. 아이가 드디어 밖으로 태어나는 순간은 또 어떠한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살아있는 생명을 매 순간 함께 느끼며 그리워하던 아이를 마침내 만나는 이 엄청난 사건은, 정말 기적이고 축복이 아닌가 말이다. 내가 막내를 낳은 날은 주일날Sunday이었는데,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기념 예배를 드리고 있던 중 양수가 터져서 예배를 마친 후 부랴부랴 병원으로 갔다. 제왕절개 대신 자연분만을 원했던 나는 병원 침대에 누워 저녁까지 기다리고 있어야 했는데, 함께 기다리던 가족들이 잠시 집에 다녀오는 시간에 불쑥 아이가 태어났다. 나를 돕던 의사는 하루종일 아이들 분만이 많아서 크리스마스 예배조차 드리지 못했다고 했다. 난 그녀가 나의 출산 마무리를 하는 동안 성탄 찬송을 불러줬다. 저녁 늦은시간에 병실에 조용히 울려퍼지는 성탄찬송! 멋지고 감격스러운 경험이었다.

어머니날을 전후해서 문자메시지와 전자카드가 엄청 들어왔다. 제일 가슴에 와 닿고 나를 기쁘게 하는 말은 아이들로부터의 전화와 인삿말이다. 난 엄마를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 “Always I am so proud of you, mommy!” 는 사실 매양 듣는 말이지만, 올해는 특별히 막내 아들 여자친구가 보내준 문자가 의외의 기쁨이었다. 한국과의 시차로 인해 늦게 Happy Mother’s Day인사를 전하게 되어 미안하다고, 그러나 그 아들을 세상에 태어나게 해줬고 자기에게 즐거운 만남을 허락해줘서 감사하다는 메시지였다. 비록 엄마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엄마를 많이 그리워한다는 것, 그래서 본인이 더욱 잘 살펴주겠노라는 다짐을 전해왔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어머니날에 나를 다독일Pampering 이벤트로 친구가 주선해 준 오페라 갈라 컨서트에 다녀왔다. 중견 오페라 가수들의 노래는 차분하게 나를 감싸줬고, 혼자 기념하는 어머니날에 대한 배려로 스타벅스 커피와 함께 생크림 카스테라 케익을 즐길 수 있는 티켓을 보내준 지인으로 인해 가슴이 따뜻했다. 내년 어머니날은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지만 올해는 이만하면 괜찮다 싶다. 아무렴. 세상은 이렇게 오밀조밀 누리는 즐거운 일로 인해 살만 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브라보!

Happy Mother’s Day to all my women friends!

/Stacey Kim 시민기자 staceykim6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