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IMF사태 이후 등장한 드라마 '상도(商道)'가 인기를 끌었다. 조선 순조(1801~1834) 시절 상인들의 존경을 받았던 거상(巨商) 임상옥(林尙沃, 1779~1855)의 일대기를 그린 50부작이었다. 돌이켜보면 오늘날 CEO들에게 직업윤리 의식과 상도덕의 방향을 제시하고 실천한 모습으로 비춰진다. 위기와 역경을 딛고 성공에 이를 뿐만 아니라 장사 이윤의 사회 환원 장면도 인상 깊었다. 현대 기업의 소명처럼 인식되는 사회적 책임활동을 오래 전 보여준 사례로 마음에 남는다. 장사는 물건을 사고파는 일을 뛰어넘어 '사람을 남기는 일'이라는 교훈도 보여줬다.

나는 지난해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회사 운영의 앞날에 걱정이 많았다.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고심을 거듭했다. 청(淸) 나라와 무역을 하던 거상 임상옥에 있어서도 '인삼값 파동'은 위기였을 것이다. 청나라 상인들의 담합으로 인해 인삼값이 곤두박질치자 인삼을 몽땅 태워버리는 결정을 내렸다. 결국 인삼매물이 대폭 줄어들 것을 우려한 상인들은 임상옥이 부르는 값에 인삼 전량을 구매하고 말았다. 위기를 타개한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의 각오이고, 쉽지 않은 결단이었을 것이다.

위기는 나로 인해서도 타인에 의해서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그 위기를 어떻게 벗어나느냐가 관건이다. 주변 상황에 맞게 면밀히 대처해야 할 방안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른바 평소의 '내공'을 쌓아두기 위한 경험과 학습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코로나19 이후 기업운영의 변화를 추진한 지 반년 정도가 흘렀다. 기업경영의 방향을 비대면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했다. 비로소 새 시스템이 정착되는 분위기다. 특히 이 작은 변화로 주변 동료 기업들로부터 혁신리더의 아이콘이 된 것 같다는 과분한 평가를 받을 때도 있었다. 유통업은 전통적으로 대면 기업활동이었지만 '5인이상 집합금지'와 같은 코로나19 방역방침은 예상치 못한 복병이었다. 매출 급감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거상 임상옥의 기지가 필요했다. 위기 탈출을 위한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우선 대면 업무의 비대면 전환을 모색했다. 비대면 업무 전산시스템을 도입하고 내근 직원과 영업 직원의 대면 업무부터 대폭 줄여나가는 초강수 전략을 선택했다. 소요되는 비용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긍정적으로 수용했다.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고 반년 정도가 지난 현재, 배달 업종이 늘고 매출 규모가 정상을 되찾아 가고 있다. 출·퇴근 기록을 현장에서 입력하는 등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고 자리를 잡게 돼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을 실감한다.

거상 임상옥에게는 석숭 스님의 가르침이 컸다. 어느 날 작은 꽃 하나를 꺾어오라는 질문에 임상옥은 살아 있는 꽃을 꺾는 건 아닌 것 같아 화병의 꽃을 가져갔다고 한다. 석숭은 자비와 성공이 가까운 곳에서도 가능하다는 지혜를 보는 눈을 가르쳐줬다. 꽃병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음으로써 물건이나 사람을 대할 때 크고 작음을 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임상옥은 평생 거상으로서 도리에 어긋나지 않고 상도에 어긋나지 않은 천하제일의 CEO였던 셈이다.

지난 17년간 소상공 유통업을 운영하면서 처음으로 위기 상황에 봉착했었다. 다른 자영업자와 소상공업자들도 마찬가지로 흔히 3D 업종 분야에 젊은 인재들이 지원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개선된 시스템 경영을 통해 젊은이들도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회사에 재직하는 요즘 젊은이들이 직장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하게 되는 계기였다. 인력 채용에 과거보다 자신감이 생기고 새로운 사업에 용기와 도전도 뒤따랐다.

사실, 코로나19의 위기 터널에서 한줄기 빛을 본 것은 인천일보 문화경영대학 글로벌혁신리더 CEO과정의 강의가 계기였다. 이 기회를 놓쳤다면 과거에 안주하고 제자리 사업에 머물렀을 것이다. 임상옥과 같은 과감한 결정,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절제가 유효했다. 임상옥의 일대기를 그린 최인호 장편소설 <상도>를 다시 펴본다.

 

/최동규 (주)용운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