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먼저'라던 문, 왜 비전향장기수 북 안 돌려보내나
▲ 선비(壬)는 죽게(亡) 되었지만 달(月)을 보고 임금의 안위를 바란다(望망). /그림=소헌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 위의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달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그대와 연분홍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꾀꼬리는 중천에 떠 슬피 울고 호랑나비 춤을 춘다. 그리운 고향아.” 1942년에 발표한 노래 '찔레꽃'은 만주에서 활동하는 독립군들이 고향을 그리는 심정을 담았다. 소박하며 은은한 향기를 품은 이 꽃은 우리 정서에 맞는다.

만주사변(1931) 이후 일제의 강압은 극에 달했다. 조선총독부는 '일본과 조선은 한 뿌리이며 한 몸이니, 조선인은 천황을 위해 충성해야 한다'는 황국신민화 정책으로 한민족을 말살하려 했다. 소학교를 국민학교(황국신민)로 바꾸고 조선어 학습을 금지했다. 진주만을 습격하며 태평양전쟁(1941.12)을 일으킨 지 두 달 뒤에는 우리 민족의 '설'을 폐지한다. 일제는 그들의 체제에 맞는 양력설을 새롭고 진취적이라 해서 신정新正이라며, 식민지 한국인이 쇠는 설은 낙후되고 오래되었다(구정舊正)고 업신여겼다.

망향수하(望鄕垂下) 찔레꽃이 고향을 향해 얼굴을 떨구다. 한국이 분포지인 찔레꽃은 모진 겨울을 참고 이겨내는 꽃으로서 한 많은 시절을 지낸 한민족을 닮았다. 가시덩굴 속에서 어쩌면 이렇게도 화사하게 피워낼까? 찔레꽃은 어느 정도 자라면 가지 끝이 땅을 향해 내려오는데 마치 땅속에 간직하고 있는 뿌리(고향)를 향하는 듯하다. 찔레순이나 꽃은 차와 식용으로, 열매는 약용으로 내주며 제 모든 삶을 가족을 위해 헌신한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꽃말을 가진 찔레꽃을 '망향화望鄕花'로 이름 지었다.

 

望망 [바라다 / 그리워하다]

①갑골문에는 눈(目) 아래 사람(人인)을 썼다. 무언가를 바라보는 의미다. ②후에 '人'은 壬(임/정)으로 변한다. '壬'은 북방에 거하는 임금(王변형)이며, 까치발(壬정)을 든 신하이며, 목이 잘린( ) 선비(士사)이기도 하다. ③고전문학에서 달은 임금으로 등장한다. 유배된 신하(臣)가 보름달(月)이 뜨면 까치발(壬)을 하고 임금(壬)을 바라는 글자가 (망)이다. ④ (망)은 점차 '가득 찬 달'을 뜻하는 만월滿月로 굳어지고, 그 자리에 望(망)이 들어섰다. 유배당한 선비는 나라를 걱정하며 달(月)을 보며 기원한다. 결국 선비(士)는 참수( )를 당하게 되는데, 비록 몸은 죽게(亡망) 되었지만, 임금을 바라는(望망) 충정은 변하지 않는다.

 

鄕향 [시골 / 고향]

①鄕(향)은 ( 작을 요)와 잘 차린 밥상을 의미하는 (고소할 급)과 (고을 읍)이 뭉쳐진 글자다. ②鄕(향)은 원래 '잔치를 벌이다'는 뜻이었다. 작은( . ) 시골마을( )로 금의환향한 사람에게 마을 사람들이 밥상( )을 차려주고 잔치를 하는 것이다. ③이와 달리 벼슬한 자가 임금과 마주 앉아(卯) 밥상( 급)을 대하는 글자는 卿(경)이다. 임금이 하사한 잔칫상이다.

 

광복 후에도 40여 년간 '설'은 대접받지 못하고 '구정'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온 민중은 설에 차례를 지내는 전통을 지켜냄으로써 1989년 마침내 제자리를 찾았다. 설날은 한민족의 행동양식이며 세계적으로 위대한 문화유산이다. 다시는 구정이라고 부르지 말자.

태어나서 자란 곳이나 마음속 깊은 곳에 둔 그립고 정든 곳이 고향이다. 그래서 설이 되면 그곳을 향한다. '사람이 먼저다'라고 외친 文 정부에서 비전향장기수를 북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양심수를 집으로 보내지 않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그들의 한恨은 한 떨기 찔레꽃이 되었다.

/전성배 한문학자. 민족언어연구원장. <수필처럼 한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