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조선, 실학을 독(讀)하다] 13. 취석실(醉石室) 우하영(禹夏永, 1741-1812)-(6) <천일록>, 내 일념은 동포를 모두 구제하는 데 있다
[아! 조선, 실학을 독(讀)하다] 13. 취석실(醉石室) 우하영(禹夏永, 1741-1812)-(6) <천일록>, 내 일념은 동포를 모두 구제하는 데 있다
  • 인천일보
  • 승인 2021.04.19 17:10
  • 수정 2021.05.04 15:08
  • 2021.04.20 15면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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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 잃어버린 사람들 실학 다시 들여다봐야
▲ <천일록> 제5책에 보이는 ‘염방’ 부분. 첫 줄에 “염치는 곧 사유 중 하나다(廉恥卽四維之一也)”라는 글줄이 선명하다.
▲ <천일록> 제5책에 보이는 ‘염방’ 부분. 첫 줄에 “염치는 곧 사유 중 하나다(廉恥卽四維之一也)”라는 글줄이 선명하다.

“인순고식(因循姑息, 머뭇거리며 구습대로 행동함)이요, 구차미봉(苟且彌縫, 구차하게 적당히 얼버무림)이라!” 실학자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은 “천하만사가 이 여덟 글자 때문에 이지러지고 무너진다”하였다. 여당이 완패한 보궐선거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180석 넘게 밀어주었거늘 개혁은커녕 옴니암니 제 이문만 따졌다. 저 이들은 좌고우면에 옹알옹알 내시 이 앓는 소리로 이 탓 저 탓만 해대고는 제 일신의 안녕만 취했다. 화급을 다투는 입법인데도 미봉책으로 그때그때를 넘기려 하였다. 그러니 '저 놈이나 이 놈이나' 소리를 듣다가 선거 결과를 보고서야 호떡집에 불난 듯 수선을 떤다. 이미 제 배가 부른 터이니 불을 제대로 끄려는지 모르겠다. '정의'니, '민주'니, '공정'이니 하다가도 저 여의도 땅만 밟으면 '정치노라리꾼'이 되는 게 아닌지? 사뭇 불량한 생각마저 드는 것은 나 만일까?

'정치노라리꾼'이 되기 싫은 자들은 <천일록> 제5책에 보이는 '염방'(廉防, 염치를 잃지 않도록 방지함)을 곰곰 새겨볼 일이다. 제5책은 '염방'·'보폐'·'향폐'·'막폐'·'영리폐'·'역속폐'·'경향영읍군교폐'·'삼폐'·'군목폐'·'학교폐'·'산지광점폐'·'노예'·'충의'·'금개가'·'농가총람'이다.

5편에서 잠시 언급한 '염방'(廉防, 염치를 잃지 않도록 방지함) 첫머리는 이렇다.

“염치는 곧 사유(四維) 중 하나다. 사유가 제대로 펼쳐지지 않으면 나라가 나라꼴이 되지 못하고 사람도 사람 꼴이 되지 못한다…어린아이가 귀한 보물을 가슴에 품고 시장 네거리에 앉았어도, 탐욕스럽고 교활한 자들이라도 눈을 부릅뜨고 침을 흘릴 뿐 감히 빼앗지 못하는 것도 염치가 있기 때문이다.”

사유란 국가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네 가지 벼릿줄로 예(禮, 예절)·의(義, 법도)·염(廉, 염치)·치(恥, 부끄러움)다. 이 네 가지 중 선생은 염치를 가장 먼저 꼽고는 이를 잃지 않도록 방지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관자>(管子) '목민편'(牧民編)에서 관중은 이 사유 중 “하나가 끊어지면 나라가 기울고, 두 개가 끊어지면 나라가 위태로우며, 세 개가 끊어지면 나라가 뒤집어지고, 네 개가 끊어지면 나라가 멸망한다”고 했다. 선생이 본 18세기 조선 사회는 이미 그 사유 중 하나인 염치를 잃어버린 사회였다. 선생의 말을 계속 경청해본다.

“지금 눈앞에서 돌아가는 세상 꼴을 보면 온갖 법도가 모두 무너져서 떨쳐 일어날 수 없고 공과 사가 바닥까지 떨어져 어찌해볼 도리가 없게 되었으니 참으로 위태하고 근심만 깊어갑니다. 바로 이러한 때, 이런 급박한 병세를 치료하기 위해 약을 쓴다면 어떤 처방이 좋겠습니까?”

선생은 이 염치없는 병든 사회를 치료할 약을 인간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떳떳한 본성에서 찾았다. 선생은 염치를 찾기 위한 내리 처방전은 의외로 간단하다. 바로 '상대성'이다.

“공자 마을 사람들처럼 대우하면 사람들이 모두 공자 마을 사람들과 같이 된다…만일 염치 있는 사람들을 높인다면 어찌 본받아 힘쓰고자 하는 사람이 없겠는가?”

염치는 상대적이라는 말이다. 이 사람이 염치 있는 행동을 하면 저 사람도 그런 행동을 한다. 선생의 말대로라면, 만약 저 사람이 염치없는 행동을 하면 그 이유는 저이가 아닌 나에게서 찾아야 한다.

내가 저 사람을 공자 마을 사람으로 대하고 염치 있는 사람으로 높였다면 저 사람이 어찌 염치없는 행동을 하겠는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한 번쯤 새겨볼 말이다.

