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가는 천일염이라더니 이 풍경 머금어서였나

한양 말들의 고향 말부흥서 승마 후
망둥이·백로떼 보며 선착장 거닐면
환상적 공예품 품은 '유리섬미술관'
도자기 깔아 소금 얻는 동주염전도
길 끝엔 피·눈물 얼룩진 섬 '선감도'

 

한가로운 말부흥 선착장 모습.
한가로운 말부흥 선착장 모습.

섬과 바다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대부도의 섬들이 그렇다. 저마다 사연을 품고 있어 섬들이 간직한 스토리가 궁금하기도 하다. 11개의 대부도 섬 중에는 슬픔을 간직한 섬 하나가 있다. 구름과 학을 벗 삼아 지내던 신선이 맑은 정한수에 목욕을 하고 갔다는 ‘선감도’. 아름다웠던 섬 선감도는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어 피와 눈물로 얼룩진 ‘비극의 섬’으로 불린다. 말부흥 마을부터 선감도로 이어지는 경기만 소금길 8번째 여정은 다크 투어리즘이다.
 

경기만 소금길 8구간 

○대부해솔길 4코스 종점(유리섬)-동주염전-대선방조제-선감나루터-선감역사박물관-경기창작센터
○거리 : 11.4km
○난이도 : 하
 

유리섬 미술관 전시장 모습.
유리섬 미술관 전시장 모습.

#말을 키워 서울로 보내던 곳

경기만 소금길 8구간의 시작점은 대부해솔길 4코스의 종착지이자 유리섬이 있는 말부흥 마을이다. 말부흥 선착장을 기점으로 여정을 시작한다. 서해 대부도 남쪽 끝자락에 자리한 말부흥 마을은 말을 길러 한양으로 보냈다 해 붙여진 이름이다. 이름 탓인지 마을 초입에는 대규모 승마장이 들어서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마을 초입부터 선착장까지 이어진 길을 따라 걷다보면 만개한 해바라기가 9월 가을의 문턱을 반긴다. 1km쯤 걸으면 갯벌이 바다보다 먼저 보이는 말부흥 선착장에 도착한다. 갯벌 위를 노니는 망둥이, 부끄럼 많은 농게, 진흙밭 위를 비행하는 백로와 갈매기떼가 한적한 어촌마을을 지키고 있다. 인적 드문 이 마을이 한 때는 연간 300t이상 바지락이 나던 대부도 최고의 황금어장이었다.

내륙으로 발을 돌리면 펜션 단지가 밀집한 가운데 운치 있는 미술관 하나가 등장한다. 유리섬 미술관은 경기만 소금길 여행에서 한 번쯤 방문해 봐도 좋을 곳이다. 유리섬 미술관에는 각양각색의 유리 공예품이 환상적인 볼거리를 제공한다. 현대미술, 조각 등 다양한 전시회도 진행된다. 
 

한창 소금을 수확하던 동주염전의 모습. /사진제공=경기만에코뮤지엄

#깸파리 소금 생산하는 동주염전

대부도는 수도권 제일의 관광 명소답게 펜션이 밀집돼 있다. 8구간에서는 다양한 건축양식을 가진 펜션을 구경하는 것이 색다른 볼거리로 다가온다. 이국적인 정취가 인상적이다.

경기만 소금길은 대부해솔길과 쌍둥이처럼 닮아있다. 지금 걷는 8구간 역시 대부해솔길 5코스와 6코스가 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대부해솔길 개발자였던 최경호 전 안산시청 관광과장은 7코스의 대부해솔길 중 5코스를 꼭 가봐야 할 트레킹 코스로 꼽기도 했다.

대부해솔길 표식을 따라가면 수도권 유일의 재래식 염전인 동주염전이 있는 곳까지 닿는다. 동주염전은 1953년 백범기 씨에 의해 만들어진 118만8000㎡ 규모의 천일염전이다. 국내 다른 염전이 고무장판을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동주염전은 옹기로 만든 도자기를 갯벌에 깔아 친환경적으로 소금을 얻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소금을 깸파리(옹기조각)소금이라 하는데 깸파리 소금은 미네랄이 높고 염도가 낮아 최고의 국산 천일염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화호 간척사업과 1997년 소금의 수입자유화 조치 등으로 안산해역의 40여 개에 달하던 많은 염전들이 문을 닫았지만, 동주염전은 수도권에서 유일한 재래식 소금 생산지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해방 후 다시 문을 연 선감학원./사진제공=로드프레스
해방 후 다시 문을 연 선감학원./사진제공=로드프레스

