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전 그리고 시작
암전 그리고 시작
  • 박혜림
  • 승인 2021.03.28 19:14
  • 수정 2021.03.28 19:14
  • 2021.03.29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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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블루메미술관 내달 18일까지
'검다 - 이토록 감각적인 블랙'전 열고
강은혜 등 작가 7명 설치미술 선봬

독립기획자 이상윤의 첫 전시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정전'에 비유
마비된 일상은 '새로운 계기'의 메시지

블랙(검다) 미학의 예술 작품이 파주시에서 관람객을 기다린다.

파주시에 있는 파주블루메미술관은 다음달 18일까지 포스트 팬데믹(post-pandemic) 시리즈 중 첫 전시 '검다 – 이토록 감각적인 블랙'을 연다. 이번 전시에서는 강은혜, 강현선, 김범중, 김윤하, 김진휘, 안경수, 허산 등 7명 작가의 작품을 선보인다.

강은혜 작가의 '선' 설치 작품은 인간이 지각하는 공간 표현보다 마치 공간이 인간을 대하는 방식을 표현했다. 공간을 가로지르는 선들을 통해 비로소 관람자는 시각적으로 느끼지 못했지만, 엄연히 고요한 빈 공간 안에 존재하고 있던 무엇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공간의 구조와 비움, 에너지, 운동성과 같은 물리적 요소뿐 아니라 관계, 기억, 흔적과 같은 메타 요소를 아우르고 있어 색다름을 선사한다.

강현선 작가의 작품은 미세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비슷비슷해 보이는 주거 공간을 3D CG로 재현했다. 카메라 움직임은 계속해서 공간의 안과 밖으로 순환하는데, 궁극적으로 이 공간을 맴도는 궤적을 그릴뿐 최종적 방향은 상실돼 있다. 한정적인 목적에서 바라본 주거 공간을 새로이 느끼는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김범중 작가의 작품은 소리 감각의 새로운 방식을 보여준다. 특히 가로로 긴 형태의 'Oscillo' 연작은 인체의 스케일이 적용된 것으로 첼로, 어쿠어스틱 기타, 가야금, 거문고 등의 사이즈와 유사해 보인다. 각 악기의 음색은 겹겹이 쌓인 흑연으로 재탄생되는데, 이 과정에서 소리는 작가의 의식 속에 반복 재생된다. 힘의 강약과 선의 길이와 굵기 등을 악기 삼아 작품에서 다시 연주되는 모습을 감상하게 된다.

김윤하 작가는 감각을 수집하는 작품을 지속하면서, 소리에 대한 반응체계를 탐구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 다룬 'masking effect'는 듣고자 하는 소리보다 낮은 주파수의 새로운 소리가 입혀지면 먼저 있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는 음향학의 효과를 표현했다. 이를 통해 감각 대상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이에 대한 좌절, 또는 무감각했던 대상의 인식 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김진휘 작가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물건들을 사용해 상반된 특성 양쪽 모두를 표현했다. 운동과 정지, 정형과 무정형, 충동과 억제를 한 자리에 진행형으로 펼쳐 놓았다. 이로써 그의 일상적 물건들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양 저마다의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을 실감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놓칠 수 없는 부분은 작가의 역할 전환이다. 작가는 권력적 주체가 아닌 수집가, 매개자, 관찰자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을 작품을 통해 볼 수 있다.

안경수 작가는 실재하나 지각하지 못한 대상이 있는 밤 풍경화를 통해, 시각적 확신을 의문시한다. 그렇지만 작가가 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의 역할은 다만 어둠에 잠겨 있는 점과 선, 희미한 빛과 검은 윤곽을 '최선을 다해 인지'할 뿐이다. 이러한 감각적 태도는 작가의 역할을 최소화하며 감각체로서의 나, 반사체로서 창문, 피사체로서 풍경이 모두 하나로 중첩된 초현실적인 풍경을 작품에 담았다.

허산의 작품은 레디메이드 오브제와 조각 사이, 연출장면과 현존 사이, 대상과 주체 사이를 점유하는 혼종적 대상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단순히 의인화된 사물이 아닌, 객체이자 주체인 사물에 초점이 있다. 정어리 통조림의 응시를 통해, 응시당하는 객체로 전락한 '나'를 경험했던 라깡처럼, 허 산의 사물들 앞에서 우리는 그 낯선 존재들의 응시를 경험할 수 있다.

독립기획자 이상윤이 기획한 첫 전시 '검다'는 코로나19에 의한 팬데믹 상황을 암전(blackout)과 암순응(dark adaptaion)에 비유했다.

이상윤 기획자는 “갑작스러운 정전, 암전처럼 코로나19의 확산은 한순간에 모든 것을 마비시킨 듯 보이지만, 이것이 어떤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자 했다”며 “팬데믹의 블랙 속에서 궁극적으로 감각되는 것은 새로운 존재하기(being), 새로운 관계하기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을 작품으로 느끼기 바란다”고 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사진제공=불루메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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