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이재학 PD 추모행사 /연합뉴스

방송 PD와 MD, 작가 등 프리랜서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고 이재학 PD의 사망 사건을 계기로 높아진 사회적 관심이 만들어낸 결과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6일 청주방송(CJB)에 대한 실태조사와 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했다. 노동부는 대법원의 판단기준에 따라 CJB의 프리랜서 21명 중 12명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번 근로감독에서 근로자로 인정받은 방송작가는 작가 본연의 업무뿐만 아니라 행사 기획‧진행, 출연진 관리 등 다른 업무도 수행하고 있었다. 또 CJB 소속 정규직 PD 또는 편성팀장으로부터 지휘‧감독을 받는 등 사용종속 관계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PD 역시 CJB 정규직 PD로부터 지휘‧감독을 받고, 촬영 준비부터 영상 편집단계까지 이들을 보조해서 업무를 수행하는 등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서의 징표가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MD(Master Director)도 근로자로 인정받았다. 이들은 업무위탁계약을 통한 하청업체 소속이었음에도 CJB 정규직 PD가 직접 지휘‧감독을 해, 불법 파견에 해당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리포터, DJ, MC 등은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본인 재량에 따라 업무를 수행했다는 이유에서다.

▲ 이재학 PD 유가족,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청주방송 대표이사가 고 이재학 PD 사망 사건 최종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근로감독은 방송사와 프리랜서 계약을 맺은 근로자의 법적 지위를 인정한 첫 사례다. 이를 시작으로 다른 방송사에 대해서도 실태조사가 추진될 예정이다.

이렇게 근로감독이 이뤄진 배경에는 한 사람이 있다. 지난해 2월 CJB의 고 이재학 PD는 회사와 법정 다툼 끝에 1심에서 패소했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는 직원들의 처우 개선과 임금 인상을 놓고 2018년부터 회사와 갈등을 빚었다.

이 PD는 2018년 4월 회의서 국장에게 스태프들의 회당 인건비 인상을 요구했다. 그 자리에서 해당 프로그램의 하차를 통보받은 이 PD는 며칠 뒤,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해고당했다. 2004년 조연출로 CJB에 입사한 이 PD는 14년간 일했던 회사에서 순식간에 일자리를 잃게 됐다. 2020년 1월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 1심에서 패소한 그는 5일 뒤, 결국 세상을 떠났다.

같은 해 2월 진상조사위원회가 출범했다. CJB 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원회와 이 PD의 유족, 전국언론노동조합, 그리고 CJB가 추천한 10명으로 구성됐다. 그리고 6월 진상조사위원회는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죽음의 책임이 CJB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7월에는 CJB의 공식 사과, 진상조사 결과 이행·이행 점검, 유족보상, 비정규직 고용구조·노동조건 개선 등의 내용이 담긴 합의서에 서명했다. 약 10개월이 지난 뒤, 노동부에서는 프리랜서 근로자들을 정식으로 인정했다.

방송산업에서 프리랜서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PD, 작가, 리포터 외에도 편집, 성우, 음악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프리랜서가 더 많다. 문제는 이들 대다수가 불안정한 고용과 업무 환경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의 유행도 프리랜서들에게는 악재로 작용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간한 '방송산업 종사자의 노동시간 실태와 삶의 질 연구'에 따르면, 방송산업 프리랜서 가운데 코로나19 사태로 근로소득이 감소했다고 답한 응답자는 67.9%에 달했다. 방송산업 임금 노동자의 경우 근로소득의 변화가 없다는 응답(78.6%)이 대부분이었고 근로소득이 감소했다는 응답(18.1%)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두 근로 집단은 같은 업무를 하더라도 소득에서 차이가 날 수도 있다.

이번 노동부 발표는 단순히 한 회사에서 일어난 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동안 프리랜서라는 명목하에 인정받지 못했던 노동이 정식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된 것이다.
/김성열 인턴기자 kary0330@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