#선감학원 흔적 남아 있는 경기창작센터

대부해솔길 캠핑장을 거쳐 대선방조제길을 따라 걸으면 선감도가 나온다. 선감도에는 아픈 역사를 간직한 선감학원이 위치한다. 선감학원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독립의지를 말살시키고 황국신민화 교육은 물론 태평양 전쟁을 위한 인적자원을 충원하기 위해 1942년에 세워진 부랑아 감화시설이다. 일본은 부랑아들을 보호 육성해 사회에 복귀시키겠다는 목적을 내세워 어린 소년들을 강제로 가둬 들였지만 시설 내에서는 인권 유린 행위가 만연했다. 해방 이후에도 이 시설은 계속 존치됐는데 한국전쟁 발발 후 미군 주둔지로 41개 동의 건물이 신축됐다. 미군이 철수한 이후 이 곳은 더 큰 규모의 부랑아 수용시설로 되돌아왔다. 1960년부터 1970년대까지 정부에 의해 강도 높게 진행된 부랑아 단속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소년들을 대거 부랑아로 치부하고 선감학원으로 보냈다. 선감학원에 수용된 소년들은 혹독한 강제노동에 동원됐고 그 과정에서 많은 소년들이 생명을 잃었다.
 

선감역사박물관의 외부 전경.
선감역사박물관의 외부 전경.

인권 사각지대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발버둥 쳤던 소년들은 구타와 영양실조로 죽어갔고 시신들은 봉분도 묘비도 없는 땅에 묻혔다. 1982년까지 모두 5759명이 입소했지만 현재 47명이 생존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생존자들은 ‘선감학원 생존자회’를 만들어 선감학원 희생자들의 묘지를 관리하고, 국가폭력으로부터 아이들이 어떻게 희생되었는지 생생하게 증언하며 선감학원의 진상규명과 피해 지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경기창작센터가 있는 곳이 옛 선감학원이 있던 자리다. 선감도에는 아직 진실의 전모들이 밝혀지지 않은 채 원생들이 생활하던 숙소와 식당, 축사 등이 옛 모습 그대로가 남아있다.
 

/영상제공=경기도 공식 유튜브.

 


 

[길위에서 만난 사람] 정진각 안산지역사연구소 소장

"선감도에 묻힌 수백구의 영혼 슬프지 않게 명명백백 조사 이뤄져야"

정진각 안산지역사연구소장이 선감학원 대책 마련을 위한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진상규명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국가 폭력으로 선감학원에서 희생된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국가는 이들에게 사죄해야 합니다.”

정진각 안산지역사회연구소장은 선감학원의 비극을 기록하고 있다. 이유도 없이 아무것도 모른채 선감학원으로 끌려와 혹독한 학대와 인권유린을 당해야 했던 피해자와 희생자들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선감학원의 비극은 70년이 지났어도 현재진행형이다. 그 어떤 보상도 사과도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이들에겐 씻지 못할 상처가 남아있습니다. 남아있는 생존자는 47명뿐입니다. 시간이 없어요. 생존자들이 사라져버리기 전에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겨야 합니다.”

지난 8월 15일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선감학원의 진실’ 편을 통해 선감학원의 악행이 다시 한번 세상에 알려졌다. 생존자들의 생생한 증언이 터져 나오면서 선감학원 진상규명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해당 방송에는 생존자의 진술 뿐만 아니라 당시 선감학원에 재직했던 교사들의 반박 인터뷰 영상도 담겼다. 인터뷰를 통해 선감학원 관계자들은 생존자들의 증언이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선감학원 교사들의 말은 사실입니다. 그들은 직접 가혹행위에 가담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선감학원 내 원생들을 통솔하기 위해선 선감학원의 교사들보다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했어요. 수용생들 중 한 명을 지목해 가혹행위를 하도록 지시했을 겁니다. 지시를 받은 수용생 대장은 자신이 살기 위해 보다 잔인하게 원생들을 괴롭혔을테죠. 선감학원 관계자들 손엔 피 한방울, 먼지 한 톨 묻히지 않고 원생들을 통제할 수 있었기에 그리 당당하게 인터뷰했을거라 봅니다.”

그러나 정 소장은 선감학원 수용생들을 고통받게 한 건 선감학원의 교사도, 수용생 대장도 아닌 국가라고 주장한다.

“지금도 수면제가 없으면 밤잠조차 이룰 수 없는 생존자들에게 그 어떤 보상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선감학원의 피해자가 아닌 국가 폭력에 희생당한 피해자들입니다.”

지난 5월 19일 과거사법 개정안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하면서 선감학원을 비롯한 형제복지원 등 미해결로 남은 과거사가 재조명됐다. 

“이제 시작입니다. 철저하게 지난 과거를 규명하고 이들이 더 이상 괴롭지 않도록, 선감도에 묻혀진 수백 구의 영혼들이 슬프지 않도록 명명백백히 조사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인천일보·경기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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