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위원

지난 9월 고향 포항으로 벌초를 갔을 때다. 오랜만에 만난 고향친구가 "한 접시 할까"라고 했다. 그 고장에서 '한 접시'는 고래고기를 말한다. 모처럼 죽도시장 고래고기를 안주로 옛 친구와 회포를 푼 날이었다. TV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으로 떴다는 구룡포항도 예전 고래 산지 중 하나였다. 상업용 포경이 금지되지 전까지다. 오래전 군 입대를 앞두고 구룡포항 어판장을 자주 찾아갔던 때가 있었다. 어판장 한 모퉁이에는 평생 고래고기 좌판을 지켜온 머리 허연 할머니가 있었다. 그 할머니 앞에서 굵은 소금에 고래수육을 함께 찍어 먹던 친구도 '한 접시' 하자던 그 친구였다.

▶울산·포항 등 남쪽 동해안 지방에서는 고래고기가 친근했다. 남쪽 서해안 지방의 홍어처럼, 귀한 손님이 오면 대접하는 음식이기도 했다. 식구가 많으면 국을 끓였다. 무우와 대파, 고춧가루를 잔뜩 넣고 끓이는 것이 쇠고기뭇국 맛이었다. 대개 수육으로 먹지만 육회나 숯불구이, 탕으로도 먹는 것이 홍어와도 비슷하다. 한때 포경기지였던 울산 장생포에는 고래고기거리까지 있다. 장생포에서 알아주는 고래 해체 기술자로 일하던 고향친구가 있었다.

한번은 "제대로 고래 맛 한번 보자"며 동네친구들이 쳐들어 갔다. 이름만 들었던 온갖 고래 부위들을 차례로 넣어줬다. 그러나 일을 마치고 온 그 친구의 얘기는 입맛을 좀 가시게 했다. 고래를 해체하자면 피비린내 때문에 소주 2병이나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2018년 말 일본이 국제포경위원회(IWC)를 탈퇴한다고 선언했다. 국제적인 비난을 감수하고서다. 1986년부터 포경이 금지됐지만 일본은 연구용 쿼터를 받아 남극 등에서 고래를 잡아왔다. 연구 명목으로 잡은 고래를 식용으로 유통시킨다는 비난이 비등하자 아예 탈퇴해 버린 것이다. '고래를 먹는 것은 일본의 문화다.'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었다. 이 무렵 우리나라에서도 제한적으로 포경이 허용돼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개체 수가 너무 많은 종에 한해서다.

▶그 고래고기가 연일 지면에 오르내리고 있다. 시작은 '울산 고래고기 사건'이다. 2016년 4월 경찰이 불법포획했다며 고래고기 27t을 압수했다. 하지만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이 이 중 21t을 증거가 부족하다며 업자에게 돌려줘 버렸다. 경찰이 직권남용이라며 담당 검사에 대한 수사에 들어갔다. 고래의 본고장에서 검·경이 고래고기 힘겨루기를 벌인 것이다. 이번엔 다시 검찰이 하명수사 의혹을 내세워 울산경찰에 대한 수사에 들어갔다. 미묘한 시기에 청와대 직원이 울산으로 내려간 설명에 대해서도 야당은 "고래가 캠핑장 갔다는 얘기"라고 했다. 이래저래 고래 싸움에 새우 등터지는 일이나 없어야 할 것 같다.