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용 가능한 한계 허물어 자주적 시간 만들어야”

"남북 4·27 판문점선언 이전으로 회귀
비핵화 틀 얽매이면 관계 개선 어려워

경제적 협력 이상 평화공존 의미 담긴
개성공단 재개 통해 '상호신뢰' 회복을

유엔사 한반도 평화 증진 조치에 '찬물'
비군사 분야 승인은 월권…바로잡아야

지방정부 지리적 특성 활용 사업 가능
분단 견해차 줄일 국제평화센터 신설

평화 지향점 잃지 않고 공감대 넓혀야"
▲ 이재강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20일 한반도 평화 구축을 위해서는 '비핵화 프레임'보다는 '평화 프레임'을 우선시 해야 되며, 그 시작으로 개성공단 재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사진제공=경기도

“비핵화 프레임을 앞서는 것이 평화 프레임이다. 비핵화는 평화의 틀에서 저절로 따라오는 결과물이기 때문에 평화 프레임을 먼저 장착하면 비핵화는 저절로 해결된다.”

이재강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북한 노동당 8차 당대회에서 나온 북의 입장에 대해 남북관계 현주소를 4·27 판문점선언 이전 시기로 돌아갔다고 평가했다. 이는 무력 억제 성격이 강한 '비핵화'가 강조된 탓에 남북이 합의한 사안을 이행하지 않은 결과라고 봤다.

이 부지사는 런던정치경제대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오랫동안 남북관계와 한반도 문제를 연구한 전문가이기도 하다.

“비핵화를 하면 많은 일이 진척될 거라고 하지만 그 틀에 매이게 되면 한 발짝도 못 나갑니다. 평화를 구축하는 게 우선입니다. 북한은 최근 8차 당대회에서 근본적인 문제부터 풀어갈 것을 강조하면서 첨단군사장비 도입,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 등을 요구했어요. 이 밑바탕에는 우리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측면이 강합니다. 즉 남북 간 합의한 사항을 이행해 남북관계를 개선하자는 의지가 반영된 것입니다. 이 때문에 남북정상의 합의가 성실히 이행된다면 봄날 눈 녹듯 풀릴 수 있는 것이 남북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현재 냉각된 남북관계를 풀 수 있는 열쇠이자 평화 프레임을 가져오는 첫걸음이 개성공단 재개라고 봤다. 문재인 정부에서 나온 두 번의 남북공동선언에 대한 남측 정부의 실현 의지를 보여 '상호신뢰'를 회복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개성공단 재개는 이미 4·27 판문점선언, 9·19 평양선언에서 남북 정상이 합의한 사항입니다. 남북 당국이 이를 이행해야 선언의 의미가 있는데 지금 이행하지 않는 건 우리예요. 북측은 이미 인민대회를 통해 두 선언을 모두 비준했어요. 국회서 남북공동선언을 비준하는 일이 급선무죠. 비준되고 합의한 사항을 이행하는 데에만 집중하면 신뢰가 쌓여요. 그러면 한반도 평화도 가능하죠.”

또 개성공단은 남과 북이 상호간 실리를 추구한 평화프로젝트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어서다.

“개성공단은 경제적 실익 이상의 상징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평화의 상징입니다. 상징이란 실질적인 효과를 기반으로 하되 그것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가 해당하는 실재의 장을 넘어서는 또 다른 소통기재로 작동하는 것입니다. 즉 개성공단은 경제적인 협력만이 아니라 남과 북의 평화공존을 노력을 행동으로 옮겼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이 때문에 유엔사 문제도 다시 고민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현재 유엔사가 정전협정의 기본 정신인 '한반도 평화 증진'을 가로막고 있다고 봤다.

이 인식은 개성공단이 보이는 도라산전망대에 현장 집무실을 설치하려고 했지만 유엔사의 반대로 현장 집무실을 설치하지 못한 경험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그는 43일간 개성공단 재개선언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개성공단으로 통하는 입구인 통일대교 앞에서 진행했다.

“군사적인 부분에 한정된 유엔사 권한을 존중한다지만 비군사적인 부분에까지 굳이 유엔사가 개입해서 승인해야 하는가. 그런 부분을 바로 잡아야겠다는 것입니다. 2018년 남북이 합의해서 철로를 조사하기 위해 방북하는 것도 유엔사에서 승인하지 않았죠. 이것은 정말 (유엔사의) 월권이고 오버입니다. 정전협정의 기본 정신은 한반도 평화 증진인데 그에 부합해서 유엔사에서 승인하거나 제재 문제를 고려해야 합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특히 유엔사의 정체성도 고민해야 할 때라고 했다.

“미군이 만든 유엔사는 실체가 불명확합니다. 1975년 11월18일에 열린 제30차 유엔총회에서 남과 북이 동시에 유엔사 문제를 결의안을 올려 해체해야 한다는 결의안이 통과했어요. 1976년에는 헨리 키신저 미국 국무장관이 '유엔사는 없다'라고 선언까지 했죠. 게다가 유엔에는 유엔사에 대한 어떤 규정도 없어요. 유엔의 산하 기구도 아니고 명령을 받은 것도 아니고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누차에 걸쳐서 유엔에서 한국에 있는 유엔사는 유엔의 것이 아니라고 공개적으로 밝혔죠.”

