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역사의 흔적과 근대발전의 디딤돌의 흔적이 공존하는 곳.
그 공존이 인천 중구를 돋보이게 만들 보물 같은 공간.

  인천역 1번 출구에서 동쪽으로 약 400미터. 이곳은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 사이에 조성된 근대 문화유적지와 도시재생 사업의 손길이 만나 새로운 문화, 역사 공간이 있다. 개항기의 중국과 일본건축 양식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지나가는 발길마다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된 공간이 나타난다.

▲ 인천일보 본사 전경
▲ 인천일보 본사 전경

인천역 1번 출구에서에서 400미터정도를 걸으면 인천일보 본사를 맞이하게 된다. 창간 33년이나 된 인천 중구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인천의 언론사이다. "언론이 바로서야 지역이 바로 선다" 라는 인천일보 어느 기자님 말처럼 인천의 애향심으로 계속해서 좋은 언론의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인천 아트플랫폼
▲ 인천 아트플랫폼

인천일보 건물 뒤로 천천히 걷다보면 빨간 벽돌 창고의 모습이 나타난다. 과거의 모습은 현재의 역사가 된다는 말이 있다. 과거의 항구 창고 건물로 쓰이던 낡고 오래된 빨간 벽돌 건물이 문화로 탈바꿈 하게 된 곳이다. 자칫 재개발로 개항기 번성하던 흔적을 잃어버릴 수 있었을 장소이지만 도시 재생 사업으로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 하게 된 곳이다. 옛날 항만 노동자들의 땀과 숨결은 현재 예술가들의 문화공간으로 재탄생 하게 된 곳. 운이 좋으면 영화와 드라마 촬영을 볼 수도 있다.

▲ 차이나 타운
▲ 차이나 타운

인천 아트 플랫폼 옆길을 따라 언덕을 오르면 빨간색 중국풍 건물 들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차이나타운. 중국 영사관이 1884년에 문을 연 후 인천 차이나타운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곳은 한국 전쟁 발발 이전 수천 명의 화교들이 이곳에 거주하며 중국 공예품과 음식을 활발히 판매했던 곳이다. 최근 규모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차이나타운이라는 이름에 맞는 중국 식당과 건물 양식이 유명하다.

▲ 청일 조계지 계단
▲ 청일 조계지 계단

차이나타운 위쪽 길 대리석 계단이 나타난다. 청일 조계지 경계 계단. 이곳을 따라 올라 가면 자유공원에 오를 수 있는 곳이다. 청일 조계지 경계 계단은 역사적으로 1883년 일본 조계를 시작으로 1884년 청국 조계의 경계선이 되었던 지역이다. 이 계단의 좌우로 중국건물 양식이 있는 차이나타운과 일본의 건물양식이 있는 개항장 거리로 계단을 경계로 확연하게 서로 다른 양식건물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자유공원 에서 보이는 인천항.
▲ 자유공원 에서 보이는 인천항.

청일 조계지 계단을 오르면 자유 공원에 오를 수 있다. 자유공원은 1888년에 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근대공원으로 각국공원이라 불렸다. 일제강점기에는 서공원, 광복 후에는 만국공원으로도 불렸다. 자유 공원 초입에 연오정과 석정루 정자가 있다. 석정루 정자에 오르면 인천항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개항장 거리
▲ 개항장 거리

청일 조계지 계단을 내려 왼편으로 들어서면 개항 초기 인천에 세워진 일본양식 주택들을 볼 수 있는 개항장 거리가 나온다. 강제 개항과 일제 강점이라는 아픈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곳. 한국 전쟁과 재개발로 인해 일본양식의 건물은 많이 사라졌지만 과거의 아픔을 간직하고 현재가 공존 하는 곳이기도 하다.

-신포 국제시장

개항장 거리를 계속 걷다보면 주점과 식당 거리가 나오는데 그 거리의 끝이 신포 국제 시장으로 이어진다. 과거 인천을 대표하는 재래시장중 하나. 현재 규모는 많이 축소되었으나 TV예능에 나오는 맛있고 새로운 먹거리로 변화 하는 곳. 이곳에 오면 새롭고 다양한 먹거리로 눈과 입이 즐겁다.

구한말 외세에 강제 개항되며 최혜국 대우를 해주었던. 그래서 나라 잃은 설움이 가시기전 또다시 민족 간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곳. 이곳이 항구와 문화라는 주제의 도심 재생으로 새로운 볼거리가 만들어 졌다. 비록 코로나19로 많은 축제와 행사가 열리지는 못하지만 과거 개항으로 번영하던 인천의 영광을 간직하고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보물 같은 곳이다.

/이승원 시민기자 le01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