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진도 교육민주화동지회장(왼쪽 두번째)을 비롯한 전·현직 전교조 교사들이 인천시교육청 앞에서 '민주화 관련 해직교사와 임용제외 교사 피해 원상회복'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해 9월 3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정부의 법외노조 통보가 위법하다'는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합법노조의 지위를 되찾았다. 박근혜 정부의 '법외노조 통보'로 인해 합법노조 지위를 상실한 지 6년 10개월 만의 일이다.

이 판결로 합법노조 쟁취 투쟁을 벌이던 34명의 해직 조합원들이 전원 복직했다. 해직기간 중 받지 못한 임금도 돌려받았고, 경력도 모두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것으로 전교조를 둘러싼 갈등은 모두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미완의 과제로 남은 전교조 결성 관련 해직교사, 임용 제외 교사 원상회복 문제

전교조 합법화 조치 이후 2달이 지난 지난해 11월 17일 '해직교원 및 임용제외 교원의 지위 원상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강득구(경기 안양만안) 의원을 비롯한 여야 국회의원 113명이 공동으로 참여해 발의한 법안이다.

이 법안은 32년 전인 1989년, '교육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다 부당해고를 당하고 임용에서 제외됐던 1천6백여 명 교사들의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노태우 정권 시절, 전교조를 결성하고 탈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단에서 쫓겨났던 교사들의 고통이 지금도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있는 것이다.

 

노태우 정권의 전교조 교사 집단 해고

박정희, 전두환 정권을 지나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 바람이 거세게 불던 시절, 양심적인 교사들이 오랫동안의 침묵을 깨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교사와 학생들은 전시행정에 동원됐고 상당수 학교는 부정부패와 비리의 온상으로 지탄을 받았다.

이런 상황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었던 교사들은 마침내 1989년 5월 28일, '민족민주 인간화'라는 '참교육'의 기치를 내걸고 '전교조'를 결성했다.

이에 대해 노태우 정권은 상상을 뛰어넘는 극렬한 탄압으로 대응했다. 전교조 결성대회 현장을 원천봉쇄하고 교사 1082명을 연행했다.

당시 청와대와 안기부는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만들어, 수업내용을 핑계 삼아 교사 상당수를 구속하거나 직위해제했고, 전교조 결성을 주도한 교사를 수배했다.

문교부는 '전교조 조합원 전원을 파면하거나 해임 한다'는 강경대책을 발표하고, 전교조 탈퇴를 강요했다. 그리곤 전교조 사수를 위해 끝까지 탈퇴를 거부한 교사 1527명을 정당한 절차도 밟지 않은 채 무단 해고했다.

졸지에 교단에서 쫓겨나 거리로 내몰린 교사들은 이후 5년간 아무런 기약도 없이 잠재적 시국사범 취급을 받으며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해직교사들은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고 문민정부가 출범한 이후인 1994년과 1995년 2차례에 걸쳐 특별채용 형식으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다. 2002년에는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도 받았다.

하지만 전교조가 합법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진행된 정부와의 협상에서 '원상회복'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런 지난한 과정을 통해 해직교사 1484명은 해직 기간 동안의 임금이나 경력, 호봉 등을 인정받지 못한 채 일단 교단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31년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 피해교사가 받았던 불이익과 차별은 여전히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 당시 해직됐던 교사의 2/3 가량은 현직에서 물러났고, 이 중 140여 명은 생활고와 병마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다.

어떤 교사는 해직기간을 경력으로 인정받지 못해 공무원 연금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국민연금 가입연령을 초과해 연금조차 받지 못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연금을 받는 교사의 상당수도 동료들에 비해 매월 수십만 원 가량 적은 연금을 감내해야 하는 이중·삼중의 불이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국사건 관련 임용 제외교사

전교조가 출범할 당시인 1989년에는 교사 임용고시 제도가 없었다. 국공립 사범대학을 졸업하면 교사로 임용돼 5년간 의무적으로 교사로 근무를 하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노태우 정권은 신규교원 임용자들이 전교조에 가입하거나 교육민주화 운동에 뛰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신규교원 보안심사 강화 지침'을 시행했다.

이 지침은 시도교육청이 예비교사들에 대한 신원조회를 실시하고, 면접과정에서 전교조에 대한 우호적인 답변을 하는 사람들을 임용에서 배제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150여 명의 임용 예정교사들은 천직으로 여기던 교단에 단 한 번도 서보지 못한 채 10년여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이들은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다음해인 1999년 '시국사건관련 교원임용제외자 특별채용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에야 교사로 발령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도 임용이 지연된 10년간의 호봉과 연금경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해직교원·임용제외교원 지위 원상회복 추진연대가 발표한 조사결과를 보면, 이들의 피해가 어느 정도 극심한지 확인할 수 있다.

