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쌓인 책상…백년대계 무너진다
▲ 사람을 닮은 은행나무(木)는 긍정의 말(口)을 해주어야 행목(杏木)이 된다. /그림=소헌

이성계가 조선을 세울 때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공신에 오른 이른바 혁명파(派)는 오랜 기간 ‘훈구파’라 칭하는 관료집단을 형성하며 중앙정치를 주도하였다. 이들 정치권력은 왕실과 혼인을 통해 계보를 잇는 등 점차 비대해지며 세습적 지위를 확보했다. 반면에 고려에 대한 충성을 지키며 관직에 참여하지 않은 온건파(派)는 지방에 머물면서 ‘사림파’라는 세력으로 성장했다. 그들은 성리학 사상을 토대로 삼아 의리와 명분과 절개를 강조했다. 조선 중기에 이르러 두 파의 정치_경제적 대립은 사화(士禍/史禍)로 터져 나와 국가의 정세를 기울게 하였다.

단종이 즉위한 해(1431년) 문과에 급제한 김종직은 정몽주와 길재로 이어진 사림파를 계승하였으나, 은거隱居를 고집하지 않고 관직에 진출하였다. 그는 성종의 깊은 신임으로 승진을 거듭하며 중앙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관료학자 김종직은 꼿꼿한 선비이며 시대에 뛰어난 문장가였다. 그는 27세에 사초史草 <조의제문>을 써서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세조를 비판했는데, 이것이 무오사화(1498년)의 발단이 되어 연산군으로부터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한다.

행단지진(杏壇之塵) 공부하는 책상에 먼지가 뽀얗게 앉다. 은행나무(杏) 아래에 마련된 단(壇)에서 공자(69세)는 거문고를 타고 제자들은 책을 읽고 있었다. 그때 행색이 초라한 어부가 지나쳐 갔는데, 공자는 곧바로 따라가 그에게 절을 하며 참된 성(眞性)을 물어 깨우친다. 이로부터 杏壇(행단)은 ‘학문을 닦는 곳’이 되었다. 김종직은 어려서부터 <소학>을 가르쳐야 함을 주장한 교육자로서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중종이 즉위하면서 훈구파가 몰락하고 다시 사림파가 정권을 잡게 되면서 그의 신원이 회복되었으며, 숙종 때에 와서는 영의정에 추증되는 명예를 얻었다._ 그가 남긴 7언시 두 구절을 보자. ‘오랫동안 책을 읽지 않아 행단에 먼지가 쌓였으니, 만고의 근본은 다만 이 한 봄이로다’(韋編久作杏壇塵 萬古淵源只一春).

 

杏 행 [은행나무 / 살구나무]

①本(근본 본)의 옛 글자는 _/_(본)이다. 뿌리가 튼실해야 함을 강조했다. 마치 듬직한 주춧돌(口+口+口)이 연상된다. 은행나무(木)가 50미터까지도 자랄 수 있는 것은 뿌리(口)가 튼튼하기 때문이다. ②암수 구별이 있는 은행나무(木목)는 여러모로 사람과 닮았다. 긍정의 말(口구)을 해주어야 바르게 자란다.

 

壇 단 [단 / 강단 / 제단]

①_(곳집 름)은 바위(回) 틈에 뚜껑(_두)을 덮어 만든 원시적인 창고이며 제단으로도 쓴다. ②제단(_름)을 비추며 떠오르는 아침 해(旦단)가 믿음직스럽다(亶단)는 뜻이다. ③壇(단)은 흙(土)을 믿음직하게(亶단) 쌓은 제단祭壇이고 강단講壇이며 교단敎壇이다.

은행나무는 30년은 되어야 열매가 열려 공손수公孫樹라고 하며, 잎이 오리발을 닮아 압각수鴨脚樹라고도 한다. 수령樹齡 800년이 넘은 만의골 은행나무가 문화적_민속적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28m, 근원둘레 9m로 나무의 형태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학문(杏壇행단)을 뜻하는 만의골 은행나무는 인천으로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지난달 교육감 평가 32점으로 전국 꼴찌를 차지했다(평균 39점). 7대도시 중 수능점수 최하위도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정치판에 물든 교육 수장首長을 ‘깜깜이 선거’로 뽑는 데서부터 문제가 드러난다. 어쨌든 교사들부터 책상 먼지를 털어내고 책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전성배 한문학자. 민족언어연구원장. <수필처럼 한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