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비 의존 구조 안 바꾸면 '재정 종속' 못 벗어난다

한국 현대사에서 지방분권 초석인 지방자치는 중앙정치 이해관계에 따라 멈춤과 후퇴의 연속이었다. 지방자치와 함께 자치분권 또 하나의 축인 재정 분권도 중앙정부의 종속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지방분권 1.0 시대는 제도적 지방자치에서 멈춘 시계였다.

▲ 수원시를 비롯해 고양, 용인, 창원시 등 4개 특례시장은 지난 19일 자치분권위원회위원장과 만나 자치 분권에 대해 논의했다. /사진제공=수원시
▲ 수원시를 비롯해 고양, 용인, 창원시 등 4개 특례시장은 지난 19일 자치분권위원회위원장과 만나 자치 분권에 대해 논의했다. /사진제공=수원시

▲지방분권 초석 지방자치의 흑역사

한국의 지방자치는 1948년 7월 제헌 헌법에 지방자치를 규정한 뒤 1949년 7월 4일 지방자치법이 공포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 법에는 지방자치단체에 국가 행정 사무 위임과 선거로 지방의회 구성 등을 규정하고 있다. 지방자치를 처음 법으로 규정해 지방분권의 첫발 내디뎠다.

그러나 당시 이승만 정부는 치안상태 불안을 이유로 지방자치의 근간인 지방선거를 하지 않았다.

이후 이승만 정부는 전쟁 와중인 1952년 4월과 5월 선거가 가능한 지역에서 지방선거를 했다.

이승만 정부가 국회 간접선거로 대통령 선출이 불투명해지자, 외연 세력 확장을 위해 선택한 결과다. 중앙정부와 국회의 갈등 때문에 지방선거가 처음 열린 셈이다. 이후 이승만 정권은 1958년 장기집권을 위해 지방자치법을 개정해 시·읍·면장 직선제를 임명제로 바꾼다.

1960년 지방선거가 열리기 5개월전 4·19혁명으로 지방선거는 무산됐다. 제2공화국 출범과 함께 지방자치법은 선거 연령을 21세에서 20세로, 피선거권자 연령은 지방의원과 시·읍·면장은 만 25세 이상, 도지사·서울특별시장은 만 30세 이상으로 조정하는 안으로 개정됐다.

정상궤도에 오를 것처럼 보였던 지방자치는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무너졌다. 군부는 지방의회를 해산했다. 이후 같은 해 9월 제정된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 조치법에 따라 자치단체장은 임명제로 전환됐다. 지방의회의 경우 구성 시기를 법률로 정한다고 헌법에 명시해 놓고 구성 시기를 법으로 제정하지 않아 지방의회는 구성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은 1980년 군사정권이 집권한 제5공화국에서도 유지됐다.

1988년 제6공화국은 지방자치법 전문을 개정해 지방자치단체를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로 구분했다. 여야 타협 끝에 1990년 12월 지방자치법을 개정하고 지방의원 선거는 1991년 6월 30일 이내 지방자치단체장선거는 1992년 6월 30일 이내 실시하도록 정했다.

이에 따라 5·16 군사 쿠데타로 지방자치가 중단된 지 30년 만인 1991년 지방자치가 부활했다. 기초의원선거는 1991년 3월 26일, 광역의원은 같은 해 6월 20일 열렸다.

1994년 12월 지방자치법을 개정해 지방자치단체장의 재임을 3선으로 제한했다.

1995년 6월 27일 지방의원과 자치단체장 선거를 동시에 치렀다. 이처럼 지방자치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시행과 멈춤, 후퇴를 반복해왔다.

지난해 12월 국회는 지난해 12월 주민참여권을 보장하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지방자치법 개정안과 국가 사무를 지자체에 이양하는 지방일괄이양법, 자치경찰제 시행을 담은 경찰창법 개정안 등 8개 법안을 의결했다. 이에 지난 1월 지방일괄이양법 개정에 따라 국가 사무 400개가 자치단체로 이양됐다. 자치경찰제는 오는 7월 시행을 앞두고 있으며 주민 참여를 보장한 지방자치법은 준비과정을 거쳐 내년 1월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현재 자치분권과 관련해 주민 조례 발의법과 지방세법 등 13개 법률이 국회에서 심의 중이다. 말 그대로 올해는 지방분권 2.0 시대를 위해 첫걸음을 내딛는 해가 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구리시 안승남 시장은 "5.16 군사정변이후 1991년 지방의회가 복원될 때까지 자그마치 30년간이나 장기간 중단됐던 영향으로 온전한 지방자치와 자치분권은 실현되지 못했다"며 "앞으로 주민의 자치행정 참여가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자치분권의 핵심"이라고 했다.

