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발병한 코로나19가 순식간에 대한민국 전역을 뒤덮었다. 국내에서 확진자와 사망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수많은 국가들이 앞다퉈 한국에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19가 확산 중인 중국을 걱정했던 한국이 되레 전 세계에 '코호트 격리(통째로 봉쇄)'를 당한 중국과 같은 처지에 놓인 것이다. 지금도 확진자는 하루 수백명씩 쏟아지고 있다. 단 한 번의 실수가 '집단 감염'이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중차대한 시점이다.

그런데 요 며칠 취재 과정에서 아직까지 지역 방역 체계에 '빈틈'이 있음을 확인했다. 지난달 15일 '코로나19 오염지역'으로 지정된 홍콩에서 국내로 입국한 뒤 코로나19 의심 증상을 보였던 40대 시민이 감염 여부를 확인하고자 미추홀구보건소를 방문했다가 진단검사를 거부당한 게 대표적 사례다.

보건소 측은 황당하게도 지자체용 코로나19 대응 지침의 검사 대상에 홍콩 방문 이력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며 시민을 돌려보냈다. 일주일 뒤 그가 다시 보건소에 문의하자 보건소 측은 홍콩도 해외 방문 이력에 포함되는 내용으로 지침이 개정됐으니 검사를 받을 수 있다며 입장을 바꿨다. 다행히 음성 판정이 나왔다. 이 시민이 코로나19 감염자였다면 일주일 사이 지역사회에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등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질 뻔했다.

일선 보건소의 안일한 대응은 또 있었다. 인천 한 요양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던 중국인 간병인이 지난달 25일 코로나19 의심 증상을 나타내 진단검사를 받았다. 그러나 검체를 넘겨받은 민간 전문검사기관에 검사가 밀려 있어 간병인의 검사 결과가 3~4일 뒤에야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자칫 간병인이 감염자로 판정됐을 경우 요양병원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할 수 있었는데도 계양보건소측은 병원 측으로부터 이런 내용을 통보받고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인천일보가 취재에 들어가자 그제야 전문검사기관에 연락해 검사를 앞당겨 달라고 요청했고, 검사 결과는 하루 만에 음성으로 나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국내 의료진과 방역 담당 공무원들은 최일선에서 감염병과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들의 땀방울이 바이러스 확산을 억제하고 환자의 빠른 회복을 돕고 있다. 책상에 앉아서 지침서 하나만 들고 코로나19에 안일하게 대처하는 '탁상행정'이 수많은 사람들의 고군분투에 찬물을 끼얹지나 않을까 걱정이 든다. 부디 정신 바짝 차리고 의심자 한 명 한 명이 집단 감염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갖고 감염병에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처하길 바란다.

박범준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