'1983년 국립 사범대학 입학'을 기준으로 임용제외 교사와 일반 교사들을 비교했을 때, 2021년 두 교사가 동시에 퇴직을 할 경우, 연금 수령액이 매달 184만 원 차이가 난다. 호봉과 근속연수의 차이로 인한 인사상 불이익은 거론이 무의미할 정도다.

 

노무현 정부와의 해직교사 원상회복 협상

노무현 대통령 때인 2005년 4월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5조의 3항이 신설되면서 원상회복의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민주화운동관련자가 해직으로 인하여 호봉·보수·승진·경력·연금 등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마련된 것이다. 피해교사들은 '민주화 관련 해직교사 원상회복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교육부와 교섭을 벌여 나갔다.

당초 민주화운동 관련자의 경력과 호봉을 회복해주기로 약속했던 교육부는 시간이 지나면서 입장을 바꿔 교원평가제를 협상카드로 제시했다. “전교조가 교원평가제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취하면 일부 원상회복을 고려하겠다”는 주장이었다.

제도의 악용과 교사능력을 돈으로 환산하려는 정부의 태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해직교사들은 이를 거부했고 끝내 협상은 결렬됐다. 이어 벌어진 법정투쟁에서 보수적인 법원은 교사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로는 그나마 살아있던 불씨마저 사그라지고 말았다.

 

'해직교원 및 임용제외 교원의 지위 원상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 추진

교육민주화를 위해 평생을 바쳐온 해직교사들과 임용제외 교사들은 원상회복 운동을 포기할 수 없었다. 교육민주화동지회(회장·황진도)를 중심으로 '해직교원·임용제외교원 지위 원상회복 추진연대'를 꾸리고 활동을 이어나갔다.

여기에는 교육민주화동지회를 비롯해 ▲참교육 동지회 ▲전교조 해직교사 원상회복추진위원회 ▲시국사건관련 임용제외교사 원상회복추진위원회 ▲시국사건관련 해직교사 원상회복추진위원회 ▲사학민주화운동 관련 해직교사 원상회복추진위원회 ▲교사노동조합연맹 등 7개 단체가 참여했다.

21대 국회가 개원한 이후 교육위원회 소속 민주당 강득구 의원이 '해직교원 및 임용제외 교원의 지위 원상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에 앞장섰다. 여기에는 여야 국회의원 113명이 공동 발의자로 동참했다.

법안은 해직교사들과 임용제외 교원들이 해직 기간과 미임용 기간 중 받지 못했던 임금을 지급하고 호봉과 연금 등의 불이익을 해소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교육위 간사인 민주당 박찬대(인천 연수갑) 의원도 법안 성사를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강 의원은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국가폭력에 의해 상처받은 선생님들에 대한 원상회복은 정부가 해야 할 당연한 조치”라면서 “이번 특별법 발의를 계기로 어두웠던 역사의 터널을 빠져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용인시장 출신인 경기 용인갑 지역구의 정찬민 의원은 국민의힘 소속으로는 유일하게 법안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정 의원은 용인시장 때인 2017년 용인시청 광장에 '소녀상'을 건립했고, 전국 최초로 중·고교 신입생 전원에게 무상으로 교복을 지급하기도 했다.

정 의원은 “과거 정부의 잘못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교사들의 원상을 회복하는 일은 여야나 진영의 문제를 떠나 시대의 상처를 치유하고 상생의 미래를 열어 나가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여야 국회의원들은 먼저 오는 16일 소관 상임위원회인 교육위원회 법안 상정을 목표로 잡고 있다. 이어 공청회, 토론회 등 충분한 공론화 과정과 여야 논의를 거쳐 본회의에서 의결한다는 방침이다.

전국 시·도 교육감 중 대구·경북을 제외한 15개 시·도 교육감도 특별법 제정 촉구결의문을 발표했고, 10개 시·도 의회도 건의안을 채택해 법안 성사 가능성에 힘을 보태고 있다.

특별법 제정을 주도해온 황진도 교육민주화동지회장은 “노태우 정권 당시 전교조를 지키기 위해 온갖 고초를 마다하지 않았던 해직교사들의 희생은 교육민주화의 상징”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해직교사들과 임용제외교사들의 피해를 원상회복하는 것은 당시 교사들의 선택이 정당했다는 역사적 평가를 확인하는 과정”이라면서 “촛불정부는 더 늦기 전에 노무현 정부의 원상회복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찬흥 논설위원 report6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