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미는 자뿐 … 기댈 언덕 찾기 어렵다

인프라 갖춘 수원…각지서 유입
차에 태워 버려지는 사례 다수

화성, 장애·질환 있을때만 입소
안산, 일할 의지 있어야만 보호
지자체 노숙인법따라 지원해야
위 사진는 해당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출처=인천일보DB

“화성·안양·용인시 등에서 수원으로…”

노숙인들이 경기도내 지자체의 도움을 못 받고 헤매거나, 강제로 차에 태워 다른 지자체로 버려지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권익을 지켜주는 법, 위기상황에 처할 경우 보호와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지방자치단체 책무가 존재해도 이들에게는 마치 당연한 듯 적용되지 않고 있다.

14일 노숙인 보호단체 등에 따르면 노숙인은 불우한 가정환경, 신체·정신적 질환, 실업·사업실패 등 원인으로 기본적인 생활조건을 갖추지 못한 '사회적 약자'로 정의된다.

여러 국가가 노숙인을 특정 대상으로 분류, 각종 지원책을 마련했다. 국내는 1997년 외환위기(IMF) 이후 거리에 내몰리는 사람이 급증하자, 응급보호 사업이 시작됐다.

2011년에는 국가와 지자체가 노숙인의 권익을 보장하고, 보호와 재활·자활을 지원하는 내용의 법까지 제정됐다. 하지만 9년이 흐른 지금도, 노숙인이 기댈 언덕은 낮았다.

지속해서 노숙인이 유입되는 수원시의 사례를 보면 현실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수원시는 한해 20~30명에 달하는 노숙인을 타 지역으로부터 넘겨받고 있다. 지난해에만 화성 5명, 용인 4명, 의왕 3명, 안산 2명, 안양 2명 등 22명이었다. 이유는 수원에 인프라가 구축돼 있어서다. 현재 도내 31개 시·군 가운데 13개 시·군, 즉 41% 수준만 노숙인 관련 시설 및 예산을 보유하고 있다.

다양한 사례를 체계적으로 다루는 '종합지원센터' 보유 비율은 단 9%(수원·성남·의정부)에 불과하다. 특히 종합·일시보호·자활까지 3개 시설을 둔 지자체는 수원시가 유일했다.

만약 수원과 같은 체계가 없는 지자체에서 살던 주민이 노숙생활로 몰리면, 도움 받을 곳이 없어 수원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어떤 지자체는 노숙인 도움 요청이나 발견 시 자체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수원으로 알아보라”고 안내하기도 한다.

일부 시설을 보유한 지역도 사정은 비슷하다. 재활시설 1개소가 있는 화성시의 경우 '장애·질환으로 자립이 어려운 노숙인'이라는 입소 기준을 둬 거리 노숙인 등 다양한 계층을 아우르지 못한다.

또 '각종 프로그램 참여'. '훈련 동참'과 같은 여타 시설의 입소 기준은 자존감을 잃고 심리적 불안에 시달리는 노숙인에게 넘지 못할 장벽이 되곤 한다.

안산시는 '일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 노숙인' 대상 자활시설이 있는데, 노숙인이 알코올 중독 등 통제가 어렵다고 판단하면 수원으로 보내버리고 있다. 병원연계 등 체계적인 매뉴얼이 없어서다.

체계 자체가 위태하다 보니, 화성시가 고향인 김명성(가명·40대)씨 사례처럼 노숙인이 차에 타서 수원으로 쫓겨나거나 가장 기초적인 상담도 못 받는 등 인권침해가 종종 벌어지곤 한다.

이 같은 현실은 보호단체나 사회복지사 사이에서만 오가던 '불편한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정부·지자체 차원의 지역 이탈 규모, 피해 현황 등 구체적인 실태조사 한 번 없었다.

인천일보가 수원다시서기노숙인종합센터 도움으로 '사회복지시설 정보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2019년 1월~12월 사이 수원에서 상담(최초 1회)을 받은 302명의 노숙인 중 85%(256명)에 달하는 인원이 전국 타 지역에서 유입된 것으로 확인됐다. 15%를 제외한 나머지는 수원 자체의 발생이 아니라는 계산이다. 경기지역(수원 제외)은 무려 89명(29%)이었다.

한편 노숙인에 해당하는 법은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 '긴급복지지원법' 등이 있다. 이들 법에는 노숙인에 대한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며, 지체 없이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지자체 책임이 담겨 있다.

 


 

사기 당해 한순간에 노숙인…잘 곳 찾아간 시설은 “조건안돼”

처음부터 노숙한 사람은 소수
부도·질환 탓 불가피하게 전락

경기 다수 관련시설 가려 받아
수원 등 일부만 모두 수용 지원
노숙인 배려 확대 목소리 커져

위 사진는 해당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출처=인천일보DB

국내 노숙인 지원정책의 가장 큰 결함은 '소외당하는 복지'다. 보호단체의 통계자료를 보면 노숙인 중 20% 이상이 지역주민이었다가 노숙상황에 처한 경우로 알려졌다.

2017년 정신·알코올병원 장기간 입원이 불가능해진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이후, 가족방임에 환자가 노숙인으로 전락하는 등 증가 요소는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지역 노숙인을 가장 먼저 접하고, 긴급보호를 실행할 수 있는 곳은 지자체다. 그러나 경기도와 시·군을 합쳐 32개 지자체 중 노숙인 지원 관련 조례를 제정한 곳은 4곳(12%)에 그친다.

