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야외촬영소 3곳 뿐…수도권에 제작시설 확충 시급

영상제작 인프라 30개…VFX용 대형스튜디오 전무
CG 작업·수상 촬영 가능한 '다목적 시설'도 부족해

지방 촬영·노동 시간 부담…편집실 이원화도 어려움
스튜디오 대형·집적화로 콘텐츠 생산력 극대화해야

K-콘텐츠가 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국내 콘텐츠 제작 인프라는 열악한 실정이다. 수도권에는 모두 24곳의 영상 제작 인프라가 있으나 갈수록 수요가 커지고 있는 VFX(Visual Effects, 이하 VFX) 제작을 위한 1000평 이상의 대형 스튜디오는 전무한 상태다.

넷플릭스에 독점 공급돼 세계적 인기를 모은 우주SF영화 '승리호'는 촬영할 수 있는 스튜디오를 찾지 못해 일산 킨텍스에서 상당 부분을 촬영해야 했다.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 경쟁이 붙으며 제작비가 급격히 상승했고 주 52시간제가 본격 시행되며 지방촬영이 차질을 빚게 돼 제작사의 부담이 커진 것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K-콘텐츠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시설 대형화와 편집 등의 관련 산업 집적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족한 한국 콘텐츠 제작 인프라 현황

국내 영상제작 인프라는 양적, 질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현재 국내 영상제작 인프라는 총 30개로, 실내외 스튜디오는 총 92개다. 지역별로는 서울 4곳, 경기도 20곳, 대전 3곳, 전주 1곳, 광주 1곳, 부산 1곳이며 인천 소재의 제작 인프라는 없다. 이중 대형 야외촬영소는 단 3곳이며 CG 작업, 수상 촬영이 가능한 다목적 스튜디오 시설이 부족하고, 수도권에 1000평 이상의 스튜디오는 전무하다. 촬영 기반시설은 영화, 드라마 제작에 있어서 가장 기초적인 시설로 활용된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방송영상 콘텐츠 제작 현장 종사자 84명 중 89.3%가 수도권 인근 스튜디오 신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SBS의 드라마 및 영상제작을 총괄하고 있는 자회사 SBS A&T역시 일산 탄현제작센터 시설만으로는 인프라 시설이 충분하지 못해 경기도 화성시, 빛마루 등 외부 스튜디오 시설을 대여해 드라마 제작을 하고 있다.

국내 영화, 드라마 촬영 기반시설은 일제강점시대의 경성촬영소, 의정부촬영소, 1960년대의 안양촬영소, 1970~80년대의 영화진흥공사의 남산사옥 스튜디오, 90년대 이후 남양주종합촬영소로 이어진다. 이와 같은 촬영소의 역사는 영화촬영의 공간 확보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면서 조성됐다.

현대극에 비해 사극의 제작 여건은 더욱 열악한 환경이다. 수요를 모두 충족할 수 있는 스튜디오 인프라 시설이 없어 지방 곳곳을 전전해야 한다. 2018년에 tvN에서 방영된 <미스터 션샤인>이 대표적이다. <미스터 션샤인>은 이병헌, 김태리가 출연하고, <도깨비>, <태양의 후예> 등 다수의 히트작을 만든 김은숙 작가가 집필했다. <미스터 션샤인>은 제작비 430억원이 투입된 대작이다. 1회당 제작비는 약 16억원이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촬영지는 경남 합천 영상테마파크, 논산 션샤인 랜드, 고창 읍성, 합천 황매산, 창녕 화왕산성, 부안 영상 테마 파크, 만휴정, 초간정, 대전 스튜디오 큐브, 대장금 파크 등 전국적으로 걸쳐 있다. 시청자의 철저한 고증도 넘어야 할 산이다.

