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양극화 해결 못해…국가의 역할 되새겨봐야”


“공평·청렴, 지도자의 최고 덕목
율기·봉공·애민 실현해야 강국
조선, 다산 가르침 안 따라 망해

백성이 제 몸 보신에만 밝으면
지도자가 밝은 정치 하지 못해
촛불, 근본 사회구조 변화 요구
선거 참여하고 국민이 감시해야

대화 통해 시비 가려야 하는데
다른 생각 배척…객관적 사고 불가
중립적 가치관 없어 공정성 무너져

경제적 불평등 없애야 나라 혁신
시장 맹신하니 공정·정의 문제 대두
소득 격차 줄이는데 정부가 나서야
▲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이 13일 수원시 팔달구 경기문화재단에 설치된 다산 정약용 선생 흉상 앞에서 '불공정과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다산 선생의 사상인 '공평과 청렴'을 실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2017년 시민은 불공정한 사회에 분노했고 정권을 끌어내렸다. 그 과정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평화적이고 민주적이었다. 가장 평화적인 수단(촛불)으로 법과 원칙(국회 탄핵소추 가결→헌재 탄핵 결정)에 따라 정권을 교체시켰다.

4년이 지났지만 올해 또다시 '공정'과 '정의'가 화두다. 코로나19는 기존 불평등을 가속했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 땅투기 논란은 우리 사회 불평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사회적 약자일수록 더 심했다.

현 정부에 '가장 우호적인 세대'였던 2030세대가 '가장 적대적인 세대'로 돌아선 계기이기도 하다. '공정과 정의'는 2030세대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가치다.

이에 대해 박석무(79) 다산연구소 이사장은 13일 “불공정이 다시 거론되는 것은 우리 사회가, 특히 정치·사회 지도층이 국민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 탓”이라며 “신뢰를 주지 못한 것은 서로가 정직하지 못한 데서 출발한다”고 설명했다.

“(지도층이) 정직하지 않으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해요. 사회를 이끌고 가지 못한다는 의미인 거죠. 이를 좀 더 확대하면 공정해야 한다는 말이에요. 정직해야만 공정이 나옵니다. 우리 사회는 정직하지 않으니 공정하지 않고, 이에 시민들은 분노하는 거죠.”

 

▶공직자의 의무는 '공평'과 '청렴'

그는 우리 사회가 다산의 정신을 구현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했다. 다산 선생은 공직에 있는 사람이 청렴하지 않으면 나라가 제대로 될 수 없다는 것을 200년 전에 명쾌하게 제시했다.

“다산 사상의 핵심은 딱 2자다. 공(公)과 염(廉)이에요. 공은 공평할, 공공의, 숨김없이 등 다양한 의미가 있고, 염은 청렴함이다. 다산이 공직에 나서기 전 '둔하고 졸렬해 나랏일을 감당하기 부족하지만 공평함과 청렴함으로 정성을 다하기를 원한다'고 했어요. 다산의 많은 저술의 기반이 바로 이것입니다. 공렴은 지도자의 최고 덕목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율기(律己), 봉공(奉公), 애민(愛民) 덕목을 실현해야 한다고 했다. 율기는 심신의 수양을 통해 도덕성을 상실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아무리 훌륭한 법과 제도가 있다고 해도 자기 자신을 제어할 수 없고 사욕이 있는 한 법률은 공정하게 집행될 수 없다는 말이다.

봉공은 '공공에 봉사하는 마음', 애민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특히 애민은 불특정 다수의 백성이 아닌 국가나 사회가 돌보거나 보호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든 사람을 의미한다.

“공직자는 마음을 단속해 인격수양에 힘쓰기, 공무에 헌신해 정성껏 봉사하기, 힘없고 약해 자력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이들을 사랑하기를 실천해야 합니다. 특히 애민에 신경을 써야 해요. 홀아비와 홀어미, 노인과 유아, 중병에 걸린 환자와 장애인, 초상과 재난을 당한 사람, 즉 사회적 약자층이다. 이렇게 돼야 비로소 공렴한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정신이 실현되면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고 강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은 다산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아 망한 거예요.”

 

▶촛불혁명을 완수하려면 모든 국민이 감시자

그는 공직자의 공렴을 위해서라도 모든 국민이 감시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잘못하면 항의를 해야 올바른 정치가 실현된다는 것.

“다산은 '관(지도자)이 밝은 정치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백성이 제 몸을 보신하는 데만 밝아, (백성이 스스로 당하는 질곡을) 관에 항의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정부가 잘못하면 항의를 해야 올바른 정치가 된다는 촛불의 정신 바로 그것이에요. 촛불혁명은 새 정권을 창출해낸 첫 혁명입니다.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6·10항쟁은 독재정권을 무너뜨려도 새 정권을 세우지 못했어요.”

