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들의 보금자리, 그때나 지금이나 안전하지 않다

대청도 선진항은 일제강점기 '포경회사' 있던 곳
고래 잡히는 11월~이듬해 6월엔 일본상인 북적

국내 관찰되는 35종 중 10종은 '해양보호생물'
수천만원 넘는 밍크고래는 '로또'라 불리우며
가장 흔한 '상괭이' 인천 앞바다서 볼 수 있으나
최근 불법혼획·해양오염 시달려 개체 수 급감


황해는 고래의 바다였다. 대청도는 일제강점기 흑산도, 해양도와 함께 황해 포경의 전초기지였다.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백령도행 여객선 기항지인 대청도의 선진항은 포경회사 건물이 있던 곳이다.


면사무소가 위치한 선진항은 일제강점기 고래잡이가 이뤄지는 11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일본 상인들로 북적거렸다. 고래잡이가 사라져 지금은 흔적도 찾아보기 어렵지만, 선진항은 여전히 국가어항으로 대청도뿐 아니라 인천 앞바다를 대표하는 어항이다.


●대청도에 자리잡은 일제 포경기지

2013년 학술지 <도서문화>에 발표된 '한말~일제하 동해의 포경업과 한반도 포경기지 변천사'에 의하면 1900년대 초부터 일제는 주식회사를 만들어 한반도 근해에서 고래를 잡았다. 처음에는 동해에서 고래잡이를 하다가 남획으로 동해의 대형 수염고래류가 급감하기 시작한 1910년 무렵부터 남해와 황해로 영역을 확장한다.

오사카에 본점을 둔 동양포경주식회사는 1910년 거제도에 포경지 허가를 받아 한반도 근해 포경을 독점한다. 1913년 울산과 통천(장전) 근해, 1914년 함경도 북청(신포), 1916년 대흑산도, 1918년 대청도, 1926년 제주도 등지에 사업소를 설치하고 포경을 확대해 나갔다.

수산경제학자 고 박구병 교수가 저술한 <한반도연해포경사>를 보면 대흑산도와 대청도 근해에서 1926년부터 1944년까지 포획된 대형 수염고래류 중 참고래 수는 각각 827마리와 438마리였다. 중국의 해양도까지 포함한 황해 전역에서 포획된 참고래는 총 3173마리, 대형 고래류인 대왕고래 7마리, 혹등고래 28마리였다. 당시 황해도에는 포경선이 50척이 넘었다. 현재 황해에서 참고래와 대왕고래는 거의 멸종 상태이다.

'바다의 로또 밍크고래, 소청도서 그물에 걸려' 대형 고래가 그물에 걸렸다는 기사는 요즘도 심심찮게 대서특필된다. 지난 2017년 6월에는 인천 소청도 앞바다에서 7m 길이의 밍크고래가 그물에 걸려 죽은 채 발견되기도 했다. 이 고래는 경매에서 8900만원에 낙찰된 것으로 알려졌다.

1년에 70마리 이상의 밍크고래가 혼획되고, 경매를 통해 시중에 유통된다. 수천만원을 호가해서 '바다의 로또'로 불린다. 혼획(混獲)은 어획 대상종에 섞여서 다른 종류의 물고기가 함께 잡히는 것으로, 국내에서 해마다 1500~2000마리 정도의 고래류가 혼획되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혼획된 고래는 모두 1401마리다.

바다에 그물이 너무 많고, 고래고기 유통이 허용되고 있어서 고래를 의도적으로 혼획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뱃사람들은 말한다. 고래가 그물에 걸리면 해양경찰은 불법 포획 여부를 조사한 후 '고래유통증명서'를 발급한다.

 

▲ 현재 황해에서 가장 흔한 고래류인 상괭이./사진제공=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
▲ 현재 황해에서 가장 흔한 고래류인 상괭이./사진제공=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

 

●혼획 시달리는 황해 대표 고래 '상괭이'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에 따르면 현재 국내 연안에서 관찰되는 고래는 35종이다. 그중 10종이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돼 있다.

지금 황해에서 가장 흔한 고래류는 상괭이다. 상괭이는 아시아 연안에만 분포하는 소형 고래이다. 섭씨 5도에서 28도까지 폭넓은 수온에서 서식한다. 비교적 수심이 얕은 연안을 헤엄치는 상괭이는 등지느러미가 없고 다 자란 성체의 몸은 대체로 회갈색이며 2m 정도이다.

인천 앞바다 여객선에서도 상괭이를 종종 볼 수 있다. 보통 1~3마리로 모습을 드러낸다. 선박 가까이로 접근하지 않고, 금세 바닷속으로 사라져 자세하게 관찰하기는 쉽지 않다.