열악한 제작 인프라에 주 52시간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콘텐츠 산업 전반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장르를 막론하고 촬영 스튜디오와 편집실이 전반적으로 부족하다보니 실제 일하는 시간 보다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일이 허다한 실정이다. 편집실 부족, 길어지는 대기와 이동 시간과 같은 열악한 환경이 노동시간 측정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스태프들의 피로도까지 높이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조사(2018)에 의하면 여전히 주당 10시간 이상 초과노동을 하고 있다는 사업장이 6.6%에 이르고 있으며, 4.9%의 사업장에서 월 3일 이상의 휴일노동을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에서 촬영하는 경우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방송 제작 과정은 상황이 다양하고 특수한 경우가 많아 노동시간의 측정 기준을 세우기가 모호하다. 영상 오디오 기록물 제작 및 배급업과 방송업이 근로 시간 특례에서 제외되면서, 30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2018년 7월부터 평일 최대 52시간, 휴일 16시간 총 68시간으로 노동시간이 제한되었고 2019년 7월부터 주 52시간제가 적용됐다. 5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2020년 1월부터, 5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2021년 7월부터 주 52시간이 적용된다. 이로 인해 콘텐츠 제작자들은 노동시간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해외 수출 염두에 둔 스튜디오 기반 설립의 필요성

스튜디오 설립은 영화, 드라마 등 영상 산업의 발전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국내 세트장과 달리 해외의 경우 세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특화된 세트장 건립 및 활용에 중점을 두고 있다. 미국은 1912년 인스빌 스튜디오를 할리우드에 건립하면서 프로듀서 시스템, 스타 시스템과 장르 영화의 정착화를 통해 할리우드의 스튜디오 시스템이 확립됐다. 해외 촬영 기반시설 대부분은 이 시설을 소유한 거대 메이저가 투자 또는 자체 제작하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영어권 국가의 촬영 기반시설 사업은 할리우드 영화 제작을 위해 대여되거나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가 현지에 건립해 제작비 절감과 다양한 홍보전략 차원에서 운영되고 있다.

국내의 경우 지자체가 설립한 촬영 기반시설은 지방 로케이션 촬영과 연계돼 제작비 절감 효과를 가져다준다.

전주가 대표적이다. 로케이션 촬영이 많은 곳 중 하나로 콘텐츠 제작사 입장에서는 전주 영화종합촬영소와 연계한 세트장 촬영을 병행하곤 한다. 야외촬영장과 실내스튜디오가 있어 원스톱 촬영이 가능해 전쟁, 시대극 영화 수요가 많다. 그러나 실내스튜디오가 하나뿐이어서 사용일이 겹치는 경우도 발생한다. 대전 특수효과타운은 로케이션 촬영과의 연계 외에도 수도권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점이 부각되면서 스튜디오 촬영이 빈번이 이뤄진다.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는 지자체가 설립한 촬영 기반시설 중 가장 큰 스튜디오를 보유하고 있어 대형 작품들이 선호하고 있다. 또 경남과 연계한 로케이션 촬영이 활성화돼 있다.

그렇지만 콘텐츠 제작사와 종사자의 입장에서는 지방촬영은 비용이 과다하게 사용되는데다 촬영과 편집이 이원화되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콘텐츠의 소비가 국내를 넘어 세계로의 유통이 본격화되면서 대규모 제작비가 투여되는 '대작' 제작이 일상화되었다. 이에 걸맞는 VFX 시설을 갖춘 대형 스튜디오 시스템과 컴퓨터 그래픽 등 첨단 편집제작 시스템이 수도권에 갖춰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고급 촬영 장비의 대중화와 할리우드 영화에 익숙한 관객의 영상미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짐에 따라 세트 규모와 내용은 단순한 영화, 드라마적 공간의 재현이라는 의미를 뛰어 넘는다. 그동안 국내 방송시장은 지상파 방송사의 수직통합체제로 인해 제작과 편성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시스템이었지만 글로벌 OTT 기업의 제작비 투자가 본격화되면서 제작역량을 중심으로 한 대형 제작사들이 편성을 보장받게 되는 스튜디오 시스템이 정착되어 가는 양상이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이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중국은 영화촬영 및 제작을 위해 각지에서 운영하는 제작소를 가지고 있다. 중국의 영화정책 관리 체제는 1993년 이후 제작소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규제를 풀어주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으며 현지 로케이션 촬영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이를 통해 영화 <뮬란>에서처럼 논란을 야기하면서까지 자국의 정치·문화적 상황을 글로벌 콘텐츠에 담기 위해 팔을 걷어 붙이고 있다.

