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형 지방자치 30년] 부패 척결 고민하고 여성정치 '물꼬'
[인천형 지방자치 30년] 부패 척결 고민하고 여성정치 '물꼬'
  • 이주영
  • 승인 2021.04.11 19:49
  • 수정 2021.04.11 19:49
  • 2021.04.12 인천판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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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경제는 지역상공인에 의해서가 아닌 서울에 본부를 둔 재벌 대기업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다. (중략) 지역 상공인들의 참여기회는 상당히 적어졌다. 인천의 정치를 재벌 및 중앙정부와의 불균형적인 관계를 강화·유지시키게 하였다.” 정일섭 인하대 교수 공저, '인천 지역의 이해:정치, 행동, 사회운동' 중.


제38회 인천광역시의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1995년 10월11일) /사진제공=인천시의회
제38회 인천광역시의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1995년 10월11일) /사진제공=인천시의회

1995년, 인천은 외적 팽창에 급물살을 탔다. 인천직할시에서 인천광역시로 바뀌며 경기도 강화군·옹진군과 함께 김포시 검단면이 인천으로 통합됐다. 여기에 중구 영종도에 건설 중인 인천국제공항이 가시권에 돌입했고, 서구 경서동 인천매립지에 수도권 쓰레기가 대거 유입됐다. 송도신도시 매립까지 본격화되는 등 인천은 한반도 지도를 바꿔놓았다.

인천직할시 제1대 시의원 27명은 도시 규모가 커지며 32명까지 늘었고, 지방자치 완전 부활로 처음 시행된 지방의회 비례대표 3명까지 더해져 35명이 됐다. 3대 시의원은 29명(비례 3명)이었다. 1995년∼2002년 당시 인천은 내적으로 곪아 있었다. 그 한가운데로 인천광역시 지방자치 시대가 청년기를 맞았다.

▲인천형 지방자치, 인천병을 치유하라

1990년대 중반 인천은 모든 분야에서 정상에 못 미쳤다.

1883년 개항 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경인공업지역의 중심축으로 성장한 인천은 우리나라 산업화 1번지이자 중화학 공업의 전진기지였다. 전국의 젊은층이 일자리를 찾아 인천으로 대거 유입되며 도시는 급속도로 팽창했다.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변한 곳, 바로 인천이었다.

회색도시라는 오명은 필연이었고 수도권매립지까지 더해져 최악의 오염 도시로 전국에 각인됐다. 북구청 세무비리는 인천의 청렴 수준을 낮췄고, 전시·체육 등 문화시설은 서울에 가려 전무하다시피했다. 전국 최초의 철도가 놓였고, 1호 고속도로가 놓인 인천이지만 만성 교통난에 시달렸다.

오죽했음 시민들은 1995년 6·27 동시지방선거에 뽑힌 위정자들이 우선 해결해야 할 사안으로 교통(22.1%), 환경(18.1%), 지역개발(11%), 부패척결(10.1%)를 들었다. 이를 보도한 신문들은 “환경에 대한 인천의 관심은 공업단지가 집중된 경남과 대구, 경북보다 높았고, 부패척결에 대한 관심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고 분석했다. 그렇게 제1회 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됐다.

제2대 인천시의회 전반기 의장에 선출된 남동구 제2선거구 신맹순(민주당, 당시 53세) 의장은 당선인사로 “지난 4년 인천에 대형부조리가 일어났다. 이제 인천은 바뀌어야 한다”고 일갈했다.

3년 후인 1998년 제2회 동시지방선거 때부터 풀뿌리 민주주의가 지역에 정착됐다. '인천 정책선거 실천 시민단체 협의회', '인천 공명선거 실천 시민운동 협의회' 등 인천 시민사회는 적극적으로 선거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천형 지방자치가 10년이 흘렀지만 시 집행부와 시의회 관계는 여전히 냉랭했다.

제3대 시의원인 옹진군 제2선거구 최필승(새정치국민회의, 당시 62세) 의원은 “집행기관 노력은 미흡하다. 시의원들이 구체적이고 타당성 있는 질문을 함에 시 집행부는 행정 전반에 대한 집행기관 계획 등에 검토하겠다. 노력하겠다. 계획 수립 중이다 등 애매모호한 답변이 대부분이다. 어이가 없는 행정처리가 아닐 수 없다”는 답답함을 나타냈다.

▲ 제2대 인천시의회 여성의원 당선 축하연 모습./인천일보 DB
▲ 제2대 인천시의회 여성의원 당선 축하연 모습./인천일보 DB

▲인천 지방자치, 여성 신장 강화 숙제

인천시의회로의 여성 참여는 나아지지 않고 있다.

제2대 시의회에서는 견고하게만 느껴지던 지방의회에 여성 의원들의 참여가 실현됐다. 원미정, 홍미영, 이영환 시의원이 당선됐고, 이어진 제3대 시의회에는 이들과 함께 박승숙(1998년5월 2대 비례대표 승계) 시의원이 등원에 성공했다. 이영환 시의원은 제3대 시의회에서 의장에, 박승숙 시의원은 제4대 시의회으로 의장으로 활동했다. 홍미영 전 시의원은 부평구의회를 시작으로 두 번의 시의원과 17대 국회의원(비례), 재선 부평구청장에 당선됐고, 박승숙 시의원은 중구청장에 오르며 시의회를 통한 인천형 지방자치 발전에 앞장섰다.

제3대 시의회 후반기 의장에 선출된 남구(현 미추홀구) 제3선거구 이영환(새정치국민회의, 59) 시의원은 “여러분은 전국 최초의 여성의장을 택하여 주셨다”는 당선 인사를 했다.

1998년 인천에는 123개의 여성단체와 7만3623명이 활동 중이었고, 인천시의 건강, 환경, 남녀평등의식, 문화예술이해, 여성인권보호, 시민의 권리와 의무, 실업극복을 위한 교육 등에 여성 단체 등 참여가 활발해지며 당시 여성 정치 참여도 관심이 높았다.

그러나 시의회 여성 참여는 정체기를 맞고 있다. 심지어 2018년 시행된 제7대 동시지방선거에서는 지역구 광역시의원 중 여성은 한 명도 당선이 안 되며 제8대 시의회에는 비례대표로 진출한 3명의 여성만이 있을 뿐이다.

/이주영·김원진·이창욱 기자 leejy96@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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