상괭이의 먹잇감은 어류와 오징어, 새우를 비롯한 갑각류 등으로 다양하다. 상괭이의 위 속에서 전어·갈치 등 어류뿐 아니라 자주새우·꽃새우와 같은 갑각류를 포함해 총 10과 14종의 생물이 발견됐다는 보고도 있다.

상괭이는 한강을 거슬러 올라오기도 한다. 지난 2015년에는 서울 선유도공원·성산대교 인근에서 상괭이 사체가 잇따라 발견됐다. 환경단체는 상괭이가 밀물 때 한강으로 넘어왔다가 하구의 신곡수중보에 걸려 바다로 돌아가지 못했다며 수중보 철거를 촉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안강망에 의한 심각한 혼획이 이뤄지면서 상괭이 개체수가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다. 상괭이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한 취약종(VU)이자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서 '부속서Ⅰ'에 해당하는 종이다. 부속서Ⅰ은 멸종위기 동식물의 상업 목적 거래를 금지한다. 한국은 1993년 이 협약에 가입했다. 해양수산부도 2016년 상괭이를 해양보호생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한국의 수산물 수출 대상국은 일본·중국·미국 순이다. 미국은 1972년 해양포유류보호법(MMPA)를 제정하고, 2017년 수산물 수입규정을 도입했다. 규정대로라면 해양포유류의 '생물학적 허용 사망량'의 10% 이하로 혼획 숫자를 줄여야 수산물 수출이 가능하다. 생물학적 허용 사망량은 해양포유류의 자연 사망량을 제외한 포획, 혼획, 선박 충돌 등 모든 비자연 사망량의 합을 의미한다. 현재 국내에서 밍크고래는 생물학적 허용 사망량의 4배, 상괭이는 5배 넘게 혼획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해양생태계의 보전 및 관리에 관한 법'에 따라 해양보호생물을 지정·보호한다. 해양보호생물은 △우리나라의 고유한 종 △개체수가 현저하게 감소하고 있는 종 △학술적·경제적 가치가 높은 종 △국제적으로 보호 가치가 높은 종 등이 지정된다. 현재 총 80종인 해양보호생물 가운데 고래를 포함한 포유류는 16종으로, 20%를 차지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계간지 '금융과 발전(F&D)' 2019년 12월호에는 "국제사회의 기후변화 대응 전략에서 고래류 보호가 최우선 순위가 돼야 한다"고 언급됐다. 고래류는 해양생태계 최상위 포식자로서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하며, 또한 막대한 양의 탄소를 저장함으로써 지구온난화를 늦추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황해에서 매년 100여 마리의 고래가 포획됐다. 최근에는 국내 연안에서 해마다 1000마리가 넘는 상괭이가 혼획되고 있다. 불법 포경과 해양오염, 해양쓰레기 등에 시달리는 고래들에게 지금의 바다가 일제강점기보다 결코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

 




불법 포획된 '제돌이' 4년 만에 고향 바다로

▲ 바다에서 헤엄치는 남방큰돌고래. 지난 2013년 서울대공원에서 돌고래쇼를 하던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는 고향인 제주도 바다로 돌아갔다./사진제공=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
▲ 바다에서 헤엄치는 남방큰돌고래. 지난 2013년 서울대공원에서 돌고래쇼를 하던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는 고향인 제주도 바다로 돌아갔다./사진제공=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

 


지난 2013년 7월18일 '제돌이'가 바다로 돌아갔다. 제돌이는 2009년 5월 제주도 앞바다에서 정치망 그물에 걸렸다가 돌고래쇼 공연업체에 팔렸던 남방큰돌고래이다. 남방큰돌고래는 1년 내내 가까운 바다에서 머무는 연안 정착성 고래로 제주 바다에 100여마리가 살고 있다.

제돌이는 수족관에서 길들여진 후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와 하루 4번 돌고래쇼를 했다. 제돌이는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 연구진에 의해 2007년 11월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앞바다에서 9번째로 확인된 제주도 남방큰돌고래였다.

제돌이라는 이름 전에는 'JBD009'라는 식별번호로 불렸다. 서울대공원에서 공연하던 제돌이가 불법 포획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환경단체들은 바다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2년 3월 서울시는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를 바다로 돌려보내겠다고 밝힌다. 그물에 걸려 잡힌 지 4년 2개월 만에 제돌이는 제주 바다로 돌아갔다. 서귀포시 대정읍 동일리에 가면 남방큰돌고래 무리를 육지에서도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