그런데도 촛불혁명이 완성된 혁명이라고는 보지 않았다. 정권만 바뀌었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시민이 요구한 것은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니라 사회 구조를 바꾸자는 것으로 봤다.

“시민이 요구한 건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닙니다. 사회 구조를 바꾸자는 것이었어요. 더 근본적인 문제죠. 사회의 고질적 병폐를 끊어야 한다는 게 촛불이 우리에게 남긴 책무입니다.”

그러면서 시민도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 정치가 부패하고 불공정해도 정치 없이는 나라가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포기하고 있어선 안 돼요. 그래서 선거 참여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선거만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선거 잘했다고 돌아서면 (정권은) 태만해져요. 촛불혁명을 완수하려면 모든 국민이 감시자가 돼서 늘 지켜보며 항시 관에 달려들고 관리에게 항의해야죠.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면 촛불은 언제라도 해야 합니다.”

 

▶공정이 살아야 민주주의도 발전

박 이사장은 연신 '공정'을 강조했다. 공정성이 담보돼야 민주주의도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의 크고 작은 혁명은 민주화를 염원하는 시민의 투쟁이었지만 그 시작은 '불공정함에 대한 반대'였다고 그는 강조했다. '촛불 시민'이 요구했던 것 역시 불공정한 사회의 정상화였다.

박 이사장은 우리나라에서 공정성이 무너진 배경에는 '중립적 가치관의 부재'라고 봤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무조건 배척하는 사회 분위기에선 각 사안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고 사사로운 이익에 따른다는 것이다.

“모든 사안엔 '시'(是·옳은 것)와 '비'(非·그른 것)가 있죠. 그러나 때론 '양시'(兩是)나 '양비'(兩非)인 경우도 있어요. 모두 옳을 수도, 그를 수도 있단 얘기죠. 이럴 땐 서로 대화를 해야 합니다. 그게 정치예요. 하지만 우리 현대사를 보세요. 나와 생각이 다르면 무조건 배척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객관적인 사고가 가능하겠습니까.”

 

▶발전이란 더 나은 세상이 되는 것

그는 “경제적 불평등을 없애야 낡은 나라를 새롭게 만들 수 있다”며 다산의 '손부익빈(損富益貧)'을 소개했다. '부자의 것을 덜어서 가난한 사람에게 더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소득 격차를 줄이는데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의미다.

“신자유주의의 방향으론 극대화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코로나19를 지나면서 양극화는 더 심해졌어요. 또 재벌들이 과연 공정하게 돈을 벌고 있는지, 경영하는지도 따져봐야 할 문제죠. 최근 공정과 정의가 다시 거론된 것은 이 때문인데 더는 시장에 맡기기에는 너무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어요. 국가의 역할을 다시금 되새겨봐야 합니다.”

그는 우리 사회가 함께 '모든 사람이 혜택을 받는 세상, 발전하는 세상'이라는 다산의 사상을 실천하자고 했다.

“발전이란 더 나은 세상이 되는 것이에요. 불공정으로 피해받는 사람이 줄어드는 세상, 혜택 보는 사람이 더 많아지는 세상이에요. 부정과 비리가 없어져야만, 깨끗한 세상이 돼야만 모든 사람이 혜택받을 수 있습니다.”

 

 

박석무 이사장이 걸어온 길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은 1942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나 전남대학교 법과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1년 전남대에서 '다산 정약용의 법사상'이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73년 전남대 유신 반대 유인물 <함성>지 사건으로 1년 동안 복역하면서 감방 안에서 본격적으로 다산 저술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다. 이때 결실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저술, 1979년 출간했다.

1980년 고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광주민주화운동의 현장을 지켰다. 그런 인연으로 2003년 5·18기념재단 이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민주화 운동에 투신해 네 차례 옥고를 치렀으며, 1988년 13대 국회에 진출한 후 14대 국회의원 시절에는 국회다산사상연구회를 조직, 간사를 맡아 정치 활동 중에도 다산 연구를 이어 나갔다.

한국고전번역원 원장, 한국학술진흥재단 이사장, 단국대학교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다산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다산기행>,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풀어쓰는 다산이야기>(전 2권), <다산 정약용 일일수행>(전 2권)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역주 흠흠신서>(공역), <애절양>, <다산 산문선>, <나의 어머니, 조선의 어머니> 및 <다산 논설 선집>(공편역), <다산 문학 선집>(공편역) 등이 있다. 그 외에 「다산 정약용의 법률관」 등 많은 다산 관련 논문이 있다.

/최남춘 기자 baikal@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