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 가스라이팅이란 말이 세간의 화재가 됐다. 어느 연예인 커플의 스캔들때문에 SNS를 뜨겁게 달궜다. 가스라이팅은 누구가를 심리적으로 지배하고 조정한다는 뜻이다. 정신 분석가이자 심리치료사인 로빈 스턴이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정서적 학대를 의미하는 심리 용어 '가스라이팅'을 최초로 규정했다. 가스라이팅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한다. 가해자는 자신이 생각한 대로 피해자를 조정하기 위해서 피해자의 머릿속에 피해자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심고 가해자의 생각을 따르게 한다.

사실, 가스라이팅의 진짜 문제는 인간관계만이 아닌 사회구조에서 발생한다. 언론이나 지배계층이 자신들의 이해를 위한 주장을 하면서 이것이 국가나 사회의 이익을 위한 것인 양 포장하기 때문이다.

결국, 어떤 의미에서 가스라이팅의 최대 희생자는 일반 시민일 수 있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누구나 현실감각을 잃고, 자신에 해가 되는 논리에 지배당하거나 조정당할 수 있다.

최근 구설에 오른 남양유업 사태도 이와 비슷하다. 지난 13일 남양유업과 한국의과학연구원이 '불가리스'발효유에 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 공포심이 극대화된 시점에서 언론을 통해 기사를 본 시민들은 해당 제품을 사재기했다. 또한 오픈마켓에서도 관련 제품의 주문이 몰려 물량이 동날 정도였다. 주식시장도 빠르게 반응했다. 개인투자자가 몰리면서 일주일새 주가가 급등했다. 마치 메뚜기 떼가 한꺼번에 몰려 싹쓸이를 한 형국이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식품표시광고법 위반혐의로 경찰에 고발되었고, 그 결과 남양유업 주가가 1/3로 토막 나면서,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손실을 입었다. 문제가 커지자 언론은 남양유업이 특정상품을 지목해 심포지엄을 개최한 배경, 미공개 정보이용에 따른 자본시장법 위반여부를 물어야 한다는 등 남양유업을 향한 비판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이번 남양유업 사태를 지켜보면서 파사현정(破邪顯正)의 마음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첫 번째는 윤리적 경영을 하지 못한 부도덕한 기업 문제이다. 남양유업은 문제가 발생하자 심포지엄을 주관한 한국의과학연구원과는 무관하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한국의과학연구원은 남양유업과 함께 불가리스를 공동 연구한 기관이고, 연구발표자 역시 남양유업의 비등기 임원으로 알려지면서 기업의 악의적 의도를 반영한 '셀프 연구결과 발표'라는 합리적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언론이다. 남양유업 측에서 제시한 보도자료를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문제점을 충분히 지적할 수 있었다.

한국의과학연구원에서 발표한 실험 결과는 내용만 봐도 허술했다. 코로나에 감염된 세포를 불가리스에 담가 바이러스 감소율을 측정하는 방식의 실험이었다. 굳이 불가리스가 아니라도 지금 같은 방식이면 알코올에 코로나19세포를 담고 바이러스 감소율을 측정한 후, 감소하면 알코올이 코로나19 예방효과가 있다는 말과 다름 아니다. 이런 합리적인 의심을 하지 못하고 일단 쓰고 보자는 언론의 구조적 문제를 살펴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시민으로서 판단이다. 남양유업은 과거 대리점 갑질 사건, 경쟁사에 대한 명예훼손혐의, 품질논란, 오너리스크 등으로 대중들의 공분을 산 기업이다. 지금도 일부 소비자들 은 '숨은 남양 찾기'를 통해 불매운동을 하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는 때론 메뚜기로 때론 꿀벌로 비유되기도 한다.

맹목적인 광기로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약탈적 행동을 서슴지 않는 메뚜기가 될지, 협력적으로 일하고 집단지성으로 운영되는 꿀벌이 될지는 시민으로서 판단이 필요하다. 누구의 이야기에 현혹되지 않고, 시민들 스스로 이성과 상식으로 서로를 가스라이팅하는 사회가 되길 기대한다.

 

/이필구 안산YMCA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