이 때문에 현재 얼어붙은 남북관계에서 '용기'와 '결단'이 가장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은 모두 (남북관계가) 막혀있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용기와 결단만 있다면 남북이 하나가 될 수 있죠. 지금이야말로 남북 지도자들이 만나 머리를 맞대고 자주적으로 남북관계의 길을 열어야 할 골든타임입니다.”

또 허용 가능한 한계를 자꾸 허물어야 한다고 했다.

“허용 가능한 한계를 자꾸 허물어야 해요. 허물어야 할 경계에는 미국의 승인, 대북제재도 포함돼 있어요. 벽을 허무는 작업을 계속해서 자주적으로 남북의 시간을 만드는 게 필요합니다. 그것이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고 한반도 평화를 가져오는 지름길이죠.”

이와 별도로 지방정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중앙정부는 국내외 정세와 정치적 입장 등의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경기도는 남북평화협력 지방정부협의회를 주도했다.

“평화는 '안정과 번영'이에요. 국민의 안정된 일상과 국가의 안전을 담보하고,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하는 번영의 동력인 거죠. 그런데 중앙정부는 제약이 많아요. 지방정부는 국내외 정세와 정치적 입장에서 벗어나죠. 특히 지리적 특성과 자원을 활용해 남북교류협력 사업을 추진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양돈이 활성화된 지역은 양돈으로, 토마토 생산이 많은 곳은 토마토 등으로 교류하면 됩니다.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또 지난해 10월에는 경기국제평화센터도 신설했다. 주변 나라가 바라보는 한반도 평화가 우리와 다른 탓이다. 다른 나라는 한반도 분단의 원인에 대해 '민족 내 갈등'으로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세계 모든 국가가 한반도 평화를 지지하길 희망한다.

“한반도 분단에 대해 다른 나라는 내전으로 분단 후 화해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공산주의와 자유주의의 냉전으로 인한 분단의 장기화라는 시각을 갖고 있죠. 결국 이 격차를 줄여 한반도 평화가 정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국제적 이해와 지지가 동반돼야 한다는 거죠. 큰 틀에서는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지방정부의 평화 외교를 선도하는 역할입니다.”

이러한 노력은 경기도가 접경지역이기 때문이다. 경기도에는 남북교류협력, 한반도 평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경기도는 접경지역이에요. 다들 알다시피 남북관계가 안 좋을수록 그 피해는 도민에게 갑니다. 경기도가 유일하게 남북 간 인도주의적 보건의료 교류를 해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경기도는 한반도 평화의 오솔길을 내는 역할에 충실할 것입니다.”

이 부지사는 남북관계를 풀어갈 때 지향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분단된 지 어느덧 70년이 넘었어요. 한반도 평화는 분단국가에 사는 우리에게 숙명과 같은 거예요. 때로 정체하고 난관이 있지만 절대로 우리의 지향점을 놓쳐선 안 됩니다. 중요한 건 평화와 통일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하는 일이다. 모두가 필요성을 공감해야 길을 열어낼 힘이 생기는 법이다.”

 


 

▲ 이재강 평화부지사가 지난달 10일 파주통일대교 앞에서 개성공단 재개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했다. 1인 시위는 43일간 진행됐다. /인천일보 DB
▲ 이재강 평화부지사가 지난달 10일 파주통일대교 앞에서 개성공단 재개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했다. 1인 시위는 43일간 진행됐다. /인천일보 DB

이재강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한반도 평화 실현과 남북 양측의 개성공단 재개선언 촉구를 위해 지난해 11월10일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에 현장 집무실을 설치하고 통일대교에서 1인 시위를 했다. 43일이 이어졌다.

또 삼보일배도 했다. 삼보일배는 2004년 12월15일 개성공단에서 처음 생산된 제품 '통일냄비'가 세상에 나온 지 16년이 되는 날을 기념함과 동시에 유엔사의 주권 침해성 월권행위 등 부당한 현실을 규탄하고 개성공단 재개선언 촉구의 목소리를 더욱 높이는 데 목적을 뒀다.

이 지사의 행동은 정·관계와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학계 등 각계각층 다양한 분야의 적극적인 호응과 참여가 이어졌다.

국제사회의 공론장을 촉발했다. 미국의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를 비롯한 미국과 유럽의 평화운동가들은 '유엔사는 경기도 부지사 집무실 설치 허용하라'는 청원서에 연대서명을 했다.

특히 유엔사의 정체성과 월권 등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이 부지사는 시위를 끝낸 지난달 23일 “우리의 주권이 유엔사라는 모자를 쓴 미국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비통한 현실도 목도했다. 개성공단 재개라는 남북 정상의 약속 이행이 제자리걸음인 이유를 곱씹어 볼 수 있었다. 분통과 염원의 연속이었다”며 “제 작은 외침과 미력한 몸짓이 남북 양 정상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움직였길 희망한다”고 했다.

/최남춘 기자 baikal@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