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찬사를 받았다는 영화 <미나리>를 보기 위해 기다림 끝에 지난 주말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는 미국 사회 내 한국 가족의 삶을 그려내며 이민 1, 2세대 그리고 3세대에 걸친 소통의 부재를 잔잔하지만 진하게 풀어 놓는다. 실제 아칸소에서 자랐던 감독의 어렸을 적 경험을 바탕으로 쉽지 않은 한국인 이민자들의 삶을 담고 있다.

영화는 이민자 제이콥의 가족이 작은 시골 마을로 이사하며 시작된다. 인적이 드문 시골길 끝에는 농장으로 가꾸어나가야 하는 너른 땅과 트레일러 집이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던 제이콥의 부인 모니카는 집을 본 후 실망을 금치 못한다. 바퀴 위에 놓인 집, 토네이도가 닥치면 땅에 제대로 고정되지 않은 트레일러 집은 위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힘겨운 환경에서도 자라난다는 식물 미나리를 제목으로 가져온 영화 <미나리>에는 이처럼 이민자 삶의 힘겨움이 다양한 요소로 등장한다. 필자는 이 중에서도 특히 한곳에 정착해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트레일러 집이라는 공간적 설정에 함축되어 있는 점을 흥미롭게 보았다. 바퀴 달린 집은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어 정주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민자의 거주 불안정성을 이야기한다. 태풍이 불면 비가 새고 날아갈 것처럼 흔들리는 집은 원하지 않는 거주의 이동이 그들의 삶에 수반됨을 강조한다.

영화를 본 후 거주와 집, 땅 그리고 삶의 관계에 대해 생각이 이어졌다. 특히 집을 의미하는 한자에 대한 의아함과 동시에 내 삶에 집과 관련된 진한 기억이 떠올랐다. 내게 집은 안전하다는 절대적인 믿음은 2012년 5월을 기점으로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생애 첫 지진을 경험하기 전 내게도 집은 나를 위한 최고의 쉼터이자 안전한 장소였다. 5층에 위치한 방안에 홀로 잠을 자고 있던 밤, 내 몸을 엄청난 세기로 흔들어 깨운 건 사람이 아닌 땅이었다.

잠에서 깨어 바라본 집이라는 공간은 너무나 낯설고 두려운 대상이었다. 나를 비롯한 모든 것이 격렬하게 흔들리는 그 순간, 생존을 위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엄청난 중압감이 가득했다. 사회적인 위협이 아닌 땅의 불안정성이 집, 나아가 내 삶을 흔들고 있었다. 100여년 만에 이탈리아 북부 도시까지 찾아온 지진은 그 이후 몇 번의 여진과 함께 땅과 집, 그리고 삶에 대한 내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 이후 집과 관련한 한자를 볼 때마다 질문이 피어오른다. 가(家)나 택(宅), 실(室)과 같은 글자에는 집의 기초나 땅이 아닌 지붕이 들어있다. 선사시대의 움막과 같은 구조가 연상된다. 그러나 지진에 대한 경험과 영화 <미나리>의 바퀴 달린 집은 지붕이 아닌 바닥, 즉 땅과의 관계에 집중하게 한다. 지진의 경험은 내가 딛고 있는 땅, 내가 편히 누워있는 집이 움직일 수도 있다는 만약을 현실화했다. 영화 <미나리> 안에서 쉽지 않은 이민자의 삶을 상징하는 수많은 장치들 가운데에서 필자의 시선은 바퀴 달린 집으로 향했다.

땅에 기대어 안전하게 살아가는 정주(定住)의 행위, 당연하지만 그렇지 않은 삶이 존재한다는 깨달음. 집과 땅에 대한 여러 가지 소식이 들리는 가운데 자본에만 연결되어 있는 집을 우리의 삶과 연관지어 돌이켜본다. 우리는 어디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산다는 의미에 대해 유무형의 땅과 사회와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봐야겠다.

 

/유영이 서울대 건축도시이론연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