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어를 가져다주시고 풍랑을 잠재우소서

 

▲ 옹진군 덕적군도 '선단여'

 

헤어진 남매가 사랑에 빠진 선단여
망구할매, 황금어장 만들었단 전설

전북 칠산바다 지키는 개양할미
수성당 백제 유물…교류의 증거

선문대할망 한라산 걸터앉아 빨래

마고 한국·중국 설화 나오는 여신
인천 차이나타운 '의선당' 신전에


인천 굴업도에서 여객선을 타고 백아도 방향으로 10여분을 가면 세 개의 커다란 바위와 마주한다. 배가 물살을 헤쳐갈수록 3개에서 2개로, 1개로 겹쳐 보이는 암초는 반대 편으로 돌아갈 즈음 다시 3개로 원래 모습을 되찾는다. 덕적군도 섬들로 둘러싸인 바다 위로 우뚝 솟은 돌기둥, 바로 '선단여'다.

선단여는 슬픈 전설을 품고 있다.

옛날 노부부가 어린 남매와 백아도에서 살았는데, 어느날 마귀할멈이 여동생을 데리고 가버렸다고 한다.

노부부가 세상을 떠나고, 어른이 된 오빠는 낚시를 하다가 풍랑을 만나 작은 섬에 닿았다. 여기서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둘은 어릴 적 헤어진 남매였다.

옥황상제가 이들의 관계를 개탄하며 벼락을 내렸고, 오누이와 마귀할멈은 바위가 됐다.

선녀들이 애달프게 여겨 눈물을 흘린 붉은 바위라서 선단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독특한 모양만큼이나 선단여를 둘러싼 이야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황해 곳곳에서 전해져오는 거인 설화의 하나이자, 새우의 신으로 떠받들여지는 망구할매 전설이다.

 

# 덕적군도 황금어장 만든 '망구할매'

▲ 옹진군 덕적군도 '할미염'
▲ 옹진군 덕적군도 '할미염'

"예전 화장실에서 양쪽 발밑에 두는 돌을 봇돌이라고 했어요. 망구할매가 선단여를 봇돌 삼아 오줌을 누면서 덕적군도 일대에 물이 마르지 않고 새우가 끊임없이 잡히는 황금어장이 됐다고 해요."

덕적군도의 섬 중 하나인 문갑도 출신 이세기 시인(문학박사)은 망구할매 설화를 채록해왔다.

그가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들었던, 망구할매가 인천 앞바다 풍도에서 헤엄 치고 놀다가 새우를 옷에 가득 채워 돌아왔다는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선단여에 얽힌 오누이 설화가 고립된 섬에서 근친혼을 금기시하는 전통이 변주됐다면, 망구할매 전설은 새우 황금어장으로 유명했던 덕적군도의 풍요를 상징한다.

덕적군도에는 망구할매와 관련된 지명이 지금도 남아 있다. 문갑도에는 망구할매가 마실을 다녔다는 할미염이 있다. '염'은 섬보다 작은 단위로, 우물이 없어 마을이 형성되지 않은 곳을 일컫는다. 그보다 작은 바닷가 바위가 선단여의 '여'다. 문갑도와 자월도에 흩어진 다섯 개의 바위는 망구할매가 갖고 놀았던 공깃돌로 전해진다.

망구할매 설화는 덕적군도의 생성과도 연결된다. 망구할매가 치마폭에 흙을 가득 담고 산을 쌓아올리다가 무너지면서 섬으로 흩어졌다거나, 망구할매가 주먹으로 선갑산을 내리쳐서 사방으로 퍼진 조각들이 덕적군도를 이뤘다는 얘기다.

 

 

# '물의 성인' 개양할미와 선문대할망

▲ 전북 부안 수성당 '개양할미 당산제'
▲ 전북 부안 수성당 '개양할미 당산제'
▲ 제주도 한라산
▲ 제주도 한라산 "선문대할망"

망구할매처럼 거인과 여성, 그리고 할머니로 형상화한 '바다의 신'은 황해 곳곳에서 등장한다. 전라북도 부안군 격포해수욕장 옆에는 바닷가 절벽 위에 '수성당'이라는 기와집과 해식 동굴이 있다.

이 동굴은 '당굴'이라고도 한다. 변산반도의 해신으로, 칠산바다를 지키는 개양할미의 거처로 알려진 곳이다. 변산반도와 위도, 영광, 고창 앞바다를 아우르는 칠산바다는 연평도와 함께 조기 어장으로 유명했다.
수성당에선 개양할미에게 제사를 지내왔다.

동굴에서 나와 바다를 연 개양할미는 풍랑을 다루고, 바다 깊이를 재면서 어부들의 생명을 보호해줬다고 한다. 그래서 개양할미는 '물의 성인'으로 모셔지며 수성할머니 또는 수성할미로도 불린다. 개양할미는 딸을 여덟 명 낳아서 칠산바다 주변에 보내고, 막내딸만 데리고 살면서 칠산바다를 총괄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국립전주박물관이 펴낸 <부안 죽막동 제사유적>(1994)에는 "그녀는 신비한 능력을 갖춘 존재로 키가 커서 굽나막신을 신고 칠산바다를 걸어다니면서 깊은 곳은 메우고 물결이 거센 곳은 잠재우며 다녔다고 한다"고 언급돼 있다.