'보폐'(譜弊)는 족보를 거짓으로 날조하는 폐단이다. 양반과 체면, 문벌을 중시하느라 조상까지 바꿔치기하는 사회 문제가 드러나 있다. 지금도 학벌을 통해 보폐하려는 이들이 여간만 많은가. 버릴 구습을 전통으로 여기지 말아야한다.

'향폐'(鄕弊)에서 '군목폐'(軍木弊)까지는 경향각처에서 벌어지는 하급 관리들의 폐단이다. 부역을 하느라 신음하는 백성과 교활한 아전들, 여기에 군대까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학교폐'(學校弊)는 가장 깨끗해야 할 학교마저 각종 폐단에 물들어 형편없는 실정임을 보여준다.

“당(堂)을 명륜(明倫, 학교)이라 하고 녹(錄)을 청금(靑衿, 유생)이라 한 것을 보면 어찌 이곳이 놀러 다니며 바라보기만 하는 곳이겠는가?…오늘날 이름이 청금록에 올라 있고 몸이 학교에 있으면,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몰려다니면서 술이나 먹고 밥이나 축내는 것을 능사로 여기고 해괴한 행실과 추잡한 이야기를 하는 버릇이 들어 소·말·돈·곡식으로 뇌물을 바치고 닭이나 술로 음식을 대접하며 그 사람이 뜻을 두어 바라는 것은 따지지 않고 서로 이끌어나갔으므로 교노(校奴, 학교에 딸린 노비)와 수복(守僕, 학교 일을 돌보는 구실아치)들이 상소리로 손가락질을 하며 봉마군(捧馬軍, 말을 바치는 군대)이니 봉수한(捧牛漢, 소를 바치는 사내)이니, 수미군(受米軍, 곡식을 받는 군대)이니, 습전군(襲錢軍, 돈을 엄습한 군대)이라고 부른다. 복마군(卜馬軍), 봉수한(烽燧漢), 수미군(需米軍), 습전군(拾箭軍)은 원래 명색이 군졸이었는데 학교에 양반들이 천거 받아 들어올 때 말·소·곡식·돈을 바치고 이름을 올렸기 때문에 음이 유사한 말을 따와서 비웃는다. 참으로 하류층다운 비속한 말이지만 한편으로 난잡해진 학교의 폐단이다.”

본래 복마군은 수송을 맡아 하던 군인이요, 봉수한은 봉홧불을 올리는 사람이요, 수미군은 학교에서 일용할 곡식을 거두는 군인이요, 습전군은 화살 줍는 군인이었다. 그러니 의식 있는 선비라면 오히려 학교를 회피하였다. 저 시절 '난잡해진 학교의 폐단'을 보면서 이 시절, '입시학원과 취업맞춤 연수기관으로 전락한 (대)학교'가 오버랩 된다.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 생생일신(生生日新)의 세계이다. 저 시절에도 실학자들은 끊임없이 변화를 외쳤다. 이 시절, 우리가 실학을 다시 독(讀)할 필요충분조건이다.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은 인하대학교에서 강의하며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고전독작가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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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21-04-20 00:51:18

우하영의 태도는 한편으로는 실학적 근대성의 단면을 보여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도 전통적 양반 사회의 관념에서 탈피하지 못한 한계성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우하영의 광범위하고 창의적인 개척 정책은 당시 농촌 지식인들의 의식 성장을 보여주는 것이었지만, 실제로 국가 정책에는 반영되지 못했고, 별다른 주목도 받지 못하였다.

. 출처: 우하영 [禹夏永]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윤진한 2021-04-20 00:50:38
외면당해서 큰 화는 입지 않아서 개인적으로는 멸문지화도 당하지 않고, 목숨도 부지했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우하영에 대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1755년(영조 31)부터 과거공부를 시작하여 여러 번 응시했으나 회시(會試)에서만 12번 낙방하는 등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후 당시 만연했던 과거 부정이나 관직 구걸 운동을 마다하고 시골의 유생으로 평생을 보낸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농촌 지식인이었다...공명첩(空名帖)에 의한 부농의 신분 상승을 긍정하였다. 그러나 농민층의 분화에 의한 전통적 공동체의 해체를 우려했고, 상민들의 양반 멸시를 용납하지 않았다. 또한 당시의 광작(廣作) 농업 경영을 비판하고, 화성장시(華城場市)에서 외부 행상의 금절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우하영

윤진한 2021-04-20 00:48:43
과거에 실패한 사람으로, 정확하게 국가체제에 선 사람도 아니고, 하층민중의 편에 선 사람도 아니군요.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해, 정약용.박지원 선생처럼 명성을 쌓은 학자도 아니고, 어정쩡하게 사회비판하며, 이름없이 살다간 사회불만세력으로 분류해야 할 듯. 이름없이 살다간 그런 사람에 너무 비중두면, 이를 본받아 이도 저도 아닌, 사회불만세력이 늘어나, 사회혼란이 야기될수도 있어서 걱정됩니다. 체제를 부정하며 이름을 얻어, 사회질서를 교란시키는 사람들의 경우, 혹세무민이라 하여 유교사회에서 배척되거나 참형을 당하고, 가톨릭사회에서는 종교재판을 받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학교교육도 부정적으로 묘사한걸 보니, 무명의 체제거부세력에도 해당될 것 같습니다.아주 위험한 발상이 여기서 보이는군요. 무명이고 외면당해서 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