물론 13개 지자체가 시설을 운영하고 있지만, 대부분 건강·직업능력 등 조건 아래 입소시키는 시설이라 모든 노숙인의 '주거'라는 기본 생활조건 충족은 역부족이다.

반면 수원시와 의정부시는 '일시보호시설'을 통해 모든 노숙인에게 우선으로 임시 잠자리를 제공하고, 나아가 응급처치부터 자활프로그램 연계까지 이루는 단계형 구조다.

노숙인 발생 초기, 시설 입소 유도 등 핵심 역할의 전문 상담도 '종합지원센터'가 있는 수원·성남·의정부에 한해 있다. 이곳은 여러 분야에 특화된 민간 상담사가 배치돼있다.

남은 지자체는 잦은 인사이동으로 교체되는 공무원이 대처하면서 전문성을 갖기 어렵고, 시설 내 상담도 입소한 노숙인만 대상으로 실시되기 때문에 한정적이다.

결국 시설 입소, 상담에서 소외된 노숙인은 지원으로부터 대상이 될 기회조차 잃게 된다.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정부와 지자체가 조건 없이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고 나섰으나, 공인인증서·통장·카드·휴대전화 사용이 어려운 노숙인은 신청조차 어려웠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없었다. 도내에서 수원시가 '재난지원금 수령·관리실태 점검'에 나서는 등 극히 일부 지자체만 길거리 노숙인이 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노숙인에 대한 배려는 오래전부터 요구됐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14년 간행물을 통해 “노숙은 경기침체, 주거비 상승, 장기실직 등 복합적인 상황에 누구라도 경험할 수 있는 사회적 위험의 하나로 복지정책의 대상으로 관심과 배려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노숙인과 사회구조의 관계

노숙인 지원은 '왜 돕냐'는 불편한 여론과 마주한다. 하지만 '개인적 문제'가 아닌 경제적인 문제부터 불우한 가정, 불안정한 고용구조, 범죄피해 등 악순환과 동시에 생겨난 또 다른 '사회구조적 문제'라는 것이 수원시 입장이다. 시 지원대상 노숙인 중 대부분이 신체·정신적 질환을 비롯해 사업실패·사기 등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단번에 노숙을 시작한 대상보다 장기간 해결이 이뤄지지 않아 끝끝내 선택한 대상이 많았다. 보호단체에서는 노숙 초기부터 집중적으로 케어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김현우·최인규 기자 kimhw@incheonilbo.com



관련기사
[노숙인 고려장] 3. 경기도 노숙인 대책 '제자리 걸음' 경기도 지자체들의 '노숙인 지원' 대책이 8년째 제자리걸음하고 있다. 대다수 지자체가 '시설 입소'라는 1차원적 방식에 머물면서 오히려 노숙인은 늘었다.지역사회 책임이 불분명한 관련법을 손질해야 한다는 시민사회단체의 지적이 일고 있다. #제자리 지원체계…개선 노력도 없어15일 경기도에 따르면 도의 노숙인 지원정책은 '노숙인 발굴→ 전문 상담→ 보호→ 자립지원→ 정상적 사회복귀'로 이어지는 5단계 실행을 추구한다.그러나 실제 실행이 가능한 지자체는 손에 꼽는다. 현재 경기도 31개 시·군 중 [노숙인 고려장] 4. 지자체 예산 32억 VS 480만원 경기도 지자체들의 노숙인 관련 예산이 기준도, 효과도 없이 사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산은 지자체마다 수백만 원부터 수십억 원까지 천차만별이고, 대부분 시설 운영에만 치중돼있다. #기준도, 용도도 '들쭉날쭉'인천일보가 경기도 지자체 노숙인 예산을 전수 조사한 결과, 예산을 자체적으로 편성(국·도비 포함)한 곳은 수원·가평군·동두천·성남·의정부 등 12곳이다. 총액은 127억6162만원이다.그러나 고루 분포되지 않고 상위권 3개 지자체에 몰린 비중이 62%에 달한다. 수원시가 32억8107만원으로 가장 많다. 이어 가 [노숙인 고려장] 5. 범죄에 취약…경찰 치안 '사각' 경기도내 노숙인을 표적으로 한 각종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노숙인이 범죄에 휘말리면서 각종 보호제도의 수혜 대상 자격이 박탈돼 더욱 곤궁한 처지에 내몰리게 된다. 경기경찰은 노숙인 범죄예방과 관련한 대책은 마련하지 않고 있다. #노숙인 노린 범죄 횡행19일 노숙인 보호단체인 '수원 다시서기'에 따르면 상담 및 지원에 들어간 노숙인 10명 중 3명꼴로 상당수가 범죄피해를 겪었다.7급 공무원 출신 송모(56)씨는 친구의 연대보증을 잘못 섰다가 노숙인이 됐다. 그러던 지난 7월 용기를 내 수원노숙인종합지원센터의 문을 두 [노숙인 고려장] 6. '주거 우선'과 '일자리 연계' 새 삶 찾는다 경기도내 각 지자체가 노숙인의 자립을 지원하고 있지만, 사회에 복귀하는 사례가 손꼽히는 것은 그들을 '사회 구성원'이 아닌 '지원대상'으로만 여기는 풍토와 체계적이지 못한 지원이 자리하고 있다.최근 5년 노숙인이 늘어나는 추세에 '주거 정책'에 방점을 둔 수원시의 성공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인간 생활의 기본인 '주거'를 해소하면서 동시에 자립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수원시에 앞서 해외에서도 탈(脫) 노숙에 효과를 거둔 정책이다.이모(55)씨는 2년 전까지 수원역 노숙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