수성당 주변, 대나무가 숲을 이뤄 죽막동으로 일컬어진 지역에선 지난 1992년 백제시대 해양 제사유물도 나왔다. 죽막동은 5세기 후반 이후 백제 도읍이었던 웅진과 사비로 통하는 해상 요충지였다. 중국·일본과 관련성이 있는 유물이 출토된, 환황해권 해상 교류의 흔적이기도 하다.

망구할매가 치마폭에 흙을 담아 산을 쌓아올렸던 것처럼 개양할미가 치마로 흙과 돌을 나르며 '계란여'를 메웠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할미해신'의 이런 전설은 제주도에도 존재한다. 선문대할망이 치마에 담아 나르던 흙더미가 떨어져 한라산 오름이 됐다는 것이다. 제주도에는 설문대할망으로도 불린 선문대할망이 한라산에 걸터앉아 제주 앞바다 섬들에 발을 딛고 빨래를 했다는 설화도 남아 있다.

송화섭 전주대 교수는 "조선 후기에 선문대할망은 한라산에 서 있거나 앉아서 항해자들의 안전을 돕는 할미해신으로 자리잡고 있었다"며 이들 할미해신을 동아시아 해양실크로드 관점에서 접근했다.

송 교수는 "제주도의 남방항로는 중국 동중국해 사단항로와 연결돼 문물이 전래하는 해상루트였다"며 "중국 절강성 주산군도 보타산의 할미신과 천태산의 마고 신선이 결합해 거구 할미해신이 출현했고, 사단항로를 따라 변산반도 개양할미, 제주도 선문대할망으로 자리잡았다"고 분석했다.

 

 

 

# 인천에 깃든, 동아시아 해신 '마조'
 

▲ 인천 차이나타운 '마조향로'<br>
▲ 인천 차이나타운 '마조향로'

 

▲ 인천 차이나타운 '의선당 마조신당'
▲ 인천 차이나타운 '의선당 마조신당'

그렇다면 '마고'는 누구인가. 마고는 예로부터 한국과 중국 설화에 모두 나오는 여신이다. 거인의 할머니로 전해지는 한국과 달리, 중국의 마고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다. 이른바 '마고선녀'다. 중국의 장수 여신으로 전해져오는데, 조선 중기 문인들의 문학 작품에는 마고가 해신의 이미지로도 그려진다.

조선 후기 소설인 <숙향전>에는 "용왕이 말하기를, 천태산은 인간세상에서 멀지 않으나 마고선녀는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라는 대목이 나오기도 한다.

중국뿐 아니라 동아시아 일대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해신으로는 '마조'가 꼽힌다. 마고와 이름이 비슷하나 연원은 다르다. 마조는 중국 송나라 때 '임묵'이라는 실존 인물에서 출발해 천년에 걸쳐 바다를 수호하는 여신으로 자리잡았다. 마조는 대만의 대표적 민간 신앙이다. 마카오라는 지명도 마조의 사당인 '마조각'의 발음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화교를 따라 각지로 전파된 마조의 흔적을 한반도에선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국내에 몇 안 되는 마조 문물 가운데 대표적인 게 인천 차이나타운에 남았다. 100년 넘은 역사를 지닌 차이나타운의 사당인 '의선당' 신전에는 마조가 모셔져 있다. 인천화교협회 건물 안쪽 옛 화상상회 회의청에는 마조를 지칭하는 '천후성모(天后聖母)' 향로도 놓여 있다.

인천시립박물관이 2008년 펴낸 <개항장 화교의 신앙과 민속>에는 "연장자 화교들은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인 지금의 파라다이스호텔(올림포스호텔)이 위치한 지점에 '마조묘'가 있었는데 한국전쟁 시기에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는 증언도 전해진다.

 


 

선갑도 '망구할매' 설화
 

▲ 옹진군 '선갑도'
▲ 옹진군 '선갑도'

신선의 세계 '선갑도'치마에 흙 담아 쌓은 산화내며 내리쳐 만들다.

인천 옹진군 선갑도의 저녁 구름을 의미하는 선접모운(仙接暮雲)은 덕적군도의 절경을 노래한 '덕적팔경' 중 하나다.

선단여와 함께 망구할매 전설이 깃든 선갑도는 예로부터 신선의 세계로 일컬어지며 '선접'으로도 불렸다.
망구할매가 치마에 흙을 담아 쌓아올린 산도, 화를 내며 내리친 곳도 모두 선갑도다. 'C'자 형태로 가운데가 움푹 패인 선갑도 형태에서 비롯된 설화다.

화산재가 쌓인 응회암과 주상절리로 이뤄진 선갑도는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남방계와 북방계 식물이 공존한다고 알려졌고, 보호 대상 해양생물인 거머리말과 새우말 서식도 확인됐다.

국내에서 가장 큰 무인도로 알려진 선갑도는 원래 승봉도 주민 공동 소유였다. 그러나 1990년대 접어들며 수난사가 시작됐다. 선갑도를 매입한 정부는 핵폐기물 처리장을 만들려고 했고, 2007년 민간 소유로 넘어간 뒤로는 채석단지 개발 논란이 되풀이됐다.

양식장 조성으로 최근 제방이 추가로 쌓이고 주상절리 훼손, 무단 매립까지 벌어진다는 소식이 들린다. 덕적군도의 영산인 선갑도의 위태로운 신세는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