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국내 여행에도 제약이 따르는 요즘이기에 가끔은 예전 해외여행 때 찍은 추억의 사진을 보면서 소중한 추억과 함께 정겨운 이들에 대한 고마움의 마음이 진하게 든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2000년대 초반 미국 로스엔젤레스 다운타운가에 있는 모건 스탠리 사무실 방문이었다. 높다란 빌딩의 3개 층에 자리 잡은 회사 사무실은 칸막이 없이 전체 사무실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개인별 사무면적은 낮은 파티션으로만 구분된 채 개인의 업무실적과 능력에 따라 책상 크기나 사무면적이 제각각 달랐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계장, 과장, 부장, 국장 등의 직책이 없고 직원의 업무실적에 따라 시원하고 전망 좋은 창가에 자리하기도 하며, 우수 직원은 창을 두세 개 차지하지만 업무실적이 저조한 직원은 구석진 중앙 한켠에 작은 책걸상과 컴퓨터 한 대만 차지한 모습이었다. 손님이 오면 당사자가 직접 탕비실에서 차를 가져와 대접하며 자신은 머그컵을 사용했는데 머그컵은 스스로가 매일 세척한다고 했다. 물론 가까운 카페에서 커다란 종이 텀블러로 배달시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루 일과는 시차가 빠른 뉴욕 시각에 맞춰 오전 10시쯤 여유롭게 출근해 오후 3~4시면 귀가하는 체계였다. 주차는 회사 간부에게 가장 좋은 위치가 주어지는 방식이 아니라 월별로 모든 사원이 자신의 주차 위치를 선불 계약해 평등하게 주차하고 있었다. 직원들이 무임으로 주차공간을 차지하기보단 방문 고객이 편리하게 주차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차원이라는 설명이었다.

반면 현재 한국과 인천을 보면 또 다른 세계를 보는 것만 같다. 상당수 관공서는 교통 중심지이자 역세권이며 대중교통이 편리한 대로변에 위치해 있지만 평일 오전 9시 전이면 이미 주차장은 만원 상태여서 민원인들은 발만 동동 굴러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민원 업무시각에 쫓겨 이중주차를 했다간 연락처가 없는 차량에 갇혀 낭패를 보는 일도 생긴다. 민원 업무를 기분 좋게 볼 수 있으리란 기대감에 앞서 주차 문제부터 걱정해야 하는 스트레스는 아직도 우리 사회 관공서의 문턱이 높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주민들 입장에선 관공서 주차장을 이용하면서 주차요금을 지불하면서도 불안하게 주차하는 여건인 데 비해 해당 관공서 공무원들은 주차요금 부담 없이 주차할 수 있는 환경은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대목인 것 같다.

인천 연수구청 주변 아파트 단지의 경우 지은 지 오래돼 주차난이 심한 상황이다. 가구당 보유차량 대수가 늘어나면서 오후 6시 이후엔 주차공간이 턱없이 부족해 아파트 단지 밖에 차량을 세우기 일쑤여서 밤잠을 뒤척이는 주민들이 많다. 물론 아파트 단지 주변이 정비되고 소공원과 체력단련시설이 들어서 생활 여건은 크게 개선됐다. 하지만 갈수록 주민들의 보유차량이 늘어나자 단지 내 체력단련시설을 구조변경해 일몰 이후 새벽까지 임시주차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주민 동의 하에 50여 면의 주차공간을 확보했다. 그러나 체육공간이 주차공간으로 바뀐 데 대해 일부 주민들이 항의성 민원을 제기하자 관할 구청은 결국 임시주차장 사용 금지 조치를 했고 지금은 온 종일 텅 빈 상태다. 이곳을 등지는 주민들은 "우리 동네의 거주환경이 좋은 편이지만 심각한 주차전쟁 탓에 주차하기 수월한 다른 동네로 이사 간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은 행정기관이 세운 가이드라인에 따라 규율되고 있다. 문제는 지나친 규제와 간섭이 주민들의 상식이나 바람과는 달리 오히려 주민 일상생활을 옥죄는 쪽으로 흐른다는 점이다. 행정기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주민들의 자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각종 법규가 추구하는 공익적 가치와 주민들의 요구 사이에 조화의 원리가 작동돼야 살 만한 사회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김실 대한결핵협회 인천시지부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