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터 도움엔 한계 … 성범죄 위험
손 내밀 곳 없던 32세 수원 여성
남성노숙인에 감금·살해 당해
관심 지적에 여가·복지부 '침묵'
“우리 사회가 그분을 감싸 안았다면, 쓸쓸히 죽음을 맞을 일은 없었을 겁니다.”
수원시에서 노숙인을 돕는 활동가들은 2019년 9월을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한 여성 노숙인이 세상을 떠난 시기다. 그는 사회적 복지가 절실한 계층이었지만, 길거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끝내 비극을 맞았다.
사연은 이렇다. 노숙인 이지연(32·가명)씨는 2016년 12월 수원에서 경찰에 발견, 처음으로 노숙인 지원제도와 마주쳤다. 남편의 외도와 무관심으로 이혼했으며 부모와도 사이가 안 좋아 남남처럼 지내던 그였다.
2017년 1월부터 수원다시서기노숙인종합지원센터가 본격적인 도움에 나섰을 때, 이씨는 이미 신체·정신적 질환이 심각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여성은 성범죄 위험 노출도 있었다. 체계적인 보호가 필요한 대상이다.
다만, 센터의 도움에는 한계가 있었다. 여성을 따로 구분한 노숙인 시설은 경기도에 없기 때문이다. 당장 전담 활동가 비율만 따져도 남성보다 여성이 부족하기에 상시적인 관리가 어려웠다.
여성노숙인쉼터 등이 있는 서울로 옮기자는 활동가 제안마저 이씨가 거절했다. 이는 정신적인 질환이 있는 상황에서 타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에 대한 심적 부담감 등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센터는 이후 수십 차례에 걸쳐 이씨에게 임시 주거는 물론 병원 의료지원까지 했다. 정신건강복지센터와 협력해 치료 방안도 모색했다. 약 8개월이나 지속한 이 과정을 이씨는 이겨내지 못하고 실패를 거듭했다.
이씨가 센터의 손에서 벗어날 때마다 향한 곳은 결국 차디찬 길거리, 수원역 일대였다. 지난해 9월 이씨는 자신에게 다가온 3명의 남성 노숙인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후 이들로부터 지인 A씨를 소개받아 A씨 집에서 같이 지내게 됐다.
하지만 합숙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이씨는 합숙 직후부터 감금된 채 A씨와 노숙인 3명으로부터 주먹과 발 등으로 짓밟혔다. 이씨는 약 일주일 동안 갈비뼈가 부서지고, 폐 등 장기가 파열될 정도의 무자비한 폭행을 당했다. 그는 결국 숨을 거뒀다. 고작 32살이었다.
그들은 경찰 등에서 숨진 이씨가 ▲합숙비를 내지 않았다는 점 ▲강제추행으로 경찰에 신고한 점 등의 이유를 들면서 변명을 이어갔다. 법원은 이씨의 비참한 죽음을 어느 무엇도 달랠 수 없다는 취지로 폭행범들에게 최고 10년형을 선고했다.
현재 '여성'을 위한 노숙인 시설·정책은 경기도에 전혀 없고, 추후 마련될 계획도 없다. 지자체들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댄다. 서울시에서만 한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지만, 여성의 권리를 지켜준다는 여성가족부도, 노숙인을 지켜준다는 보건복지부도 묵묵부답이다.
센터 관계자는 “경기도에서 여성 노숙인이 발생하면 대처할 방법이 많이 없다. 사실상 서울 쪽에 넘기는 게 가장 나은 실상”이라며 “여성 노숙인은 숨어 지내는 경향이 더욱 강해 보다 체계적으로 도움을 줘야 한다. 이씨의 경우도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도와드릴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고 설명했다.
/김현우·최인규 기자 kimhw@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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