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이 갈린 상태로는 시비를 가릴 수 없다
▲ 엇갈린 날개옷을 입은 정의의 여신에게서 옳고(是) 그름을(非) 깨우치자. /그림=소헌

“남의 집 젊은 여인을 체모없이 이것저것 두루 살펴보았던 것이었었다. 몸뻬로부터 이윽고 윗도리를, 얼굴을, 머리를, 그리고 나서 도로 내려와 다시금 그 몸뻬를 이렇게... 그러나 도로 몸뻬로 내려와 잠시 멎었던 눈이 마지막 여인의 신발로 옮는 순간 나는 그만 고소苦笑를 흘리지 아니치 못하였다. 여인은 뜻밖에도 뒷굽 높은 구두-하이힐을 신고 있는 것이었었다. 몸뻬에다 하이힐! 심히 민망스런 부조화가 아닐 수 없었다.” (채만식 <몸뻬 시시비비是是非非> 中.)

12_12군사반란은 1979년 12월12일 보안사령관 전두환과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최규하 대통령의 승인 없이 _정승화 계엄사령관, 정병주 특수전사령관,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등을 체포한 사건이다. _1980년 5월 신군부는 5_17쿠데타를 일으켜 사실상 정권을 장악한다. _이에 항거한 5_18민주화운동을 강경 진압한 전두환은 8월에 육군 대장으로 예편한 후_ 그해 9월 제11대 대통령에 오른다._ 소수점 이하는 일_이_삼_사 등으로 읽어야 한다. 4_19(사일구) 8_15(팔일오)처럼 12_12는 ‘십이십이’가 아니라 ‘십이일이’가 옳다. 12_12를 모든 언론에서는 그르게 읽고 있는데, 지난 12_12사태의 시비是非를 가리는 것만큼 중요하다.

시비시비(是非是非) 글에서 잘되고 못된 것은 내게 달렸고 시비하고 칭찬하는 것은 남에게 있다는 4자속담이다. 내가 쓴 글을 남들이 평가하니 잘못은 자기를 탓하며 겸손하라. 맹자는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지혜의 극치인 시비지심是非之心이라고 하였으며, 순자는 참과 거짓을 분명하게 가려내어 일의 이치를 공평하고 올바르게 하는 것을 시시비비是是非非라고 하였다.

 

是 시 [옳다 / 이것 / ~이다]

①是(시)는 자루가 긴 숟가락을 본떴다. 임금은 해(日)를 상징하는데, 임금의 수라를 들일 때 숟가락으로 떠서 미리 맛을 본다. 이때 음식이 제대로(正정) 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②正(정)이 서 있는 모습이라면, 변형인 疋(발 소)는 천천히 걷는 모습이다. 해(日)가 일정한(正/疋) 주기로 뜨고 일정하게 진다는 데서 올바르다(是)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③是(시)는 ‘이것’이나 ‘무릇’이라는 뜻으로 쓰기도 하며, 문장에서는 ‘~이다’라는 뜻으로 쓴다. ④昰(시)는 是(시)의 본자다. 해(日)가 제때 바르게(正) 떠오르는 이때(昰시)다. 아울러 해(日일)가 정확히(正정) 가운데 떠오르는 夏(여름 하)로도 쓴다.

 

非 비 [아니다 / 그르다 / 허물]

①원래 非(비)는 새의 양 날개를 가리켰는데, 서로 엇갈린 모습에서 잘못되었거나 부정적인 뜻으로 변했다. ②非(비)는 잘못, 아님, 그름 따위의 부정을 강조한다. 같은 뜻을 가진 글자는 不(부/불), 否(부), 弗(불), 未(미) 등이 있다. ③이에 반해서 한 방향을 향하고 있는 새의 깃털인 羽(깃 우)는 서로 ‘돕다’ 또는 긍정의 뜻으로 쓴다. ④보통 ‘날다’라는 글자는 飛(비)로 쓴다.

스무 번째를 맞는 ‘올해의 4자성어’는 아시타비我是他非로 정해졌다.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뜻이다. 굳이 연원을 따지자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에서 찾을 수 있다. 수당을 올리는 법안 말고는 철저히 반목과 대립을 일삼는 국회,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결하지 못하는 사법, 제 패거리들만 보살피는 행정에서 극심한 국론분열을 본다. 일찍이 장자는 “도道가 손상되어 시비다툼이 드러나는 것이며, 양편으로 갈린 상태로는 바로잡을 수 없다”고 했다. 누가 이 말에 시비是非를 걸겠는가?

/전성배 한문학자. 민족언어연구원장. <수필처럼 한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