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서 눈 가리고 스틱 의존해 이동
주위 도움으로 판매대까지 왔지만
촉각만으로 제품 정보 확인 불가능


수원역서 화장실 찾아가기 도전
겨우 도착해도 남녀 구분도 어려워
기대했던 자판기 음성 안내도 없어
▲ 인천일보 경기본사 박혜림 문화체육기획부 기자가 18일 오후 수원의 한 대형마트에서 눈을 가린 채 생리용품을 찾고 있다. /최인규 기자 choiinkou@incheonilbo.com
▲ 인천일보 경기본사 박혜림 문화체육기획부 기자가 18일 오후 수원의 한 대형마트에서 눈을 가린 채 생리용품을 찾고 있다. /최인규 기자 choiinkou@incheonilbo.com

눈을 가렸다. 사방의 빛을 차단하자 눈앞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온몸의 감각이 청각에 쏠렸다.

시계 초침 소리까지도 선명하게 들리는 듯했다. 18일 오전 수원의 한 생활용품 매장에서 5000원짜리 등산 스틱을 샀다. 눈을 가리고 이동할 때보다 스틱을 쥐고 이동하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마트 초입에서 오로지 청각과 스틱에 의지한 채 생리대가 놓인 곳을 찾아 이동했다. 한 걸음 떼기가 막막했다. 점자 블록이 없는 공간에서 생리대 위치가 있는 곳까지 혼자의 힘으로 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주변의 도움을 얻어 생리대가 있는 위치까지 올 수 있었다.

여성들의 생리대는 형태, 크기, 재질, 브랜드 등 수십 가지 종류가 있다. 비장애인 여성들은 경험을 통해 각자 취향이나 신체 특성을 고려한 생리대를 직접 눈으로 보고 구매한다. 시각장애 여성의 경우도 다를 바 없다. 특정 상품의 중형 생리대를 찾아보기로 했다. 오로지 촉각만으로 구분할 수 있는 정도는 '오버나이트'라고 불리는 특대형 생리대나 '팬티라이너' 초소형 생리대 정도였는데, 이마저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생리대에도 유통기한이 존재한다. 대개 제조일로부터 3년이다. 비장애인이라면 손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전무했다.

공공화장실에서 생리대를 교체해 보기 위해 수원역으로 이동했다. 마트에서 수원역으로 이어지는 길은 한 없이 불안했다. 점자 블록이 있다 한들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막막했고 도로 요철에 휘청거리기를 반복하다 결국 쓰고 있던 안대를 벗고 수원역으로 이동했다.

수원역에서 다시 공공화장실을 찾아보기로 했다. 점자 블록을 따라 이동하려 하지만 여전히 어디로 이어지는 길인지는 알 길이 없다. 겨우 화장실 앞에 와서도 재차 물어야 했다. “여기가 화장실이 맞나요?”, “죄송하지만 여자화장실까지 이동을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화장실을 찾는 과정도, 화장실의 성별을 구분하는 것조차도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눈을 가리고 화장실 내 자판기에서 생리대를 구매해보기로 했다. 번호를 눌러 해당 상품을 구매하는 방식이었는데, 키번을 누르면 안내음성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내심 했었다. 기대는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사라졌다.

화장실 변기에 앉았다. 20여 년을 넘게 해온 생리대를 교체하는 일은 눈감고도 할 수 있다며 자신했었다. 막상 눈을 가리니 생리대를 제대로 된 위치에 두었는지 불안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적절한 위치에 착용했다. 최근 화장실에는 휴지통을 없애고 여성용품 수거함 형태로 바뀌고 있다.

사용하고 난 생리대를 처리하면서 생리함을 찾아 넣어야 하는 비장애인일때는 모르던 수고로움도 생겨났다.

사무실로 돌아와 남성 3명, 여성 3명을 상대로 눈을 가린 채 생리대의 크기 구분을 할 수 있는지 실험을 했다. 같은 브랜드의 생리대 중형과 대형을 두고 눈을 가린 채 찾아보도록 했다.

남성의 경우 1명을 제외한 2명이 구분해 내지 못했고, 여성의 경우는 1명을 제외한 2명이 구분해 냈지만 크기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형태나 브랜드 구분까지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관련기사 : [차별없는 월경권] “시각장애인도 사용후기 등 다양한 콘텐츠 접할 수 있어야”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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