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유치, 근현대사 아픔 치유 동시에 국가균형발전 초석”

지역민이 '철도 개설 반대했다'는 왜곡
이번 보도로 뒤늦게라도 바로잡아 다행

과밀화된 수도권 교통 수요 지방 분산과
안성 미래 먹거리 준비 위해 반드시 구축

안성시는 농촌과 도시가 조화를 이룬 대표적인 도농복합도시다. 시는 경기도 31개 시·군 가운데 아홉 번째로 면적(553.5㎢)이 큰 도시로 칠장사, 미리내 성지 등 종교유적 역사문화자원이 풍부하고, 금광호수, 고삼호수 등 수변 자원을 보유한 환경친화적인 지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구 19만명의 안성시는 출산율이 저하되고, 평균수명 연장으로 인구 고령화가 진행돼 2015년에 이미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이에 대해 김보라(사진) 시장은 철도 교통망으로부터 소외된 것이 안성발전의 장애가 된 것으로 판단했다. 이 때문에 김 시장은 철도 유치의 필요성을 '절박하다'는 한마디 말로 표현했다.

“안성에 철도가 없는 이유를 놓고 잘못된 사실이 많이 알려져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철도 개설 당시 안성 사람들이 반대해서 그렇다고. 이 잘못된 사실 때문에 많은 시민이 철도가 없는 이유를 자신(안성 사람)의 탓으로 여겼다."

김보라 안성시장은 4일 인천일보를 만나 안성 철도 이야기를 꺼내면서 이같이 말했다.

김 시장은 “왜곡된 이야기 때문에 많은 안성 사람들이 패배주의 빠졌던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인천일보 보도로 역사의 진실이 뒤늦게라도 널리 알려져 다행”이라고 했다. 이어 “안성 철도와 관련된 역사 연구가 이만큼 이뤄져 있는지 몰랐다”며 “일제에 의해 안성이 경부철도에서 제외됐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고 했다.

김 시장은 “앞으로 온 시민이 힘을 모으고 있는 수도권 내륙선, 경강선 연장, 평택∼부발선 등 철도 유치에 큰 힘이 될 것”이라며 "여기서 더 나아가 안성 철도 유치는 아픈 한국 근현대사 치유의 한 장면 될 것"이라고 했다.

안성의 지리적 역사를 거론하면서 김 시장은 “조선 후기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는 안성은 화물이 모여 쌓이고 공장과 장사꾼이 모여들어 한양 남쪽의 도회가 되었다라고 묘사하고 있다”며 “이처럼 경기도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안성시는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 등에서 서울로 가는 관문적 기능을 수행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1985년부터 안성의 철도 운행이 중단되었고 1989년에는 철로가 철거되면서, 현재 안성은 수도권 가운데 유일하게 철도가 없는 곳이 되었다”며 “40년간 철도 없는 시대를 마감하고 도시 발전을 앞당기고자 국가 철도망 구축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시장은 “안성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철도 노선은 평택부발선, 수도권내륙선, 경강선 연장이 있다”며 “평택부발선은 제3차 국가철도망 구축 계획에 반영된 노선으로 기획재정부에서 실시하는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하기 위해 경기도, 국토교통부와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수도권내륙선과 경강선 연장은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반영 건의했다”며 “현재 지역 국회의원, 광역지자체, 안성 국가철도 범시민유치위원회 등과 함께 시민서명운동, 국회토론회, 민관합동결의대회를 개최하는 등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철도 유치를 통해 동에서 서, 남에서 북으로 연결하는 철도망이 구축되면 이동성과 접근성이 향상되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김 시장은 “과밀화된 수도권 교통, 항공수요의 지방 분산을 이끌어 내 국토균형발전을 실현할 수 있어 안성시에 반드시 철도가 유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시장은 “철도 유치는 안성 시민만의 염원이 아닌 국가균형발전의 한 축으로 생각한다”며 “안성시와 안성 국가철도 범시민유치위원회가 한몸이 돼 활동하겠다”고 했다.

철도 유치 전망에 대해 그는 “문제는 중앙정부가 철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며 “솔직히 기획재정부기 철도개설에 따름 수익구조(비용대비수익, B/C 1.0 이상)를 따지고 있어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김 시장은 “단기적으로 경제성만 따지지 말고 장기적으로 지역균형발전과 지역 파급효과를 고려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김보라 시장은 “안성에 철도가 건설되면 도로정비사업과 맞물려 교통 인프라가 개선될 것”이라며 “안성시 지리적 입지에 알맞은 편리한 교통망을 구축해 수도권 입지 가치(옛 상업도시의 명성)를 회복할 것”이라고 했다.

김 시장은 “동서와 남북을 잇는 교통 요충지로 다시 한 번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라며 “안성은 남북과 동서로 연결된 물류 중심 도시로 성장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동서로 연결된 경강선 연장과 평택∼부발선의 경우 북한을 거쳐 대륙으로 연결하는 선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서부지역은 교육과 복지 도시로, 동부지역은 농촌형 거점 도시로 만들 계획”이라며 “안성은 정주하는 도시로 만들기 위해 철도 유치와 맞춰 도시개발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김보라 시장은 “시민들은 지금 당장 철도를 유치한다고 해서 바로 운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5∼10년 이후 미래를 내다보고 철도 유치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이어 “지금 당장 먹고살기 힘들다고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철도 유치는 안성의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는 일”이라고 했다.

 

▲김보라 시장은?

김보라(52) 시장에게는 최초 타지역(전남 순천) 출신 여성시장, 최초 대한민국 의료생활협동조합이라는 수식어 따라붙는다. 김 시장은 26살 때인 1994년 안성에 와서 의료생활협동조합 창립멤버로 활동했다. 정치권에 입문한 김 시장은 2014년 민주당 비례대표로 도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2020년 4월 안성시장 재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서서 시장으로 당선됐다.

 

[취재 후기]

박탈감 컸던 시민들…조금이나마 해소됐길

인천일보는 두 달여 기간 동안 '안성 철도 이야기'를 취재하면서 인근 도시와 비교해 안성 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현장에서 강하게 느꼈다. 조선 시대 대표적 상업도시였던 안성은 1904년 조선을 침탈한 일본에 의해 경부철도 노선에서 제외된 뒤 117년간 속된 말로 '침체된 도시'로 전락했다. 그 이유로 안성 사람들은 “당시 사람들이 지역에 철도 개설하는 것을 반대했다”는 거짓 사실을 믿고 있었다. 그동안 안성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탓으로 돌렸기에 어디에다 하소연조차 못했다.

취재 과정에서 확인한 사료와 학술 연구 결과를 보도하면서 일제 수탈의 간악함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안성의 아픔은 한국 근현대사 맞닿아 있어 더 안타까웠다. 안성독립운동가 316명 명단을 지면에 게재하면서는 엄숙함마저 느꼈다. 안성시가 추진하는 안성철도 유치 노력이 결실을 볼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철도 유치활동이 아픈 역사 치유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글 이명종·김기원·최인규 기자choiinkou@incheonilbo.com

/사진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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