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인도 인천에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장애인의 날인 4월 20일을 일주일 앞둔 지난 13일, 휠체어를 탄 임수철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인천장차연) 공동대표는 인천시청 현관 앞에서 피켓시위에 나섰다.

피켓에는 인천지역 장애인 단체들이 요구하는 여러 요구들이 빽빽이 채워졌다.

그만큼 인천시가 장애인 정책에 소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구호 중에는 ‘시청 신관 장애인 화장실을 설치하라’는 요구가 눈에 띈다.

지난 3월 29일 문을 연 인천시청 신관 건물에 장애인 ‘화장실이 하나도 설치되지 않은 것’에 대해 항의하는 문구다.

‘420 장애인차별철폐 인천공동투쟁단’은 지난 6일 남동구 구월동 시청 신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들은 인천시청 신관 장애인 시설 문제를 지적하며 “장애인 차별금지법이 시행된 2008년 이후 가장 어이없는 차별 사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임수철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가 지난 13일 인천시청 현관 앞에서 ‘장애인 배제없는 평등 인천’을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제공=‘420 인천공동투쟁단’
▲ 임수철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가 지난 13일 인천시청 현관 앞에서 ‘장애인 배제없는 평등 인천’을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제공=‘420 인천공동투쟁단’

-퇴행하는 인천시의 장애인 인권감수성

문제가 된 인천시청 신관 청사는 지난달 29일 박남춘 시장이 참석한 가운데 그럴싸한 개청식을 가졌다.

박 시장이 현판을 제막하고 직원들과 자랑스레 기념촬영을 했다.

현 시청 청사 맞은편 건물의 5층-16층을 260억 원에 사들여 마련한 신관에는 여성가족국, 교통정책과 등 31개 부서 622명이 근무하고 있다.

그런데 이 건물에는 장애인 화장실이 한 곳도 없다.

장애를 가진 직원이나 민원인이 화장실을 가려면 옆 건물로 가야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3층으로 내려와 복도식으로 만들어진 통로를 따라 옆 건물로 이동해야 한다.

인천시청 총무과 직원들도 “다른 건물 장애인화장실을 이용하라”고 친절(?)하게 안내한다.

장종인 인천장차연 사무국장은 “최근 들어 관공서를 상대로 장애인 화장실 문제를 제기한 경우가 없었다”면서 “인천시의 장애인 인권감수성은 시간이 갈수록 퇴행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 인천시 장애인 정책, 전국 광역시 중 꼴찌 수준

인천에 거주하는 전체 장애인은 2021년 3월 말 기준 14만6725명에 이른다.

각종 통계자료는 이들 중 상당수가 열악한 생활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준다.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에서 발표한 ‘2020년도 전국 시도별 장애인 복지·교육비교를 보면, 인천의 장애인 규모는 전국 8개 광역시 중 서울과 부산에 이어 3번째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1인당 장애인 복지예산은 265만1348원(2019년 기준)으로 8개 광역시 중 꼴찌로 조사됐다. 8개 광역시 평균 383만3496원에도 크게 못 미치는 수치다.

반면 대전(572만2094원)과 광주(552만8301원)으로 인천의 두 배가 넘었다.

‘420 장애인차별철폐 인천공동투쟁단’은 지난 6일 출범 기자회견을 갖고 3개 주제·23개 요구안을 인천시에 제안했다.

3개 주제는 △탈시설-지립지원 체계 강화 △발달장애인 지역사회 통합 환경 구축 △장애인 친화적 지역사회 구축 등이며 이를 위한 23개의 구체적 요구안이 첨부됐다.

이를 통해 인천시 장애인 정책의 현주소와 그 대책을 사안별로 살펴본다.

▲ ‘420 장애인차별철폐 인천공동투쟁단’이 지난 6일 인천시청 신관 건물 앞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갖고 시청 신관 건물에 ‘장애인 편의 시설 설치’를 외면한 인천시를 규탄하고 있다./사진제공=‘420 인천공동투쟁단’
▲ ‘420 장애인차별철폐 인천공동투쟁단’이 지난 6일 인천시청 신관 건물 앞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갖고 시청 신관 건물에 ‘장애인 편의 시설 설치’를 외면한 인천시를 규탄하고 있다./사진제공=‘420 인천공동투쟁단’

- 말로만 하는 장애인 저상버스 도입 계획

저상버스는 장애인이 휠체어를 탄 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안전하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차체 바닥을 낮추고 휠체어 탑승 발판을 설치한 버스를 말한다.

인천시는 지난 2018년 ‘제3차 인천광역시 교통약자 이동 편의증진계획’을 통해 “2021년까지 전체 버스의 45%를 저상버스로 교체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9월까지의 저상버스 보급률은 목표치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21.1%에 그쳤다.

이는 전국 8개 광역시 중 최하위인 7번째의 기록이며, 서울의 56.9%는 물론 전국 평균 (28.4%)보다 낮은 수준이다.

