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팝나무 /사진제공=국립생물자원관

벌써 여름이 시작되고 보리가 익는다는 입하(立夏)다. 이 시기에는 신록이 더욱 짙어지면서 논이나 밭에서는 다양한 작물들의 모종을 심느라 분주하다. 이 무렵 산과 들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하얀색 장관을 이루는 이팝나무의 꽃들이다.

이팝나무(Chionanthus retusus Ldl. & Paxton)는 물푸레나무과 이팝나무속의 키 큰 나무다. 속명 Chionanthus는 하얀 눈꽃이라는 뜻이 있으며, 종소명 retusus는 둥글면서도 끝이 뾰족한 잎모양을 뜻한다. 우리나라 이름의 유래로는 여름이 시작될 때인 입하에 꽃이 핀다고 하여 입하목(立夏木)으로 불리다가 이팝나무로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고, 꽃이 피면 나무 전체를 하얗게 뒤덮어 '이밥', 즉 흰 쌀밥처럼 보인다고 해 붙여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팝나무는 20m 정도까지 자라고 잎도 단엽으로 마주나기를 한다. 타원형에서 달걀형인 잎은 표면이 짙은 녹색이며 뒷면은 연두색을 띤다. 잎맥 위로는 연한 갈색 털이 특징이다. 꽃은 흰색으로 꽃받침은 4장이며 화관은 4장으로 깊게 갈라진다. 도감에는 '암수딴그루'로 기록되어 있지만 우리가 보는 대부분은 거의 '수그루' 또는 '양성화'가 피는 나무들이다. 과실은 9~10월쯤 검은색 타원형 열매로 성숙한다. 물푸레나무과 식물들 대부분이 물을 좋아하는데, 이팝나무 역시 물을 좋아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전세계 이팝나무속 식물들은 약 100종으로 대부분이 열대지방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상록수인데 이팝나무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에 분포하며 다른 이팝나무속 식물들과는 다르게 온대지방에 서식하는 낙엽수다. 꽃향기는 은은하며 달콤한 것이 특징인데 공원이나 가로수로 심어져 있는 곳을 지나다 보면 향기가 제법 진하게 느껴진다. 주로 남쪽 지방에서 자생하며 따뜻한 곳을 선호하지만 내한성이 강한 탓인지 월동도 잘하기 때문에 인천과 수도권의 가로수와 공원에 많이 심어져 있다.

기록으로는 황해도 부근에서도 잘 자란다고 하며 중국에서도 북부지방인 하북성에서 자생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노거수들은 경상도와 전라도에 있으며 김해 천곡리의 천연기념물 307호로 지정된 이팝나무는 수령이 500년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에도 이 노거수는 장엄하고 화려하게 하얀색 장관을 보여줄 것이다.

한해 농사를 시작하는 농사일로 분주한 입하의 시기에는 이팝나무에 치성을 드리면 그해에 풍년이 든다는 풍습이 있다. 이때 이팝나무 꽃이 만발하면 풍년이 들고 드문드문 필 때는 가뭄의 피해가 있으며 꽃이 잘 피지 않으면 흉년이 올 것이라 예측을 하고 농사 준비를 했다고 한다. 과학적으로 측량이 불가능했던 시기에 옛 선조들은 생물의 변화 관찰을 통해 앞으로의 대책을 지혜롭게 준비하였던 것은 아닐까.

올해처럼 봄철에 피는 꽃들을 같은 시기에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예전에는 인천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3월 입춘을 시작으로 진달래와 개나리가 먼저 봄소식을 알려주었고, 4월 중순쯤 벚꽃과 목련이 만발하였다. 이후에 피는 이팝나무, 야광나무, 때죽나무 꽃들이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을 알려주었는데 어느새 이 순서가 모조리 합쳐져 여기저기에서 모든 봄꽃들이 서둘러 피기 시작했다. 기상청의 109년 동안 관측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봄 시작일은 17일, 여름 시작일은 11일이나 빨라졌다고 한다. 100여년 전에는 겨울이 가장 길었지만 이제는 여름이 제일 긴 계절이 된 것이다.

인천의 이팝나무도 이미 볕이 잘 드는 곳에선 무성한 흰색 꽃을 흔들며 피어버렸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식물은 이동하기 어려워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힘들 것이라고 예측한다. 자유로운 이동 능력을 가진 동물보다 꿋꿋하게 한자리를 지키는 식물들이 기후변화에 적응해 버린 것처럼 보인다. 아름다운 꽃들을 미리 만나는 것도 좋지만 이제는 기후 위기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때인 것 같다.

/박찬호 국립생물자원관 환경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