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 파악 않고 등록문화재 신청…부서 간 칸막이 문제도
“그냥 일제 잔재 아니에요? 오래된 목조 건물일 뿐인데 혜택도 주지 않으면서 근대건축물이라고 하는 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개항장 한복판인 인천 중구 중앙동3가에서 30년 넘게 철물점을 운영한 유모(54)씨는 내후년 가게 문을 닫을 예정이다. “관광객들이 신기해하며 들여다보긴 하는데, 장사도 안 되고 사람들이 떠나는 동네라서 영업을 지속할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씨는 무엇보다도 건물이 탐탁치 않다. 그는 “옆집이랑 지붕보가 연결된 탓에 허물고 새로 짓지도 못해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개항장 '소비'하기만 했다
유씨의 말을 들어보면 실제로 근대건축물에서 지내는 주민의 현실을 단편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다. 유씨가 철물점을 운영하는 건물은 단순히 오래된 게 아니다. '인천근대문화유산' 210개 목록에 포함됐고, 인천시가 지난해 변경 고시한 '개항기 근대건축물 밀집지역 지구단위계획'에서 보전 대상으로 분류하며 등록문화재로 추천한 건축물이다. 하지만 유씨는 “오래된 건물이라 수리해서 겨우 쓴다”며 “지금 시대에 맞지 않는 건물”이라고 잘라 말했다.
국가 등록문화재가 도입된 지 내년이면 20년을 맞지만, 근대건축물 소유주들의 이런 불만은 제도와 현실의 거리를 보여준다. 등록문화재는 국가 사적이나 시 유형문화재 등 지정 제도와 달리 민원인 신청을 기반으로 한다. 세금 감면, 수리 보조금 지원 등의 혜택을 주면서 건축물 활용을 유도하는 취지에서 비롯된 까닭이다. 이 과정에서 근대건축물의 가치를 홍보하면서 소유자와 협의하는 행정 조치도 뒤따라야 한다.
국가 등록문화재가 부속문화재를 포함해 총 892개가 등록되도록 인천 등록문화재는 '공화춘'(제246호) 등 8개에 그친다. 단순히 제도와 현실의 괴리 문제가 아닌 행정의 공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 14~15일 개최된 '제5회 인천 개항장 문화재 야행'처럼 행사성 사업으로 시는 개항장을 '소비'하기만 했을 뿐, 관리는 뒷전으로 미뤘다. 유씨 철물점과 가까운 관동2가 근대건축물에서 세탁소를 운영한 박노익(68)씨는 “건물 관리가 어려우니까 시나 구가 지원해준다고 하면 문화재로 등록할 의향도 있는데, 10여년 전부터는 공무원들도 아무런 얘기가 없다”고 말했다.
박찬훈 시 문화관광국장은 “2018년 이후 국가 등록문화재 6건을 신규로 신청했는데 5건이 부결된 상태”라며 “문화재 지정·등록은 절차가 까다롭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고 말했다.
▲무관심과 탁상행정, 이원화까지
행정적 무관심은 '탁상행정'을 되풀이하는 현실로 이어진다. 지난 2009년 4월 시는 개항기 역사를 담고 있는 근대건축물 6동을 국가 등록문화재로 신청한다고 밝혔다. 당시 언급된 건축물에는 1890년대 건립돼 인천에서 가장 오래됐던 강화군 강화양조장도 있었다.
하지만 강화양조장은 2개월 전인 같은 해 2월 헐린 상태였다. 지난해 변경 고시된 '개항기 근대건축물 밀집지역 지구단위계획'의 보전 대상 건축물 52동에 이미 철거된 10동이 포함된 게 낯선 현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탁상행정뿐 아니라 이원화된 행정도 걸림돌로 꼽힌다. 지난 2015년 '한옥 등 건축자산의 진흥에 관한 법률'시행으로 우수건축자산 제도가 도입됐다. 등록문화재에 더해 근대건축물을 보호하는 제도적 길이 추가로 열린 것이다.
시는 지난해 11월 '건축자산 기초조사 및 진흥 시행계획'을 수립했는데 건축자산 업무는 건축계획과, 등록문화재 업무는 문화유산과로 나뉘어 있다. 소관 정부 부처가 국토교통부, 문화재청으로 다른 현실도 있지만 근대건축물을 다루는 부서 간 칸막이를 넘어서야 하는 과제가 남은 셈이다. 인천시의회 문화복지위원회 소속 이병래(민·남동구5) 의원은 “등록문화재 수만 보더라도 인천지역 근대건축물 관리가 미흡한 실정”이라며 “시 등록문화재나 건축자산 등의 제도가 효과를 내려면 문화유산과와 건축계획과의 적극적인 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순민·김신영·이창욱 기자 smlee@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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