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의 잔해 속에서 공명하며 메아리치는 장송곡
▲ 영화 '독일 영년' 중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에드문트가 나치 잔당의 아파트에서 우는 장면.

“저항을 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어. 대부분의 사람이 그랬지. 재앙이 오는 걸 보면서도 막으려고 하지 않았어. 그리고 오늘날에야 그 대가를 치르는 거지. 모두가!”

2차 세계대전 패망 직후의 독일 베를린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에드문트 가족의 삶은 하루하루가 악화만 되어간다. 병든 아버지는 가뜩이나 고통스러운 자식들에게 자신이 짐만 된다는 생각에 죽고 싶은 심정이다. 1차 대전 참전 군인으로서 패전의 쓰라린 경험을 가진 아버지는 나치를 막지 못하고 자식들에게까지 전쟁의 상처를 물려주게 된 걸 뼈저리게 후회한다.

영화 '독일 영년'(1947)은 '무방비 도시', '전화의 저편'에 이어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의 전쟁 3부작의 완결편이며, 2차 대전 직후의 파괴된 도시 베를린을 배경으로 잿더미 위에서 다시 삶을 시작해야 하는 독일 국민들의 비극적 참상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네오리얼리즘의 선구자로 추앙받는 로셀리니 감독은 이 작품에서 리얼리즘에 표현주의 영화기법을 과감하게 도입하여 인물의 내면세계를 반영한 정신적이고 영적인 리얼리즘을 선보였다.

 

소년의 비극적인 파멸을 통해 파헤친 나치의 허상

도로 바닥을 비추던 카메라가 위로 향하면, 파괴된 건물의 잔해가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렌즈에 잡힌다. 영화는 전쟁으로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된 베를린의 참담한 풍경을 다큐적인 시선으로 반복해서 훑으며 오프닝을 연다. 이 오프닝 장면은 당시의 베를린 도시 풍경을 카메라에 그대로 담아낸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끔찍함에 현실이 아닌 환상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도시를 훑던 카메라는 이제 아래로 향하여 폐허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는 독일인들에게 시선을 고정시킨다. 12세 소년 에드문트도 병든 아버지와 나치군인 이력 때문에 숨어 지내는 형을 대신해 생계비를 벌려고 무덤 파는 일에 뛰어든다. 그러나 그마저 나이를 속인 게 들통나 쫓겨나고 일자리를 찾아 헤맨다. 그러다가 우연히 만난 나치 잔당의 일원 엔닝 선생님에게 의지하게 되고 결국 파국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의 심부름으로 재판소에 간 에드문트는 암거래하려고 레코드를 튼다. 그러자, 히틀러 총통의 생전 연설 육성이 폐허가 된 건물 안에서 공명하며 메아리친다. 마치 온 도시에 나치의 잔해를 토해내듯이... 영화는 소년 에드문트의 비극적인 파멸을 통해 히틀러와 나치의 허상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에드문트와 그의 형을 비롯한 독일 청소년들의 비극은 나치당이 1926년 '히틀러청소년단'을 공식 출범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나치는 위대한 미래를 약속하며 아이들을 깃발, 제복, 밴드 등으로 현혹해 권력과 전쟁의 도구로 삼았다. '광기와 전쟁'이 소년시절의 전부였던 나치 독일 치하의 아이들은 전후에도 그 잔해 속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히틀러청소년단 단원 시절부터 나치즘에 세뇌당한 에드문트는 '약육강식의 자연법칙'을 운운하는 엔닝 선생님의 말에 따라 병든 아버지를 독살한다. 이때 교회에서 들려오는 오르간 연주소리가 잔해 속을 헤매며 방황하는 에드문트의 심장을 울린다. 소년은 그제서야 비로소 하늘을 올려다본다.

1943년 2월 22일 나치 치하의 비밀저항단체 '백장미단' 단원인 뮌헨대 학생 한스 숄은 나치의 반인륜 만행을 폭로하는 전단을 제작 배포하다가 처형당했다. 단두대 앞에서 부르짖은 그의 마지막 외침은 독일 전역에 공명하며 메아리쳤다. “자유여, 영원하라!”

/시희(SIHI) 베이징필름아카데미 영화연출 전공 석사 졸업·영화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