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이 사촌보다 낫다'라는 속담이 있다. 요즘 가족이 단순화되고 심지어 1인가구도 증가하는 추세다. 한 집 건너 사촌들이 살던 마을 구조도 옛말이 됐다.

대규모 집단 거주지역이 보편화되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면서 명절에나 만나게 되는 친족들보다도 이웃이 중요한 관계로 떠올랐다. 때론 층간소음, 주차문제 등으로 이웃 간 갈등도 빈번하다. 하지만 자주 만나고 볼 수 있는 관계가 바로 이웃이다.

혈연보다 주거지 중심의 지역공동체가 우리 삶에 깊숙이 관여하게 됐다. 코로나19가 사람 간의 거리를 물리적으로 구분해 놓고 있지만 상부상조의 사회적 상호관계, 지역 연대와 교류 등은 이웃과의 신뢰를 구축하는 힘으로 작용해 왔다.

집 밖의 사람들, 이웃과의 교류는 인사부터 시작된다. 우연한 마주침이다.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게 되고 정보를 공유한다. 식사를 하게 되거나 사적인 문제까지 상의할 정도라면 사촌보다 나은 이웃이 형성된다. 특히 자녀를 매개로 관심 있는 이웃이 형성되는 경우도 많다. 문화·예술·체육 등의 클럽활동, 자치활동 등에 함께 참여하면서 공동체 활동으로 발전되는 것이 이웃관계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혼자서는 의미가 없는 사회 속에 존재할 때 비로소 인간이다. 서로의 존재를 상호 인식하는 물리적 근접성이 '우리 동네'의 관심사를 형성하게도 된다. 우리는 어느 정도의 이웃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까?

나에게는 30여년이 지나도록 변함없이 만나는 이웃사촌들이 있다. 유치원 자녀를 키우던 때의 인연이 아직까지도 끊을 수 없는 형제 관계로 유지되고 있다.

아이들은 모두 성장했지만 눈빛만 보아도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을 정도의 부모 모임이 됐다. 각 가정의 애경사를 챙기고, 해외여행 등 레저 활동도 나누었다. 물론 만족감도 큰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자녀'라는 공동 관심사로 만난 인연과 우정이 지속돼 왔으니 놀라울 뿐이다.

형제간에도 사소한 문제로 다투고 왕래를 끊어버리는 가정을 주위에서 종종 보게 돼 안타깝다. 그러니 이웃사촌이 더 낫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유다.

이웃사촌이 30년 우정을 나눈 비결은 거창하거나 찬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평범하고 정상적인 일상의 공유였다. 봉사와 배려, 사랑과 포용 같은 이타적 행위가 '원팀'으로서의 결속력을 더 높인 근간이었다.

다가서 보면 친밀하고 가까운 사람들이 나의 이웃을 구성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 사회가 첨단 메커니즘으로 변모되면서 이웃유대 또는 지역공동체 의식이 약화되는 현상이 확대됐다. 아마도 옆집에 누가 사는 지 잘 알지 못하고, 사건·사고에도 무관심해 이웃에 대한 관심도가 비교적 낮은 실정이다.

이웃 분쟁과 갈등이 사회적 불안요소로 다루어질 정도로 주거만족도를 손상시키는 일도 발생했다.

우리의 주거환경은 대부분 공동 거주 형태로 변했다. 10명 중 8명이 아파트를 포함한 공동주택에 살고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공동주택 주거비율은 이웃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공동주택은 생활영역을 공유하게 되고 의도하지 않아도 침범하게 되면서 분쟁의 소지를 낳아 왔다. 다툼도 많다. 흡연, 반려동물, 음주소란, 누수 등 생활 속의 문제들을 경험하고 있다.

평소의 만남과 대화로 알게 된 이웃사촌의 관계에서는 오해와 감정이 극한으로 치닫게 되는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처음은 낯설지만 배려와 친근감으로 이웃사촌 만들기에 나서보자.

이웃사촌이 되면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잠재된 불안과 근심, 고통을 벗게 된다. 30년 지기, 정 많고 따뜻한 이웃사촌이 있어서 행복하다.

 

/조효증 현다이엔지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