▲갈 길 먼 지방분권 한 축 재정분권

지방분권 핵심 중 하나가 바로 재정 분권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에 재정을 의존하지 않고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재정을 운영해야 온전히 지방분권이 실현됐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지방분권 전문가들은 중앙정부가 자치단체에 세입과 세출 등에 관한 재정적 권한과 기능을 이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재정 분권은 지방자치가 시작한 지 74년 동안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관련 법 자체가 지자체가 중앙정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형태로 짜여있다. 대한민국의 현행 국세와 지방세 배분상 각 지방에서 벌어들이는 세금에서 대부분의 세목을 국세로 지정해 놓아 중앙정부 수입으로 잡힌다. 반면 지방에서 번 돈이 자치단체의 손에 들어가는 지방세 항목이 많지가 않다. 각 지방이 알아서 뭔가 하기엔 돈이 없어서 정작 중앙정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배인명 서울여자대학교 교수의 '정부의 재정 분권 추진 성과 평가 및 보완과제' 자료에 따르면 지자체단체 재원의 비율이 지속해서 낮아졌다.

결산기준으로 2005년 자체재원(지방세와 세외수입)의 비율은 68.40%였으나 2010년에는 60.50%, 2017년에는 64.03%에 그쳤다. 반면 의존재원, 국고보조금의 비중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국고보조금 비중은 2005년 13.20%에서 2010년 19.20%, 2015년 19.53%로 나타나 무려 중앙정부 의존도가 매년 더 커진 셈이다.

우리나라 국세와 지방세의 비중(2012년부터 2019년까지)은 약 8대2 내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비중은 지방자치가 부활한 30년 동안 큰 변화가 없었다.

반면 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는 1996년 62.2%에서 낮아져서 2020년에는 50.4%를 기록했다. 그나마 지난해 경기도는 64.8%, 인천광역시 59.8%로 전국평균 자립도보다 높은 편이다.

그나마도 2할의 지방세를 광역(시/도)과 기초(시/군/구)가 나눠야 하므로 자치단체의 재정 자립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지자체는 해마다 중앙정부가 분배해주는 교부금을 확보하기 위해 비상이 걸린다.

이러한 재정 분권 역행때문에 수원과 화성, 오산시 등 많은 경기도 각 자치단체는 서울시에 대외협력사무소를 별도로 운영한다.

혈세가 들어간 대외협력사무소는 정부와 국회 대상으로 정책 파악, 국비 확보, 투자유치, 시정홍보 등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실제 주력 업무는 국비 확보다.

국비 확보 경쟁은 늘 치열하다. 자치단체는 국비 확보를 위한 맞춤 전략도 짠다. 누가 더 적극적으로, 집요하게 설득 전에 임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와 자치단체의 종속 관계를 드러낸 단면이다.

매년 연말 국회에서 벌어지는 쪽지 예산 논쟁도 마찬가지다.

지자체에서 필요한 예산이 제때, 맞춤형으로 예산이 배정되는 것이 아니라 힘 있는 국회의원 입김에 따라 수조 원의 돈이 오간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 중의 하나로 '지방재정 자립을 위한 강력한 재정 분권'을 약속했다.

재정 분권이 실현되기 위해선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7대3을 거쳐 장기적으로 6대4 수준까지 개선해야 한다. 그 이유는 지방 이양 일괄법에 따라 국가 사무를 이양받은 지자체가 실질적으로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정 분권이 없는 지방 이양 일괄법은 속 빈 강정에 불과하다.

경기도의회 자치분권발전위원회 진용복 총괄추진단장은 “재정분권은 자치사무의 확대와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예산 뒷받침이 없이 자치 사무를 이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명확한 재정분권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원·최남춘 기자 baikal@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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