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 경부선 KTX의 개통이 임박했을 무렵이다. 이 열차가 지나는 부산과 대구, 대전 등의 지역사회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착공 이후 10년 이상 기다려 온 기대감 못지 않게 불안감이 덮쳤다. 역내 사회_경제적 수요들이 온통 서울로 빨려들어갈 것이라는 걱정이었다. 이때문에 당시 부산대병원이나 경북대병원 등에서는 대책기구까지 마련됐다. 중병환자들이 2시간 짜리 KTX를 타고 모두 삼성_아산병원으로 올라가 버릴 것이라 했다. 지방 백화점들에도 비상이 걸렸다. 큰 손 고객들이 명품이 즐비한 서울의 백화점만 찾지 않겠느냐는 우려에서다. 그래선지는 모르겠지만 '52년 터줏대감' 대구백화점마저 곧 문을 닫게 됐다고 한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 이래 철도 교통은 제자리 걸음을 면치 못했다. 사방팔방으로 고속도로가 뻗어나가면서 기차는 2류 교통편이었다. 비둘기_무궁화_새마을호는 늘 그 모양이었고 그냥 차를 몰고가는 편이 빠르고 편했다. KTX의 등장과 함께 상황이 빠르게 바뀌었다. 황량했던 광명역 주변의 상전벽해(桑田碧海)만 봐도 그렇다. 지역마다 철도망 유치에 사활을 걸기 시작했다. 과거 도로 포장이나 확장이 단골 공약이었던 시골 선거에서도 철도 아니면 먹히지가 않게 됐다.

▶요즘 수도권의 집 값을 출렁이게 하는 GTX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처음 선을 보였다. 2007년 동탄2 신도시 광역교통대책으로 동탄∼강남간 대심도 급행철도를 내놓은 것이다. '뻥 뚫린 경기도, 가족과 함께 아침이 있는 삶'이라는 정책해설도 나왔다. 서울 출근에 쫓겨 가족들과 아침도 같이 못먹는 경기도민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GTX의 'G'도 요즘의 G버스 처럼 경기도를 뜻하는 약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는 물론, 전문가들도 비현실적이라 보았다. 막대한의 사업비도 그렇고 지하 40m 아래를 달리는 급행철도도 너무 생소했다.

▶그러나 수년이 지난 2012년, 정부가 동탄∼삼성역간 GTX 노선 기본설계비를 책정하면서 가시권에 들어왔다. 이 후 선거철이 돌아올 적마다 GTX는 곳곳에서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GTX 건설에는 여도 야도 없다. 벌써 인천 송도국제도시∼남양주 마석, 수원∼양주 덕정, 동탄∼파주 운정 등 3개 노선이 설계 또는 착공에 들어가 있다. 그리고 수도권 곳곳에서 'GTX 정차역은 우리 동네에' 운동이 한창이다. 가히 '욕망이라는 이름'의 신철도라 할만하다.

▶그런데 인천 등 서부수도권이 그토록 갈망했던 'GTX-D' 노선은 '가다가 말은' 모양이 됐다. 인천국제공항과 김포를 각 기점으로 하는 Y자형 노선은 고사하고, 서울 강남을 거쳐 하남까지 달리는 꿈도 무산됐다. 달랑 김포∼부천간으로 축소되자 '김부선'이 왠 말이냐는 자조가 터져 나온다. “고작 부천 가자고 지하 40m까지 내려 가겠냐”고도 한다. 그런데 GTX를 주저앉힌 데 대한 정부 설명이 눈길을 끈다. '지나친 수도권 집중'이 우려된다고 했다. 행간을 읽자면 서울 강남을 지나가기 때문에 곤란하다는 의미 아닌가. 그렇다면 다른 철도망에서도 강남을 아예 '패싱'시켜버리면 강남 집값 금방 잡힌다는 얘기도 가능할 것이다.

 

/정기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