국내 한 콘텐츠 제작 관계자는 “열악한 제작환경에서 수십년 갈고 닦은 한국의 콘텐츠와 제작기술은 세계적 수준에 올랐고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세계적으로 두터운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면서 “콘텐츠 생산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K-콘텐츠에 우리의 정서와 상품을 담아 세계로 알릴 수 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자칫 우리가 글로벌 콘텐츠 하청구조로 전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칭우 기자·최현민 인턴기자 palette@incheonilbo.com

 


 

[임순원 SBS A&T 미술본부장]

“과감한 정책·투자 이뤄지지 않으면 글로벌 하청 구조로 전락할 수 있다”

▲ 임순원 SBS A&T 미술본부장
▲ 임순원 SBS A&T 미술본부장

“예전 공중파 방송이 독점하고 있던 콘텐츠 플랫폼 시장이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의 진출로 콘텐츠 제작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과감한 정책결정과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K-콘텐츠의 지속성장은 고사하고 한국이 글로벌 콘텐츠 하청구조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SBS의 100% 자회사로 드라마 등 콘텐츠 제작을 총괄하고 있는 임순원(사진) SBS A&T 미술본부장은 글로벌 OTT 업계가 K-콘텐츠를 주목하고 있는 것에 대해 자부심과 함께 위기의식을 나타냈다.

현재 일산 탄현 SBS 제작센터에서는 최근에 종영된 펜트하우스 세트장 일부를 뜯어내고 지난 주말부터 방영 중인 모범택시 세트 설치가 한창이다. 펜트하우스의 시즌 연장이 결정돼야 세트장은 살아 남을 수 있다.

▲ 최근 종영된 SBS 펜트하우스 세트장.
▲ 최근 종영된 SBS 펜트하우스 세트장.

임순원 본부장은 “20여년전에 미국 파라마운트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관계자들이 세트장을 어떻게 허무느냐, 우리는 인건비가 없어서 못한다는 말을 했을 때 그 행간을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우리가 딱 20여 년 전 미국의 상황과 같다. 땅값 비싼 건 빼고”라고 말했다.

파라마운트는 인건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땅값을 활용해 세트장을 늘려 나가기 시작했고 관광상품화하면서 세계적인 테마파크 회사도 겸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 스튜디오가 턱없이 부족해 아무리 인기있는 드라마라 하더라도 세트장을 철거하지 않으면 후속작을 제작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미스터 션사인 등 일부 지방의 야외 세트장이 관광상품으로 현재도 인기를 끌고 있지만 실내 세트장의 경우 시즌이 연장되지 않을 경우 철거는 불가피하다.

그는 “시청자들의 안목이 높아지고 저작권에 대한 권리도 강해지면서 소품 하나에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그게 다 제작비용에 포함된다”면서 “역으로 생각해보면 드라마를 통해 우리 상품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중국 자본이 우리 콘텐츠에 투자하면서 집요하게 중국제품을 PPL로 요구하거나 편집과정에서 이를 삽입하는 것도 그만큼 콘텐츠의 확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콘텐츠 산업에 대한 주 52시간제 적용으로 한정된 제작비와 일정 안에서 결과물을 내놔야 하는 과제도 안게 됐다. 대형 스튜디오 확장과 함께 편집, 그래픽 작업, CG 등 영상 인력이 집적될 수 있는 인프라의 확충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임 본부장은 “콘텐츠 산업의 스튜디오 부족과 관행적 장시간 노동문제는 콘텐츠 산업 전반에 걸쳐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면서 “인프라의 대형화와 집적화, 그리고 산업 전반의 파급효과를 고려한 정책적 대안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글·사진=김칭우 기자 chingw@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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