임수철 인천장차연 공동대표는 “인천시는 국토부가 80억 원의 저상버스 도입 예산을 배정할 때도 이에 비례한 자체 예산을 내놓지 못해 20억원만을 받아오는 경우도 있었다”면서 “이대로라면 올해 목표치 달성은 언감생심”이라고 비판했다.

 

- 인천시 조례를 외면하는 장애인 정책

인천광역시는 2011년 10월 ‘인천광역시 장애인차별금지 및 인권보장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이 조례 제3조는 “시장은 장애인 차별금지와 인권보장을 위한 기본계획, 연도별, 시행계획, 교육, 홍보 실태조사 등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시의회에 보고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인천시는 조례 제정 4년째가 되는 지금까지 계획수립은 물론 실태조사도 실시하지 않고 있다.

반면 서울시와 경기도, 대전 등 전국 10개 시도는 이미 기본계획을 수립했거나 용역발주를 준비하고 있다.

장 사무처장은 “인천시의 장애인 정책 전문가들이 다른 시도의 요청으로 그 지역 기본계획 수립을 도와주고 있는데도 정작 인천시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인천시는 지금이라도 서둘러 인천시 조례에 따른 장애인 차별금지 및 인권보장을 위한 1차 5개년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공수표에 그친 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이하 교육센터) 확대 계획

발달장애인은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을 비롯해 통상적인 발달이 지연돼 일상생활에 제약을 받는 사람을 말한다.

인천시는 이들을 위해 지난 2019년 ‘420장애인 공동투쟁단’과 합의를 통해 매년 2개소의 교육센터 설치를 약속했다.

이 합의대로라만 지금까지 최소 4곳의 교육센터가 설치돼야 하지만, 지금까지 신설된 곳은 하나도 없다.

인천에서 운영 중인 교육센터는 합의 이전에 개관한 인천 서구 교육센터가 유일하다.

그나마 남동구에서 올해 개관을 목표로 교육센터 설치를 진행 중이지만, 나머지 신설 약속은 ‘온데간데’ 없는 상태다.

▲ ‘420 장애인차별철폐 인천공동투쟁단’이 인천시청 신관 건물에 내다 붙인 ‘장애인 차별 철폐 스티커’/사진제공=‘420 인천공동투쟁단’
▲ ‘420 장애인차별철폐 인천공동투쟁단’이 인천시청 신관 건물에 내다 붙인 ‘장애인 차별 철폐 스티커’/사진제공=‘420 인천공동투쟁단’

- 보육 사각지대에 방치된 장애 영유아 실태

지난 2019년 7월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6세 장애아를 돌보던 탈북민 어머니가 아들과 함께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어머니는 뇌전증을 앓고 있던 아들을 받아주는 어린이집을 찾지 못했고, 아들을 돌보느라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결국 어머니는 한 달 9만원에 불과한 임대료를 수개월째 내지 못한 채 마지막 통장에 남아있던 3천여 원을 모두 사용한 뒤 숨졌다.

하지만 이런 사건은 지금도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인천시는 물론 전국에 거주하는 해외동포 중 방문취업비자나 동반비자를 갖고 있는 사람은 장애인 등록이 불가능하다.

인천광역시에 거주하는 고려인의 경우를 살펴보면, 160여 명 가량이 장애인 등록을 하지 못해 지원정책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것으로 추산된다.

장애 영유아를 보호하는 시설도 태부족이다.

2019년 인천발달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인천시 장애영유아 돌봄시설은 장애전문어린이집이 6개소(2019년 기준)에 불과해 20여명의 어린이가 대기 중이다.

장애아 통합어린이집에도 122명이 입소를 하지 못한 상태지만 이 수치는 발달장애인에 국한된 것이고 여타 장애아는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 조사는 발달장애아를 돌보는데 하루 평균 12.1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분석했다.

결국 장애아를 영유아 시설에 맡기지 못한 부모는 아이를 돌보느라 직장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고, 어린이도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장차연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인천시 장애아동 보육실태조사 실시 △장애통합어린이집 연차적 확대 △장애영유아 돌봄 시간 확대 등을 요구했다.

장차연 임수철 공동대표는 “420인천공투단의 올해 요구안은 지난 15년간 지속적으로 제기했던 정책”이라며 “인천시가 검토한다며 차일피일 미루거나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최근 불거진 인천 신관 장애인 시설 문제는 인천시의 반인권적인 행태가 누적돼 드러난 것”이라면서 “장애인 배제 없는 인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인천을 만들기 위한 근본적인 정책전환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민들레장애인야학, 바래미야학, 작은자야간학교, 서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인천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인천장애인부모연대, 인천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노동당 인천시당 등 인천지역 9개 장애인 단체가 지난 2006년 결성했다. 이들은 매년 장애인의 날인 4월 20일을 전후해 ‘장애인의 권익향상과 자립생활 촉진’을 위한 ‘420장애인차별철폐 인천공동투쟁단’을 결성해 ‘장애인 정책 수립 및 실천’을 촉구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정찬흥 논설위원 report6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