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8년차 이하 사원_대리가 주축이 된 사무직_연구직은 가칭 '현대차 사무연구노조'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생산직 중심의 노동조합과 결별하고, 사무직을 위한 별도 노조를 설립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는 기존 노조에 대한 오래된 불만에서 비롯됐다. 생산직 중심의 노조 체계에서는 사무직과 연구직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이들은 자체 교섭권을 확보해 기존 노조의 투쟁 방식과는 다른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1970~1980년대 사측의 비인간적 처우에 맞서 노조가 설립됐지만, 현재의 노조는 이익만을 챙기는 조직으로 변질됐다고 강조한다.

현대차 직원들 사이에는 '갓술'이라는 표현이 오르내린다. 신을 뜻하는 '갓(God)'과 기술직의 '술'이 합쳐진 말로, 기술직(생산직 포함)이 '갑 중의 갑'이라는 의미다. 흔히 말하는 '귀족 노조'가 진화된 것처럼 보인다.

최근 현대차 인터넷 게시판에는 구성원들의 위상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그림이 올라왔다. 현대차의 맨 꼭대기에는 '갓술'이 앉아 있고, 정의선 현대차 회장은 그 아래 의자에 앉아 있다. 불현듯 예전 일이 생각난다. 현대차 울산공장에는 노조위원장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었고, 빨간 조끼를 입은 노조 간부들은 검색대를 그냥 통과했다. 임원도 신분카드를 제시해야 곳이다.

한 사무직원은 “(노조) 대의원들이 와서 큰소리칠 때마다 가슴이 떨린다”며 “무슨 1980년대 영화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도 당해서 이제 '투쟁'이라는 글씨만 봐도 토가 나온다”라는 글도 게시판에 올라왔다.

새 노조 설립을 주도하는 직원들은 MZ세대다. MZ세대는 1980년대 초~2000년대 초 태어난 밀레니얼(M)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하는 용어다. 20~30대인 MZ세대는 그동안 대기업에서는 목소리를 별로 내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세게 나오는 모양새다. 이미 중소기업_중견기업에서 존재가치가 입증된 MZ세대의 대기업 착륙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은 기존 노조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차원을 넘어 회사의 처우, 경영진 실책, 조직문화까지 타깃으로 삼고 있다.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는 “이념이 아니라 실리와 공정을 추구하는 MZ세대의 반란은 찻잔 속 태풍에 그치지 않고 계속 번질 것”이라고 말했다.

어찌됐든 회사 입장에선 생산직 중심의 기존 '강성 노조'와 새로 만들어질 'MZ세대 노조'를 모두 상대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피곤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법하다. 생산직 심기 관리에 주로 신경써온 것도 후회될 것이다.

 

/김학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